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의 불온한 정치] DJ·노무현 꼭 빼닮은…"정세균 리더십을 주목하라"

최신형 정치팀 팀장입력 : 2020-05-29 17:01
'경제형 총리' 정세균, 오늘로 국회의원 8766일 마침표 丁총리, DJ 리더십과 유사…盧 '균형발전·국민통합'까지 '100% 긴급재난지원금',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 끌어내 영·호남 묶는 '남부민주벨트'…'분수경제론' 선구자 丁총리 '산골 소년' 丁총리 마지막 꿈은…차기 대권 뛰어들지 주목
온 사방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외치는 이때, 문득 4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여권 관계자에게 물었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 가장 근접한 정치인은 누구냐'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OOO"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꼽았다. 이 정치인을 '후광(DJ 호)'의 후계자로.

'균형 발전'과 '국민 통합' 등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철학도 꼭 빼닮은 정치인. 1997년 문민정부 말기에 터진 이른바 '한보 사태' 당시 청문회에서 한 전문경영인이 꼽은 '불법 자금을 유일하게 받지 않은 정치인'. '백봉신사상' 최다(15회) 수상자. 6선의 국회의원. 당 대표를 비롯해 장관과 국무총리까지 오른 정치인. 화려한 스펙의 주인공은 정세균 국무총리다. 경제형 총리인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의 일환으로 꺼낸 카드였다.

정치 스펙만 보면 '기승전·금수저'다. 실패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정 총리는 요즘 말로 '흙수저 중 흙수저'다. 6·25 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주, 장수군과 함께 '무진장'으로 불렸던 그곳. 소설책에서 가난의 상처를 빗댄 지역으로 종종 나오는 그곳. 정 총리의 스토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검정고시와 학교 매점에서 일한 근로 장학생. 가난을 딛고 대학교(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이후 쌍용그룹에 입사해 상무까지 거침없이 직진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차기 대권주자의 필수 요소인 '감동적인 삶의 궤적'도 갖춘 셈이다.

그래, 박노해 시인의 시구처럼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진 법'이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공포로 짓눌린 지금, '정세균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다.

◆'전화 한 통'으로 역사 바꾼 정세균 총리
 

정세균 국무총리가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리더십'을 보여준 첫 번째 장면. 때로는 전화 한 통이 역사를 바꾼다. 긴급재난지원금 100% 지급이 딱 그랬다. 이는 전 세계를 덮친 'C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긴급 처방전이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청와대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재정 건전성' 사수에 나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기재부) 장관은 반대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당 내부에선 또다시 '홍남기 해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경제형 총리가 구원투수로 전격 등판했다. 지난달 22일 당·정·청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민주당이었다. '긴급재난지원금 5월 지급'을 위한 데드라인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고소득자의 자발적 기부' 등을 담은 여당안을 최종 정리한 뒤 기재부를 설득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버티던 홍 부총리는 "국회에 마련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물러섰다. 역시 '정치는 명분'이다.

정 총리는 전날(4월 21일)에도 국무회의 직전 홍 부총리와 별도 회동했다. 그는 '기재부가 버티면 부담은 대통령에게 간다', '지금 정부와 야당이 같은 편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 등의 말로 홍 부총리를 설득했다. 청와대도 '정세균 구원투수' 역할에 긍정적인 사인을 보냈다. 문 대통령이 같은 날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해 "매듭을 빨리 지어야 한다"고 정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 대표적이다.

◆총리·장관·당대표 다해본 정세균…'마지막 도전' 나서나
 

권양숙 여사,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 등이 지난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리더십'을 보여준 두 번째 장면.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도 사실상 정 총리의 업적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달 중순께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다.

이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외곽에서 하는 장외 노·사·정 대화를 말한다. 정 총리는 청와대와 교감 하에 이보다 앞선 지난 3월부터 이를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총리로 동분서주하면서도 긴급재난지원금 100% 지급과 노·사·정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 등 난제를 푸는 '해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엔 정 총리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국회의장(2위)보다 국가 의전 서열이 낮은 국무총리(5위)를 수락할 때도 "역할이 있다면 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야권에서 제기한 삼권분립 위배 논란도 '정면 돌파'했다. 과거 열린우리당 의장과 민주당 당 대표직도 독배에 가까웠지만, 기꺼이 받아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콘텐츠를 바탕으로 이슈를 선도했다. 그는 18대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전부터 영·호남을 한데 묶는 '남부민주벨트론'을 띄웠다. 정 총리의 국민통합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 정부의 포용·공정 경제와 맥을 같이하는 '분수경제론'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99%를 위한 분수경제'에서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 등 경제 하층부에 실질적인 혜택을 줘서 효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 경제 전체로 퍼져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21대 국회 개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6선의 정 총리는 "15대 국회의원 임기가 1996년 5월 30일 시작됐으니 오늘로 꼭 8766일째"라며 "국회의원은 졸업하지만, 의회·민주주의자로의 꿈은 정치에 몸을 담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행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 총리의 마지막 당부는 그의 평소 철학처럼 '협치·소통', 그리고 '사회 통합'이었다. 21대 총선에 불출마한 그는 "21대 국회에 임하는 내 각오는 어떨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고 했다. '산골 소년' 정 총리의 마지막 종착역은 어디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사진은 지난해 8월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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