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아태 기초과학 순위 발표... "날아가는 중국, 뒤로가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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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기자
입력 2021-03-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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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학·생명과학은 중국 연구기관의 독무대

  • 물리는 상위 50위에 국내 7개 연구기관 이름 올리며 경쟁력

  • 중국, 등록금·생활비 100% 지원 연구매진

  • "장기적 기초과학 지원책 수립 안하면 도태 불가피"

티벳 고원 바이시야 카르스트 동굴에서 발견된 데니소바인의 DNA를 추출하는 모습.[사진=중국과학원 제공]

한국의 기초과학 경쟁력이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반면 중국은 '천인계획'의 성과가 나타난 2015년 이후 기초과학 경쟁력이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며 논문의 양적·질적 측면에서 미국에 육박하는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과학계에선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정부의 특단 조치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5일 영국의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공개한 '네이처 인덱스 2021 아시아태평양' 보고서에 따르면 아태 지역 상위 50개 기초과학 연구기관 중에 한국은 서울대(22위)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26위)만이 이름을 올렸다.

반면 중국은 중국과학원(CAS·1위)과 중국과학기술대학(USTC·2위)을 필두로 32곳의 대학과 연구원이 순위에 올랐다. 일본은 도쿄대(3위)를 포함해 9개의 대학과 연구원이, 호주는 5개 대학이 50위 내에 선정됐다.

네이처 인덱스는 네이처가 국제 유력 학술지 82개에 발표된 기초과학 논문을 토대로 집계한 연구기관 순위다. 기초과학 분야에선 가장 권위있는 지표라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처는 기여도, 공저자, 학문 분야별 가중치 등을 토대로 논문을 분석해 연구 성과를 수치화하고 있다. 대학과 함께 중국과학원,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 등 각국 정부나 기업이 출연한 연구기관도 함께 집계한다.

이번 순위는 2015년 1월부터 2020년 8월까지 네이처가 수집한 논문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집계됐다.

네이처의 집계를 통해 한국 대학의 기초과학 논문 수는 2019년 집계와 비교해 대부분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는 0.1%, KAIST는 4.6% 줄었고, 50위권 밖에 위치한 연세대(53위, -15.6%), 포항공대(65위, -32.1%), 성균관대(72위, -16.7%), 한양대(100위, -7%)도 하락세를 그렸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60위), IBS(61위), 고려대(78위)는 각각 26.2%, 26.7%, 2.8% 늘어나며 체면치레를 했으나, 241.2% 늘어난 중국과학원대학(UCAS)이나 948.1% 늘어난 남부과학기술대(SUSTech)와 비교하면 빛이 바랜다. 두 대학뿐만 아니라 중국 대학은 전반적으로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사진=아주경제 그래픽팀]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환경 등 개별 순위로 들어가면 중국과 기초과학 경쟁력 차이가 더 명백히 드러난다.

화학의 경우 10위를 기록한 도쿄대를 제외하면 중국 연구기관의 독무대였다. 서울대(28위), KAIST(32위), UNIST(49위) 등 대학원 중심의 연구기관만이 간신히 5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생명과학은 서울대(16위), KAIST(32위), 연세대(38위)를 제외하면 중국과 일본 연구기관이 양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지구&환경 분야는 50위권 내에 서울대(24위)만이 간신히 이름을 올리며 한국 기초과학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로 조사됐다. 조사 범위를 100위권으로 확장해도 한국 연구기관의 이름은 올라오지 않았다. 지구&환경은 중국이 앞서가는 가운데 호주 연구기관인 뉴사우스웨일스대(13위), 퀸즐랜드대(14위), 호주국립대(19위) 등이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물리의 경우 KAIST(13위), 서울대(20위), UNIST(26위), 성균관대(30위), 연세대(34위), 포항공대(36위), IBS(38위) 등 7개 연구기관이 50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중국,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우수한 이공계 인재가 서울대 물리학과를 필두로 각 대학 물리학과에 몰리면서 많은 연구 인력이 배출됐고, 이들의 노력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게 과학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초과학을 전담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 경쟁력 면에서도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각각 1위, 29위를 기록한 중국과학원, 이화학연구소와 비교해 IBS는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50위권 밖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과학계에선 이렇게 중국과 기초과학 경쟁력 격차가 벌어진 이유로 천인계획을 꼽는다. 천인계획은 '수천명의 과학 인재를 중국으로 영입하자'는 목표 하에 중국 정부 주도로 2008년부터 진행된 해외 우수 인재 영입 프로그램이다. 자연과학을 포함해 박사급 이공계 인재를 대상으로 한다.

천인계획으로 영입된 인재는 즉시 2억~5억원의 연구비를 지급받은 후 중국 내 여러 연구기관에 소속되어 기초과학을 포함한 이공계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 관련 연구계획에 따라 최대 20억원의 추가 연구비를 지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보다 평균 2배, 캐나다보다 3배 이상 많은 연구비다.

천인계획을 통해 중국은 7000여명의 해외 정상급 과학 인재를 중국으로 데려왔다. 대부분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계 과학자이지만, 외국인 과학자도 상당수 포함됐다.

김우재 하얼빈공업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중국은 예전부터 천인계획을 시행하고 후속 인재 확보 프로그램인 '만인계획'을 수립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기초과학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중국 연구 기관의 기초과학 논문은 양적인 측면에선 미국을 넘어섰고, 질적 측면에서도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기초과학과 이공계 대학원생은 정부로부터 등록금과 생활비를 100% 지원받는 등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브레인코리아(BK)21 등 특정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야 지원을 받는 한국 기초과학 연구원과 출발 선상이 다르다"며 기초과학에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김 교수가 재직 중인 하얼빈공업대는 중국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과거의 낮은 인지도와 달리 현재는 네이처 인덱스 순위 38위를 기록했다. 서울대와 KAIST를 제외한 한국의 모든 대학보다 기초과학 경쟁력이 앞서는 것이다.

김 교수는 "중국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은 기초과학과 이공계에서 미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경쟁 의식을 토대로 굉장히 역동적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며 "중국 정치인도 기초과학과 이공계 출신인 경우가 많고, 이들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학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과학계에선 기초과학 연구자를 경제 발전을 위한 기계부품처럼 취급하는 풍조가 오늘날 중국과의 경쟁력 차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정책과 국정 운영에서 과학기술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현장의 30~40대 연구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성이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연구 기관 지원 프로그램도 연구자들의 혼선을 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초과학을 육성하려면 장기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면 연구비 지원 방식이 달라지고 연구자도 이에 휘둘려 지속적인 연구가 어렵다는 것이다.

과학계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수십년 단위의 장기적인 기초과학 지원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면 몇 년 후 중국과의 격차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질 것이고, 정부가 강조하는 기초과학 육성은 물론 우수 연구자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목표를 이루기는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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