[뉴노멀 시대 정치개혁 대제언] <6> 그녀에겐 왜 '레임덕'이 없는가.. 권력 아닌 '실용'이었기 때문

이수완 논설위원입력 : 2021-04-04 15:36
[이수완의 월드비전] 메르켈의 '무티 리더십'은 무엇을 말하는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6)가 올해 9월 총선 이후 정계를 은퇴한다. 2005년 11월 취임 이후 무려 4연임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는 유럽 최대 경제의 독일을 넘어 '서방세계의 리더'로 이미지를 깊게 새겨놓았다. 그동안 메르켈 특유의 푸근한 '무티(엄마) 리더십'이 크게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가 있다. 통치 권력의 권위주의와 일방통행 그리고 거짓과 오만이 판치는 냉혹한 정치세계에서 메르켈에겐 몸에 박힌 소탈함과 평범함(Plainness) 그리고 진솔함과 유연함이 독일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소프트하면서 가장 강한 메르켈의 신비는 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독선과 아집 그리고 나르시시즘(자기애)에 빠진 '스트롱맨'들이 활개 치는 지구촌에서, 메르켈은 10년 넘게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존경받는 여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8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주의에 대항하는 메르켈 총리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서로 노려보고 있는 사진은 화제가 됐다. 지난해 그는 막후에서 교착상태에 빠졌던 7500억 유로(약 997조원) 규모의 유럽부흥기금 협상의 타결을 원만히 주도했다. 남유럽 재정위기와 코로나19 사태로 해체 위기에 몰린 유럽연합(EU)을 하나로 묶게 한 핵심적 인물이자 '위기 관리자' 메르켈 총리였다.  

21세기 격동의 세계에서 독일 정치권이 이념과 정책적 차이를 잘 극복하고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은 위기 때마다 메르켈 총리가 보여준 개인의 뛰어난 소통 능력 덕분이다. 그는 다당제 국가인 독일에서 중도우파 기민당(CDU)을 이끌고 있지만 당파적 이익을 떠나 사안마다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를 이뤄내곤 했다. 성품 자체가 소탈하고 드러내길 싫어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면서 겸손과 배려 그리고 공감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그의 리더십은 지금도 그의 지지율이 70% 이상 고공행진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사태와 관련, 양자화학을 전공한 물리학자 출신인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조기에 파악하고 과학자들에게 무한의 신뢰를 보내며 바이러스 확산세에 차분히 대응하면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그는 영국 총리를 세 차례 역임(1979년 5월~1990년 11월)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비교되기도 한다. 메르켈이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이고 대처가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국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린 점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리더십은  사뭇 다르다. 대처 총리는 그의 별명처럼 뒤로 절대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투혼으로 영국을 소위 영국병(British disease)에서 구해냈다. 1970년대 영국 경제는 과도한 사회복지로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심각했지만 노조의 파워가 너무 막강해 대처 총리 같은 지도자가 아니었다면 복지를 위한 공공지출의 삭감, 노동개혁 또는 부실 공기업의 민영화는 엄두를 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의 집권 11년 동안 영국은 GDP가 30% 성장했다. 당시 포퓰리즘과 사회주의가 만연했던 영국의 대수술을 위해 대처 총리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구조개혁과 친시장정책을 통칭해 '대처리즘(Thatcherism)'이라고 한다.

2013년 메르켈의 집권연합(기민당·기사당)이 총선에서 40%가 넘는 지지율로 압승하자 ‘메르켈리즘(Merkelism)이라는 정치 신조어를 세계 언론은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권력을 과시하거나 이데올로기 같은 말을 입에 올리지 않고 철저히 실용주의에 입각해 반대세력과의 갈등을 둔화시키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메르켈의 중도실용 리더십을 일컫는다. 2차 대전 후 패전국 독일은 민주공화국으로 재탄생하면서,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총리의 권한·지위를 강화했다. 또한 영국이나 미국의 양당제와 달리 '정당명부제'라고 불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 경쟁에서 승리한 정당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고  국가의 정책결정 과정에 소수파 정당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시스템이다. 일종의 합의제 정치 시스템을 작동시키면서 독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그리고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룬 것이다.  

현재 독일은 총선에서 10% 이상의 득표를 한 6개의 정당이 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좌·우 이념을 넘어 환경, 이민 등 다양한 이슈와 정체성을 가진 정당들이 득표율만큼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 독일식 정당제도의 특징이다. 단, 정당 득표수가 전체 투표수의 5%를 넘지 못하면 의회에서 한 석도 갖지 못한다. 독일에서 한 정당이 과반수를 획득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선거가 끝나면 최대 관심은 연정협상이 더 주목을 받는다. 메르켈 총리가 2005년 중도좌파 성향의 사민당(SPD)과 대연정으로 처음 국정을 맡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당시만 해도 독일은 저성장과 10%를 넘는 높은 실업률, 막대한 복지비용 부담으로 이른바 중증의 '독일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동·서독 통일(1991년) 이후 사회복지비용으로만 1000조원에 가까운 지출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며 독일 경제는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1998년 사민당 소속으로 녹색당과 연정을 통해 탄생한 진보정권의 리더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포퓰리즘에 휘청이던 독일 경제의 대개혁에 나선다. 2003년 그는 노동자와 당내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연금 개혁과 실업수당 축소를 내건 '어젠다 2010'을 밀어붙이다가 결국 당총재직도 잃고 2005년 총선에선 메르켈에게 7년 만에 정권까지 내주게 된다.  메르켈 총리는 취임 후 전임자의 '어젠다 2010'을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슈뢰더 총리의 결단과 더불어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뒤집지 않고 국가 개조 작업을 이어간 메르켈 총리 덕분에 독일 경제가 유럽의 최강자로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메르켈 집권 이후 독일의 실업률은 5%대로 하락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실업률은 더 낮아졌다. 국민들은 메르켈이 금융위기뿐 아니라 2013년 유럽 재정위기, 이어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의 위기를 전반적으로 잘 극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메르켈은 4연임 중 한번만 빼고 나머지 3연임(12년)을 제1야당과 대연정을 펼쳤다. 서로 다른 정체성의 여야가 긴밀한 대화와 협의를 유지하고 있는 덕분에 선거 이후 독일에서 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일은 드물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도 비교적 높다고 할 수 있다.  

메르켈의 집권 기간에 본인의 소신 행보로 독일 정치권을 떠들석하게 만든 사례가 있다면, 원전폐기 논란과 시리아 난민사태를 꼽을 수 있다. 2010년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 총리 시절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녹연정'이 수립했던 원전 폐기 정책을 개정해 원전의 가동을 연장했으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반핵여론이 거세지자 연장법안을 철회하고 원자력 폐기를 공식화했다. 메르켈의 원전 폐쇄 결정은 집권 기민당으로 향하는 강력한 원전 에너지 로비의 고리를 사실상 파괴한 것으로, 전통적인 기민당 지지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가 2013년 유럽 재정위기 때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진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에 앞장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리아 난민사태는 메르켈 리더십의 최대 고비였다. 2015년 이슬람국가(IS)의 등장과 시리아 내전으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자 메르켈은 EU가 규정한 국제법인 '더블린 조약'의 유보를 선언하고 100만명에 달하는 난민에게 독일 정착을 허용했다. 인도주의를 내세운 메르켈의 선제적 조치에 유럽 각국은 당황했으나 영국·프랑스 등 주요국들은 독일의 뒤를 따라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2016년 서베를린에서 튀니지 난민이 ‘트럭 테러’를 일으키며 난민에 대해 반발하는 민심이 폭발했다. 당시 기독사회당 대표이던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국경개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대연정이 붕괴 위험에 처하자, 메르켈 총리는 난민 수용 정도를 낮춰 사태를 수습했다. 하지만 난민포용정책에 대한 반발 여론은 메르켈에게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가져왔다. 

메르켈의 기민당은 2017년 총선에서 제1당 자리를 유지했으나 득표율(32.9%)이 2013년보다 8.6%나 하락했다. 이탈자 중 상당 부분은 난민정책을 반대하는 극우 정당인 독일 대안당(AfD)에 표를 던졌다. 2018년 기민당의 위기는 지속됐고, 바이에른주·헤센주 주정부 선거에서 전 선거 대비 득표율이 10% 포인트 이상 하락한 직후 메르켈 총리는 기민당 당대표직을 포기했고 차기 총리직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며 자신의 난민정책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난민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기민당의 인기는 하락했으나, 2020년 초 코로나19 위기가 터진 후 정부의 침착한 방역 대처로 다시 상승했다. 특히, 팬데믹 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재정으로 인한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적자 그리고 국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고통을 솔직하게 알리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모습은 다시 한번 특유의 '무티의 리더십'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성장동력을 잃은 한국경제, 정치부패, 미·중 갈등 속에 갈팡질팡하는 외교, 부동산 정책 실패와 양극화 심화··· 우리는 정치권이 합심해도 고치기 힘든 고질적인 '한국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념과 진영 논리에 매몰된 한국의 정치권은 메르켈처럼 화합과 통합의 걸출한 리더십을 발휘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대연정을 펼치는 독일식 정치 시스템과 달리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부여받게 되는 제도적인 차이점도 하나의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작금 우리나라의 현행 승자독식 중심의 정치·선거제도는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다. 이를 개혁하여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치적 색깔과 기득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들의 잇속만 채우려 하는 기성 거대정당들이 큰 걸림돌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무조건 가장 먼저 서두르는 '전임자 정책 지우기'다. 정권을 잡은 뒤 적폐청산이니 뭐니 몇년 떠들썩하다 보면 협치고 뭐고 생각할 틈도 없고 어느새 하산할 때가 된다.  권력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메르켈에겐 '레임덕(권력누수)라는 단어의 수식어가 필요없다. 메르켈은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보수주의를 버렸고 기민당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까지 받았지만 16년 만에 총리직을 떠나는 그에겐  '레임덕이라는 단어가 필요없다.  독일에서 메르켈의 후임이 누가 되든 전 세계는 상당기간 '메르켈 앓이'가 지속될 전망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겐 꿈과 같은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정치인이 '삼류' 또는 "사류'라는 소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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