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한 획 그었지만, 미투로 얼룩진 마지막 길…"자살 통해 과오 덮는 관행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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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0-07-1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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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의 영결식...백 교수 "지금은 애도의 시간"

  • 박 시장 떠났지만 숙제 남겨...사회 지도층의 죽음 앞에 무력한 문제제기는 어떻게

  • 전문가 "인물의 공과는 입체적 판단...자살 통해 과오 덮는 관행 끊어야"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끝나고 고인의 영정이 퇴장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시대와 나란히, 시민과 나란히"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서울시청에서 엄수됐다. 이날 오전 7시 30분 서울대병원을 출발한 박 시장의 운구차가 오전 8시께 서울시청에 도착하자 미리 마중나왔던 시민들은 "시장님이 왜 죽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영결식이 끝난 뒤 박 시장은 서울추모공원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그의 유골은 유언대로 고향인 경남 창녕에 안치된다.

이날 시청 앞 광장은 빗줄기가 내리는 이른 아침부터 수십명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박 시장의 마지막 출근길을 함께 하기 위해 서울 각지에서 몰린 이들이다. 박 시장 지지자들은 운구차가 도착하자 "아이고"를 외치면서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상복을 입은 유족들의 흐느낌과 서울시 공무원들의 엄숙한 표정, 지지자들의 오열이 한데 뒤섞여 시청 주변 공기는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영결식 참석 인원이 100여명으로 제한된 탓에 시민 대부분은 시청 밖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서울 강동구에서 온 50대 시민(이진영)은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와보길 잘한 것 같다"면서 "이제 짐 좀 내려놓으시고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결식은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회로 온라인 생중계됐다. 고인에 대한 묵념, 추모영상, 추모곡 연주, 공동장례위원장 3인의 조사, 시민대표의 조사, 헌화, 유족 대표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고 의원은 영결식에 앞서 "고인의 죽음으로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 만들어갈 세상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면서 "사람들의 마음에도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고 있다. 각자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50여분간 진행된 박 시장의 영결식에는 동시접속자 3만2000여명(tbs기준)이 함께해 고인을 추억했다.

박 시장 장례공동위원장을 맡은 백낙청 교수는 "지금은 애도와 추모의 시간"이라며 "박원순이라는 타인에 대한 종합적 탐구나 공인으로서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애도가 끝난 뒤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평범하고, 비천한 사람의 죽음일지라도 한 인간의 죽음은 애도받을 일"이라며 "당신의 죽음 자체가, 당신의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언론계, 시민가회에 많은 성찰을 남기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장 권한대항인 서정협 행정1부시장은 "시장님은 어려운 이들의 삶과 꿈을 회복하는 일에 평생 헌신했으며, 어떠한 순간에도 약자의 고민을 외면하지 않았던 분"이라며 "약자의 삶이 존중받는 도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시장님의 정신을 흔들림없이 이어가겠다"고 했다.

유가족을 대표해선 박 시장의 딸 다인씨가 인사말을 건냈다. 박 씨는 "화려한 양복부터 평범한 작업복을 입은 시민들의 끝없는 조문을 보며 아버지가 '오세요, 시민 여러분. 나에겐 시민이 최고의 시장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면서 "그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고, 시민들의 모습을 아버지가 정말로 기뻐하시며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서울시민이 꿈꾸던 행복한 서울을 여러분들이 시장으로서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울먹였다.

박 시장은 떠났지만 그의 죽음은 많은 과제를 남겼다. 먼저 '미투 폭로'에 얽힌 유력인사의 극단적인 선택이 애도 분위기로 장악되는 데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박 시장을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성완종 전 의원, 노회찬 전 대표 등 사회지도층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국민이 받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하는 문제도 남았다. 한 개인의 죽음을 정치적·대중적으로 이용하려 계산기만 두드리는 일부 집단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민낯을 보기도 했다. 더 나은 사회로 전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상처들이다.

전문가들은 공적 책임이 결여된 사회지도층의 죽음과 그것이 주는 사회적 영향에 대해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의 분열로 균형있는 공론이 성립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과정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윤인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 인물을 판단할 때는 공과(功過)를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공으로만 과를 덮을수도 없고, 과로만 인물을 다 판단할 수도 없다. 박 시장은 인권, 시민사회 운동, 변호사, 시정에 대한 공이 명백하지만 개인의 올바르지 못한 처신으로 피해자의 인권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준 명백한 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살의 방식으로 자신의 과오를 덮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올바르지 않다"면서 "이번 사태를 그런 형태의 관행을 끊어내고, 사회가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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