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칼럼] 경영혁신의 아이콘 .. 그는 다르게 실행한 사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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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전 YTN대표이사) 사장)
입력 2020-10-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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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희 회장, think different를 넘어서

[최남수 교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자주 인용되는 한 기업의 광고 문안이다. 중요한 말이지만 사실 새롭고 차별적인 사고는 적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다. 문제는 실행력에 있다. ‘다르게 실행하라(Do different).’ 이것을 해내느냐의 여부가 혁신의 성패를 좌우한다.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 없던 것(스마트폰)을 만들어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이와 다른 모습의 혁신도 존재한다. 한 산업에서 작은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가 끊임없는 기술 도약으로 신제품을 쏟아내며 ‘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로 치고 나간, 드문 역사를 만들어낸 기업. 2008년 스마트폰 쇼크로 노키아, 모토로라 등 굴지의 기업이 크게 흔들릴 때 빠른 실행력으로 애플을 따라잡은 기업. 슘페터가 얘기한 ‘창조적 파괴’를 실행해온 글로벌 대기업 삼성의 얘기다. 새로운 생산 방법과 새로운 상품으로 압도적 번영을 가져오는 게 슘페터가 얘기한 혁신의 정의다. 별세한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아래 삼성이 걸어온 길이다.

1983년에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삼성은 불과 9년 만인 1992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다음 해인 1993년에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오른다. 2002년에 삼성은 전자업계에서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인 소니를 제친다. 삼성에 대한 소니의 시선 변화가 뚜렷해지는 시기이다. “삼성전자는 근본적으로 부품업체다.”(2002년,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 “삼성전자는 일류 기업이 되었다.”(2006년, 스트링커 신임회장) 삼성은 현재 세계 5위 혁신기업에 랭크돼 있으며(보스턴 컨설팅 평가), 브랜드 가치도 세계 6위 수준이다.

‘변방의 소기업’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이건희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일까. 1987년 취임 당시 10조원에 불과하던 삼성의 매출을 2018년에 약 39배가 늘어난 387조원으로 성장시킨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삼성식 경영 혁명’이었다. 회사 경영의 방향타를 ‘양(量)’에서 ‘질(質)’로 급선회한 전략의 파괴적 혁신이었다. 그 시작점은 널리 알려진 1993년 6월 7일의 ‘처자식 빼고 다 바꿔 보자’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이때 ‘No1, Only’의 ‘신경영 깃발’이 올려진다. 차별적인 경쟁력을 구축해 초일류 기업이 되자는 다짐이었다. 당시 이건희는 “고객 돈 받고 불량품을 내놓는 것이 미안하지도 않냐”며, 50년간 굳어져온 양 중심의 관행과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삼성 내부에 위기 의식을 고조시켰다. 초일류·초격차의 경영을 강력하게 주문한 것이다.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힘들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이룩하여 후세에 넘겨주어야 할 지고의 가치이자 목표이다. 나는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해 나의 생명과 재산, 명예를 다 바칠 것을 분명히 약속한다.” ‘삼성 신경영’에 담긴 이건희의 비장한 선언이다. 이때부터 제품의 질에 대한 ‘집착’이 본궤도에 오른다. 불량 제품이 나오면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는 라인스톱제 등 충격요법이 동원된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이건희 경영학’에서 삼성이 서로 상충되는 목표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패러독스 경영’을 했다고 진단한다. 대규모 조직이면서도 빠르게 움직이고, 다각화를 하면서도 전문성을 보유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부문은 원가를 현저히 낮추면서도 최신·최고 수준의 제품을 경쟁자보다 먼저 출시해왔다. 삼성식 스피드는 목표가 세워지면 인력과 장비를 집중 투입해 이뤄졌다. TV가 좋은 예이다. ‘1등을 해보라’는 이건희 회장의 요구에 관계사 직원들이 ‘TV일류화위원회’를 만들어 힘을 모음으로써 단기간에 세계 1등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패러독스 경영이 이건희 리더십의 큰 틀이라면, 그 안에는 복합화·글로벌화·과감한 인재 영입 등의 각론이 존재한다. 복합화는 따로 떨어져 있는 상품과 사업 등을 합해서 융합적인 상품을 창조해 내자는 사고이다. 예컨대 아파트를 전자, 중공업, 건설업을 한데 모은 상품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건회 회장은 자신이 사람에 대한 욕심은 세계에서 제일 많을 것이라며 소프트 인력 2만명 확보를 제시하기도 했다.

덩치가 큰 대기업을 ‘혁신적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가동시킨 ‘비전의 경영인’ 이건희. 그는 한국 경제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남긴 그늘도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정치와 경제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일탈, 그 스스로 상생의 철학과 사회신뢰 경영을 내세웠지만 사회와 ‘공감의 호흡’을 하는 데 부족했던 ‘재벌 기업’의 모습. 한국 사회가 삼성에 대해 아쉽다고 느끼는 이런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제가 이제 ‘이재용 호의 삼성’ 앞에 놓여 있다. 삼성은 고객, 근로자, 거래업체, 사회와 잘 소통하며 존경받는 대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동안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다가 소홀히 해온 공정의 가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그 시대 가치를 잘 반영하는 것도 대기업다운 모습일 것이다. “나의 인생관, 기업관, 사회관, 미래관은 상생의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것은 종업원, 고객, 협력회사와 주주, 지역·국가·인류사회와 더불어 다 함께 잘사는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길이다. 고객 만족, 임직원 만족, 기업 경쟁력 제고도 상생의 정신을 갖고 다 같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보자. 이것이 선순환만 되면 한없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쓸데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버리고 말았는가.” 이재용 부회장이 가슴에 ‘부친의 유언’처럼 담았으면 하는 이건희 회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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