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제모습 찾기 완결'…억압의 상징이 시민공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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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기자
입력 2021-02-12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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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완결된 산자락 정비사업

서울 중구 남산 예장자락 사업현장의 조선총독부 관저터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 구조 및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사진=연합뉴스]


조선총독부·중앙정보부 등이 존재해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시민들이 찾기 어려웠던 남산 예장자락이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했다.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로 본격적으로 시작한 '남산 제모습 찾기 계획'의 완결이기도 하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시작한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이 5년여간 사업을 마무리하고 오는 5월 시민 품으로 돌아온다.

조선시대 군사들의 무예훈련장(예장)이 있던 남산 예장자락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군사독재시절엔 고문수사로 악명 높던 중앙정보부가 위치해있었다. 역사적 아픔이 있는 곳이지만 상처를 드러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에 사업 중점을 뒀다.

남산 예장자락 공원 조성을 총괄한 서해성 서울 역사재생 총감독은 "어두운 역사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며 "과거 힘든 기억이라도 우리 기억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장자락은 115년 만에 시민에게 공개된다"며 "이번 사업 가장 큰 목적은 '남산의 광복'이었다"고 말했다.

힘든 역사지만 기억하고 이를 통해 좋지 않은 기억에서 오히려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정보부 6국은 고문과 강압적인 취조가 진행됐던 곳이다. 한자 고기 육자를 써 '육(肉)국'이라고 불릴 만큼 무시무시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이 있었던 곳도 여기다.

민청학련 1974년 4월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 국가가 민청학련 관계자 180여 명이 불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며 구속하고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관계자들은 고문과 취조를 당했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거나 실제로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기억6 메모리얼관' 이라고 이름 붙여진 건물 지하에는 고문이 이뤄졌던 지하실을 창문 하나까지 그대로 재현해 뒀다. 중앙정보부 6국 등 어두운 역사를 외면하지 말고 기억하자는 뜻을 담아 기억 6으로 이름 붙여졌다.

서 총감독은 "열 분 정도 되는 민청학련 사건 피해자분들을 모시고 이곳에 방문했을 당시 대부분은 지금도 두려움에 떨며 지하실에 방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서 매 맞았다는 사람은 수천 명인데 그들을 때렸다는 사람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당시 안기부 직원에게 얼굴을 가리고라도 역사를 위한 증언을 해달라고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누구라도 와서 익명으로 증언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민청학련 사건 피해자 10여 명을 초청해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행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기억6 앞은 조선총독부 관사가 있던 곳이다. 재생사업 도중 발견했다. 서울시는 이 터를 그대로 살려두는 방식으로 '유구터'를 만들었다. 역사적 의미를 가진 유물이지만 이용객들이 의자로 쓸 수 있게 하는 등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유구터 근처에는 앞서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시 폭파된 조선총독부 건물 잔해를 전시해두기도 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나아가겠다는 취지로 독립기념관에서 가져왔다.

유구터에서 길을 따라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공원하부로 내려오면 큰 소나무가 있다. 전북 고창에서 가져온 이 소나무는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독립운동가가 나라를 찾으려는 간절함으로 불렀던 애국가 한 구절로 나무 이름을 지어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한 것이다.

그 길을 따라 이동하면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을 기념하는 공간이 나온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안에는 '테라코타' 3000여개가 천장에 매달려있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3000여명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후에 신흥무관학교가 되는 신흥강습소 건립에 참여했다.

현재 서울시는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을 약 450여명 파악하고 있다. 앞으로 모두 파악해 기리겠다는 약속을 다짐하는 조형물이라고 설명했다.
남산을 세계인의 명소로 '남산르네상스 프로젝트'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지난 3일 남산 예장자락에서 이뤄진 기자설명회에서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은 장소성과 역사성 회복에 중점을 둬 시민들이 휴식하며 아픈역사 현장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며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고 외인아파트 철거로 시작된 남산 제모습찾기를 완결하는 의미도 크다"고 밝혔다.

남산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이런 '남산 제모습 찾기 계획'과 같은 맥락으로 2009년에 시작됐다. 당시 서울시는 2020년까지 장충자락·예장자락·회현자락 등 산자락을 정비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2021년 현재 대부분 사업은 완성됐다. 장충자락은 지난 2010년 장충공원의 노후 체육시설 등을 없애 시민 여가공간을 만드는 '장충자락 재정비사업'을 진행했다. 장충단공원은 장충단비와 수표교를 비롯해 10여개의 항일 관련 동상과 기념비가 모여 있어 역사·문화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정비 전에는 낡은 운동시설들이 곳곳에 있어 공원의 역사나 의미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서울시는 남산 회현자락 정비 사업도 현재 마무리단계다. 지난해 11월 12일에는 이 정비 사업 일환으로 한양도성 유적을 발굴 상태 그대로 보존·정비해 조성한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을 개장했다. 시는 한양도성 유적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유적 보호시설과 관람데크 등 최소한의 시설만 조성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의 도읍지 한양의 경계를 표시하고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곽이다. 남산 회현자락에 일본의 식민 통치를 상징하는 거대한 조선신궁이 들어서면서 한양도성 성벽도 자취를 감췄었다.

시는 남산 회현자락 정비사업을 3단계로 나눠 추진해왔다. 힐튼호텔 앞 아동광장 일대 성곽 34m를 발굴한 1단계 사업에 이어 백범광장 일대 성곽 42.4m를 발굴한 2단계 사업과 중앙광장 일대 성곽 189.3m를 발굴한 3단계 사업을 각각 지난 2012년과 2014년 마무리했다.

전시관은 이 중 3단계 사업으로 발굴한 중앙광장 일대 성곽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공간이다. 이 전시관은 내년 11월 전시안내센터가 준공되면 정식 운영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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