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왜 실패했나] 창신숭인 예산 전수조사 해보니…"안 하니만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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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은, 김재환 기자
입력 2020-12-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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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 지을 돈, 집수리 예산에 더 넣었어야"

  • "이럴 바엔 공공재개발"...불허한다는 서울시

4억5200만원이 투입된 창신골목시장. [사진=윤지은 기자]
 

"서울시에서 아무것도 안 해준 건 아니지. 해주긴 해줬어. 우리에겐 필요없는 것들이라 그렇지." (창신골목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

창신·숭인동 주민들에게 있어 도시재생은 '안 하니만 못한 것' 같은 존재다. 868억원이 투입됐다는데 막상 생활은 달라진 게 없고, 도시재생활성화지역이란 이유로 재개발만 힘들어져서다.

혹자들은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 묻지만, 동네에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게 주민들 생각이다.

실제 현장을 찾아보니, 낡은 주거시설은 도시재생이 처음 시작된 2014년과 똑같은 상태로 방치돼 있었고,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소화시설도 전혀 비치돼 있지 않았다.

집수리(서울가꿈주택 및 희망의집수리)에 일부 예산이 편성돼 있기는 하지만, 다해봐야 1억원가량에 그친다. 한 집당 수리비용이 최소 1000만원부터 시작하고, 이 동네 가구수만 8000여 가구에 달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무의미한 숫자다.

무엇도 바뀌지 않은 황무지 같은 동네에는 말라붙은 화분이나 빛바랜 벽화따위가 오점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화려한 건물들은 스산한 동네 분위기와 어우러지지 않고 홀로 들떠 있었다. 서울시는 봉제역사관, 채석장전망대, 백남준기념관 등 건물을 올리는 데 수십억원을 소요했다.

창신동에서 지난 25년간 봉제일을 해왔다는 주민 이모씨는 본지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 큰불이 난 적이 없어 망정이지, 그렇게 되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겁니다.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들은 그대로인데, 삐까번쩍하게 건물만 올리면 그것이 재생인가요?"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 예산내역 [사진=서울시]

"뭐가 달라지긴 했죠, 우리와는 상관없을 뿐"
7년. 창신·숭인동 도시재생에 들어간 기간이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지나온 주민들은 "뭐가 달라지긴 한 것 같은데, 우리와는 별로 상관없는 것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가 창신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회 측에 전달한 자료에 따르면, 창신·숭인동 도시재생엔 총 사업비 868억원(마중물 200억원·연계 607억원·별도 61억원 등)이 소요됐다.

해당 예산은 국·시·구가 직접 발주한 사업 예산으로, 서울시가 지난 2018년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자 공모로 뽑은 CRC 측 사업계획 및 예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창신골목시장에서 14년 동안 가게를 운영해왔다는 상인 A씨는 "창신골목시장 활성화에만 4억5200만원이 투입됐다"는 기자의 말에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했다. 이어 "달라진 거라곤 상인회에서 스피커로 음악이나 공지를 내보낸 게 전부"라고도 했다.

해당 상인은 상인회에 가입돼 있지 않았지만, 상인회에 가입한 75명의 상인들 역시 크게 다른 내용을 전하지는 않았다. 골목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또 다른 상인 B씨는 "천막이나 간판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었고, 매대도 무상 지급됐다"면서도 "매대가 너무 작고, (사용하기가) 좀 그렇다. 나랏돈이 참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벽면에 붙은 TV를 가리키자, B씨는 "상인회가 실시간 안내를 내보내는 TV"라고 설명했다. TV는 꺼져 있는 채였다.

주민들은 방문객 없이 방치돼 있는 봉제역사관 역시, '생겼으되, 그 필요를 알기 어려운 물건'이라고 지적했다.

봉제역사관 바로 옆에서 데님공장을 운영 중인 차모씨는 "역사관을 찾는 사람 중 일반인은 거의 없다"며 "서울시가 홍보, 교육을 목적으로 데려온 단체들이 90%"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사람들은 역사관보다 우리 공장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며 "여름이면 건물 앞을 기웃거리는데 '옷 만드는 게 보고 싶어 그러냐'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인다"고도 했다.

9400만원을 들인 에너지자립마을 사업 역시 호응이 낮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는 S아파트 주민 C씨는 "지난 2017년 설치했으니 3년쯤 됐다"며 "서울시가 할 사람은 하라고 자율에 맡겼는데 한 동당 10가구 정도 했나"라고 했다.
 
정작 필요한 예산은 '쥐꼬리'..."건물 지을 돈으로 집수리나 해줬으면"

창신동의 노후화된 주택과 주택 사이 [사진=윤지은 기자]
 

주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사업에도 예산이 편성되긴 했지만, '쥐꼬리'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불필요한 사업비를 줄였다면 좋았을 거라며 주민들은 아쉬워했다.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 예산내역에 따르면, 노후화된 저층주거지를 고치는 데 편성된 예산은 1억600만원에 불과했다. 집수리에 들어가는 최소 비용이 가구당 1000만원 정도임을 생각하면, 열 가구나 고칠 수 있을까말까한 액수다. 노후주택 개량은 서울시가 사업에 앞서 진행한 주민 설문조사에서 시급한 분야 2위로 꼽혔다.

최근 사비를 들여 집을 수리했다는 D씨는 "서울가꿈주택, 희망의집수리에 1억여원이 투입됐다"는 말에 "그런 말은 듣도보도 못했다. 그런 게 있으면 홍보를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비가 새니까 옥상을 방수처리하는 데 300만~400만원을 썼다. 정화조가 내려앉아 따로 400만원을 들였다. 두 개만 해도 1000만원돈이 들었다"며 "또 해야 한다. 40년 된 집이어서 땜빵질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인근에서 영업 중인 C건축업체 대표는 "(집수리를) 거의 개인적으로 하신다. 수리를 하고 (서울시에) 청구하는 과정이 번거로워 그렇다"며 "최하 1000만원 정도 든다. 꼭대기집은 장비를 쓸 수 없고 일일이 수작업해야 해서 단가가 더 높다"고 했다.

시급한 분야 3위를 차지한 주차문제 해결도 역부족이란 전언이다. 강대선 창신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장은 "인근에서 주차장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수용 가능 차량 수(승용차 133대·이륜차 43대)는 얼마 안 된다"며 "구역 가구수가 8000가구는 되는데 누구 코에 붙이느냐"고 되물었다.

주민들이 시급한 분야 1위로 꼽은 도로확장 및 골목길 정비에는 아예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서울시가 사업 계획 당시 "도로 재생 없이 도시재생이 불가하다"고 언급한 것과는 상반된 조처다.

안전안심 골목길 조성(21억1400만원)과 마을탐방로 기반조성(11억4500만원) 등에 적잖은 예산이 들어갔지만, 골목길에 범죄예방디자인을 적용하는 정도여서 주민 요구와는 동떨어져 있다. 주민들은 폭이 좁고 낡은 도로를 새로 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당초 계획과 달리 방치돼 있는 돌산마을 조망점 [사진=윤지은 기자]

"이럴 바에는 공공 재개발하겠다" vs "허용 못한다"
주민들은 도시재생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할 바에야 공공재개발에 참여해 이제라도 우리가 원하는 동네를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서울시 측은 이를 거부했다.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이유다.

주민 이씨는 "공공재개발 추진 관련 현수막을 설치하면 구청에서 철거한다. 벌써 네 번이나 그랬다"며 "현수막을 걸겠다고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반려한다"고 토로했다.

서울시가 공공재개발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창신·숭인 도시재생활성화지역에선 소규모 민간개발이 난립할 조짐이다.

종로구청 주거재생과 관계자는 "창신초 뒤쪽에 (민간개발 추진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도시개발과 관계자도 "숭인1동 쪽에서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주민 이씨는 "구청에서는 사업성이 좋은 지역의 경우 따로 개발할 것을 은근히 유도한다"며 "민간개발을 하면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다는 걸 구청이 더 잘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간재개발로 가게 되면 대지지분이 적은 쪽에서 반대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지대의 경우 저지대보다 공사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저지대에서 고지대와 한 구역으로 묶이기를 거부할 여지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이미 창신·숭인동은 한 차례 재개발 시도가 무산된 바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 이곳을 뉴타운 지구에서 해제했다. 14개 정비구역 중 절반인 7개 구역에서 소유자 30% 이상이 뉴타운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당시를 회고하며 "대다수 주민들이 뉴타운보다 도시재생을 찬성한 이유는 도시재생이 좋아서가 아니다"라며 "동네가 재개발되면 집 팔고 달리 갈 곳이 없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창신동의 지워진 벽화, 썩은 채로 방치된 나무 손잡이 [사진=윤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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