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칼럼] 낮은 연단 아래에서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 2020-05-20 16:34
 

[정근식 교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은 지금까지 우리가 지켜보았던 수많은 국가기념식 중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가 많았던 행사였다. 기념식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계엄군 집단발포의 현장인 구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열렸고, 일본의 여류화가 도미야마 다에코가 판화로 표현했던 희생자들의 넋이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예술적 형식 속에서 부활했으며, 대통령은 그해 5월 27일 새벽 공기를 비장하게 갈랐던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외침에 기념사로 응답했다. 많은 시민들은 낮은 연단에서 이루어진 이 기념식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으나 민주주의의 승리를 마음껏 노래할 수는 없었다. 왜 그럴까?

한 달 전에 우리는 총선거를 통해 민의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태원 클럽 문제로 약간 주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국이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극복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치 못하고 착잡한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5·18의 진실을 완전히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입술은 부르터 있었다.

결연함보다는 고뇌가

코로나19에 대한 경제 대책으로 대통령은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의 도입과 새로운 뉴딜정책을 단호하게 언급했다. 그러나 누구도 코로나 이후의 상황에 대해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백색의 IT산업과 녹색의 바이오산업 사이에서 정답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가 가끔 경험하듯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어느 한 가지 답을 마치 정답인 듯이 말하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한 공허감에 시달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지금은 미래를 고뇌하는 철학자의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이 현실을 진단하는 한 가지 가설이다.

이와는 다른 또 하나의 가설이 있을 수 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남북 경제협력과 교류를 차단했던 5·24 조치가 이루어진 지 10년이 된다. 좀더 멀리는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이 이루어진 지 20주년이 된다. 2년 전의 4·27 판문점 회담과 9·19 평양 선언은 남북교류협력과 평화번영에 대한 희망의 청사진이었다. 그 감동이 너무 커서 현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남북관계는 꽉 막혔고,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북·미회담은 물론이고 작년 연말에 타결되었어야 할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4월 초에 실무진의 합의로 타결될 뻔했지만, 잘 알려진 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대목에서 “평화는 돈 주고 사는 거야”라는 경구가 떠오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가 ‘돈 문제’일지 ‘발목 잡아두기’일지 심중을 헤아려야 한다.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아

돌이켜보면, 남북경제교류와 협력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이루어진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에 의해 물꼬가 터졌다. 1989년부터 우리의 경제인들이 작은 규모로 북한과 교역하기 시작했다. 1992년 위탁가공, 1995년 대북 투자, 1998년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 2003년 개성공단으로 남북관계는 착실히 발전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피격에 따른 5·24 조치는 이런 진전된 상황을 일시에 동결시켰고, 1100여개의 기업이 타격을 받았다. 북핵문제가 이를 더욱 꽁꽁 얼어붙게 했지만, 대북 경협에 나섰던 경제인들은 ‘곧 다시 열리겠지’라는 희망 고문에 지쳐가면서 5·24 조치를 제2의 38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5·24 조치 해제를 시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강하게 반발했고, 우리 정부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북한은 하노이 북·미회담이 실패로 돌아간 후 토라질 대로 토라졌다. 그 후에도 약간의 여지를 남겨둔 듯했지만, 얼마 후에 우리 정부에 대한 희망을 접은 듯하다. 북한이 제대로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결단을 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차라리 작년 2월 하노이 회담을 앞둔 시기가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북한에 대해 가하는 제재의 효과가 코로나 국면에 의해 가려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얽혀버린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5·24 조치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비극이지만, 동북아시아의 불완전한 주권국가들에 필요한 것은 용기라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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