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한국경제, 길을 찾아라] 넘쳐나는 돈, 꽉 닫힌 지갑…돈맥경화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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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웅 기자
입력 2020-1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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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성장·저물가 리스크만 커진 한국

  • 혁신기업 밀어줘야 쌈짓돈 푼다

한국 총통화 유통속도 추이[그래픽=아주경제]

시중에 돈이 흐르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추세적'인 흐름을 보이며, 돈이 도는 속도가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돈맥경화가 이미 만성적인 상황에 이른 가운데 코로나19를 계기로 미래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돈맥경화 현상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 실물경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만성적인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해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물경제로 돈이 투입되려면 기업의 투자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돈맥경화, 코로나 탓? 통화 유통속도 이미 '최저'
한국경제연구원이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통화 유통속도는 지난해 0.657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 통화 유통속도 역대 최저치이자, 한경연이 분석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18개국 가운데 일본(0.392)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시중 통화량(M2)으로 나눈 값인 통화 유통속도는 화폐 한 단위가 일정 기간 얼마만큼의 부가가치(국민소득)를 창출했는지를 의미한다. 통화 유통속도가 1이면 화폐 한 단위를 풀었을 때 생산이 1 늘어난다는 의미다. 1 이하면 거래되지 않는 통화가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통화 유통속도가 1 이하인 국가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영국(0.705), 호주(0.814), 뉴질랜드(0.963) 등 5개국뿐이다.

한국의 통화 유통속도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하락했다. 2010년 이 수치는 0.796이었다. 통화 유통속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경제주체들이 돈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 들어 감소폭이 커졌다. 지난해 한국의 유통속도(0.657)는 전년(0.701) 대비 6.3% 하락했는데, 이는 △터키(-9.5%) △호주(-7.7%) △칠레(-7.4%) 등에 이어 넷째로 큰 하락폭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한국은 이미 돈맥경화 현상에 직면해 있었고, 시중에서 돈이 도는 속도가 세계 주요국보다 더 빠르게 하락하고 있었던 셈이다.

올해 통화 유통속도는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위기로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풀었음에도, 초저금리 기조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들이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시장으로만 쏠리면서다.
 
"경제원칙 지켜 불확실성 낮춰야"
돈맥경화 심화의 가장 큰 요인은 불확실성 확대다. 미래가 불확실하니 투자를 늘리기보다 돈을 가지고 있는 게 낫다고 경제주체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기업이 투자를 줄이고 금융자산만 늘리면,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격은 오르지만 실물경제는 침체에 빠지는 '금융-실물경제 간 괴리'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불확실성을 줄이면 투자가 늘고 돈이 도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대외 불확실성을 없애지 못하더라도, 이를 무릅쓰고라도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많은 정책이 정치적 이슈에 의해 결정되고, 이에 따른 미래 불확실성으로 돈을 보유하려는 경제주체들이 많다"는 것이 성 교수의 진단이다. 예컨대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의 정책으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그는 "경제원칙을 바로 세우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돈맥경화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혁신기업이 나오고, 이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경제 구조가 고성장하기 힘든 체질이 돼 돈이 활발히 돌지 않지만, 선진국이라고 해서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며 "독일은 강소기업에 여러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팀장은 "기업 투자가 늘면 내수가 확대돼 가계의 소비도 증가하고, 이는 다시 기업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그리게 된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가계와 기업들이 소비·투자를 할 수 있도록 경제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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