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막말로 지새는 여의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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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입력 2021-02-0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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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정치권이 또 다시 막말로 소란스럽다. 이번에는 ‘조선시대 후궁’ 발언이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을 저격하며 쓴 말이다. 맥락에 맞지 않을뿐더러 여성 비하, 성희롱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은 조수진 의원을 상대로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회 윤리위원회에도 제소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사자 고민정 의원은 조수진 의원을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앞서 조 의원은 고민정 의원에 대해 “‘산 권력’을 업고 당선됐다”며 “조선 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천박하며, 독기 서린 막말이다. 이후 다른 막말이 더해지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어쩌다 ‘일베’ 정치인으로 변질됐는지 개탄스럽다”며 오세훈을 힐난했다. 또 국민의힘 김근식은 “우상호 의원이 ‘대깨문’ 선봉에 나섰다”며 거들었다.

막말과 망언은 오일장처럼 반복된다. 그때마다 강도를 더한다. 언론과 시민단체 십자포화에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는 정치 혐오를 부른다. 진영갈등이 심화되면서 지지층을 향한 정치 언어는 갈수록 거칠다. 2019년 자유한국당 5.18망언은 극치를 보여줬다.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내고 있다”,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됐다.” 바닥까지 내려간 망언이었다.

범여권 인사들이 내뱉은 말도 분노에 차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부패한 무리의 더러운 공작” “똘마니들을 규합해 장관을 성토” “정권 바뀐 것을 느끼도록 갚아주겠다”(최강욱 의원), “‘윤서방파’ 몰락은 시간문제”(정청래 의원), “동네 양아치들 상대하며 배웠는지 ‘낯짝’이 철판”(김경협 의원). 검찰 개혁 와중에서 나온 말들이다. 아무리 검찰 개혁이 당위성을 갖는다하더라도 지나쳤다는 게 일반 인식이다.

이런 말은 또 어떤가. “광화문 집회 주동자들은 도둑놈이 아니라 살인자”(노영민 전 비서실장), “경고한다. 선을 넘지 말라”(윤건영 의원), “전직 대통령이 되면 사면 대상이 될지 모른다”(주호영 원내대표), “성 피해 호소인”(남인순 의원), “북한 원전건설은 이적행위”(김종인 비대위원장). 하나같이 분노와 증오로 날 서있다. 국민은 안중에 없다. 진영에 기대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기 품은 언사들이다.

정치 언어는 왜 독할까. 막말 정치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의도된 ‘노이즈 마케팅’이다. 인지도를 높이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다. 그래서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지지층을 타깃으로 삼는다. 상대를 타격함으로써 지지층을 모을 목적이다. 진영 안에서 독설은 가속도가 붙는다. 니체는 “개인은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드물지만, 집단은 제정신 아닌 게 정상이다”고 했다. 집단 속에서 막말이 난무하는 이유다.

조수진 의원은 언론인 출신이다. 평생 언어를 다뤄왔다. 누구보다 말이 낳는 파장에 민감하다. ‘조선시대 후궁’을 언급하면서 여파를 감안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무리수를 두었다. 집단에 매몰된 나머지 균형감을 잃어버린 결과다. 의도한대로 파장은 간단치 않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연이은 권력형 성범죄로 높은 성인지 감수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이런 와중에서 후궁 운운했으니 어처구니없다.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은 막말과 망언이 자라기 좋은 텃밭이다. 내 편은 덮어놓고 지지하고, 상대는 배척한다. 이런 배경에서 막말과 망언은 좀비처럼 살아난다. 함량 미달 정치인도 문제지만 맹목적 환호 또한 분별력을 잃게 한다. 독설과 막말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내편이라도 꾸짖고, 상대라도 박수칠 수 있는 아량과 상식이 절실하다. 그럴 때 공동체 유지, 성숙한 정치, 국민통합을 기대할 수 있다.

“너희는 무리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출애굽기)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 구절 덕분에 살면서 소수파에 속하는 걸 겁내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자기 생각을 가진 각성한 시민이 절실하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는 도덕적 우월감에서 막말한다고 했다. 그는 “도덕적 우월감은 역지사지나 공감을 불가능하게 한다. 또 냉정한 이성마저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적 독약’이다”고 했다. 우월감 반대는 인정과 포용이다.

18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김용민 후보는 막말로 자신과 당을 망가뜨렸다. 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차명진 후보가 대신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 막말’로 당과 자신을 해쳤다. 품위 있는 언어, 품격 있는 정치. 어떻게 하면 우리 정치가 막말과 망언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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