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4가 재개발지 안에서 수십억대 전세사기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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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은 기자
입력 2020-08-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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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산동서도 같은 집주인 유사피해...피해규모 100가구, 60억원대

  • "고시원 등 준주거는 임차인 보호 취약...청년·고령층 사지로 몰아"

서울 문래동4가 재개발구역에서 수십억원, 수십명 규모의 전세금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주민 일부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퇴거하지 않고 버티겠다"고 말하는 상황이라,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재개발사업 자체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4가 재개발구역 내 위치한 K모빌딩은 최근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경매에 부쳐진 상태다. 해당 건물에는 9억8000만원 규모의 근저당이 잡혀 있고 세입자 보증금 총액도 34억원에 달해 건물이 감정가액(36억여원)대로 낙찰돼도 모든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세입자 전세권은 저당권과 똑같은 효력을 가지는데, 근저당 액수와 세입자 보증금을 더하면 매매가액(40억여원)을 훌쩍 넘는 수준이다.

집주인은 현재 세입자들의 면담요청을 거부한 채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혹 연락이 닿아도 "돌려줄 돈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는 전언이다. 현재 K모빌딩은 집주인이 관리비를 제때 내지 않아 전기·수도·가스 등이 끊긴 데다 최근에는 승강기까지 고장난 상태다. 벽면에선 누수가 되고 있다. 승강기 수리비만 수백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비용 모두 세입자들이 십시일반 모아 해결하고 있다.

해당 건물은 원룸형태를 띠고 있지만 2종 근린생활시설(고시원)을 개조한 것이어서 준주택에 해당한다. 현행법상 준주택은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해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세입자가 보호받을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

세입자가 '부실 집주인'을 눈치채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엔 계약시장이 지나치게 깜깜이다. 세입자는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도 세입자 보증금 총액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공인중개사 또는 집주인의 말만 믿어야 한다.

빌딩 입주자 김모씨는 "저는 2014년에 입주했는데, 그때는 전세와 월세 비율이 거의 반반이었다"며 "그런데 2017년 집주인이 바뀌고 2년 정도 지나 1차 경매개시가 터진 후 확인하니 전세 비율이 90%에 육박했다"고 말했다.

해당 건물은 지난해 6월 14일 첫 번째 강제경매개시결정이 내려졌다. 이어 8월 2일 신청인이 결정을 취하했다. 총 6500만원의 보증금 중 우선 3500만원을 돌려주고 잔액에 경매·소송비용을 포함한 3500만원은 추후에 돌려주겠다며 결정을 취하해 달라는 집주인 요구를 참작한 것이다. 지난 2월 25일 두 번째 결정이 내려졌다.

입주민 조모씨는 "집주인은 단돈 7000만원을 갚지 않아서 임차권이 쌓이고 쌓이다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7000만원을 갚을 능력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건 갈 데까지 갔다는 뜻 아니겠나"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경매에 부쳐진다 해도 최우선변제금을 한 푼도 못 받고 돈을 날릴 사람이 수두룩하다. 서울시 조례에 따라 7500만원까지 최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데, 전세금이 8000만원 이상인 사람들이 열두명은 된다"며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경매 넘어가도 난 손해볼 게 없다, 챙길 것은 다 챙겼다는 집주인의 몰염치한 태도"라고 날을 세웠다.

입주자 강모씨는 "민·형사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지만 별 수확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며 "집주인이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갚게 만드는 방향이 있다고 들어 마지막 기대를 걸었는데 실제 알아보니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같은 사건에서 소송은 별다른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시시비비를 가린다고 해도 떼인 돈을 받을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김래완 법률사무소 인향 대표변호사는 "돈을 우선순위로 받을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당권이나 임차권 대항은 먼저 설정된 순위로 보호받는다"며 "주인이 빈털터리라면 승소판결을 받아도 휴지조각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채권보전절차가 가장 중요하고 소송은 그와 병행해 이뤄져야 할 일"이라고 첨언했다.

그는 "2종 근린생활시설이라면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라서도 임차권 등기 명령을 설정할 수 있다"며 "이는 퇴거 후 다른 곳으로 갈 때 필요한 절차며, 거주를 계속하면서 대항력을 유지하고 있다면 필요치 않다"고도 했다.
 

[사진=피해자 단체 메신저방 발췌]
 

세입자들은 '기획형 사기'가 우려된다는 말도 전했다. 강씨는 "임대인은 문래동뿐 아니라 당산동에도 P모건물이 하나 더 있다. 2016년, 2017년 1년 간격을 두고 매매했다"며 "매매한 두 건물 모두 전 주인이 동일하며 현재 임대인이 매매를 한 뒤 전세 비율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했다.

K모건물과 당산동 P모건물을 합하면 피해자는 100여명에 이르고 피해금액 또한 60억여원에 달한다는 게 세입자들의 전언이다.

위장전입 의혹도 불거졌다. 조씨는 "집주인 김모씨의 동거인 송모씨를 포함해 2~3명 정도가 전세보증금 2000만~3000만원에 들어와 있다. 이들은 경매 개시 하루이틀 뒤에 전입신고를 했다"며 "정황상 최우선변제금을 노린 위장전입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들은 세입자 회의 참여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세입자들이 퇴거하지 않고 장기전에 돌입할 경우 K모빌딩이 소재한 문래동4가 재개발구역도 사업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진다. 토지수용을 한다고 해도 세입자가 퇴거하지 않으면 이들을 강제로 끌어낼 수는 없다. 실제 이 같은 사태를 우려한 문래동4가 주민 일부(지주협의회)는 세입자 측과 면담을 하면서 "집주인이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알아봐주겠다"는 등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래동4가 지주협의회 회장은 "길을 놔주려 했는데 건물에 융자가 지나치게 많아서 추가적인 은행대출이 힘든 상황"이라며 "세입자들이 퇴거를 거부하면 수용할 수밖에는 없다"고 했다.

김래완 변호사는 "강제수용과 명도는 별개의 문제다. 토지소유권이 넘어온다고 해서 살고 있는 사람을 내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도소송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속도와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그래서 중재하려고 나선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 세입자들이 제공한 경매 감정평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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