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될뻔한 자폐장애인…헌재 결정문에서 드러난 검찰 수사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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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기자
입력 2021-01-0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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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내부.[아주경제DB]


한 자폐장애인에게 절도 등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검찰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수사미진과 자의적 판단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헌재는 재물손괴와 절도 혐의를 받는 자폐장애인 A군(14)이 검찰을 상대로 제기한 기소유예처분 취소 헌법소원 사건에서 자의적 검찰권이 행사됐다는 이유로 청구인용 결정을 내렸다고 6일 밝혔다.

기소유예는 죄가 있지만 범행 후 정황이나 범행 동기·수단 등을 참작해 검사가 재판에 넘기지 않고 선처하는 것을 말한다. 형사처벌은 받지 않지만 엄밀히 말해 유죄이며 민사소송 등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소유예를 받을 경우 재판을 통해 무죄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 억울한 피의자는 헌법재판소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셈이다. 헌재 자료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해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 사건 중 56건을 인용결정했다. 검찰의 수사에 잘못이 있다는 결론이다. 

A씨는 자폐성 장애 1등급 장애인으로 지난해 6월 8일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검사에게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A씨가 한 전기자동차 커버를 벗긴 뒤 운전석 문을 열어 플라스틱 재질 창문을 휘게 했으며 오토바이 헬멧과 20만원가량을 운전석에서 훔쳤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헌재는 조사된 증거만으로는 재물손괴와 절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먼저 증거 제출된 블랙박스 영상에는 차량에 다가가는 장면과 A씨가 벗겨진 차량용 덮개를 잡고 움직이는 장면만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에서 작성된 신문조서도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신문조서에 따르면 A씨가 차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 핸들을 만진 것처럼 기재돼 있다. 헌재는 이 조사가 유도신문으로 이뤄져 있는데 자폐성 장애인인 A씨는 질문을 혼동해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고 봤다.

A씨는 네·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폐쇄형 질문에는 대부분 '네'라고 답했고 구체적인 상황을 물어보는 개방형 질문, 예를 들면 '차 문을 열고 무엇을 했는지' 등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런 상황으로 볼 때 A씨는 경찰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진정한 의사로 답변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폐성장애 특성으로 인해 상대 질문에 대해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네라고 답하거나, 상대 말을 의미 없이 그대로 따라 하는 반향어 증세로 답변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A씨는 오전 7시47분쯤 차량용 덮개를 벗겼고 피해자는 오후 7시50분에 이를 확인했다며 약 12시간 동안 제3자 범행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헌재는 "제3자 범행 가능성에 대한 조사도 없었고, 증거도 부족하다"며 "검찰은 중대한 수사미진과 증거판단 잘못이 있어 A씨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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