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25-2] 새 국가(國歌) 제정 논쟁 75년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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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20-04-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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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공화정 시대…새국가 제정운동 일었으나 '중지'됨

  • 제6공화정 시대…애국가 제정 입법화 여부 검토되기도

  • 문재인 정부 시대에도 이어진 '애국가' 논란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 자유·평화· 화합·단결·개국 이념 등을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국가 제정이 필요하다 –안호상 국가제정추진위원장(1983년 4월)

∙ 전 국민의 화합과 단결이 요망되는 이 때에 국가 제정이란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하게 하는 것은 반국가적 행위로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기독교지도자협회(1983년 5월)

∙ 애국가와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의 선율의 유사도는 58~72%이다. 국민 모두가 <애국가>를 오랫동안 불러왔다고 해서 그 부끄러움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김정희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2019년 8월)

∙ 현재 애국가는 나라 사랑 마음 일깨우는 노래로서 위상을 상실했다. 우리 민족 공동체의 위상과 명예를 가슴 펴고 세워나갈 수 있는 애국가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 김원웅 광복회 회장(2019년 8월)

∙ "작사·작곡자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라는 백범 김구의 말씀대로 가사에 그 나라의 정신을 담을 수 있기에 세계 각국은 가사에 열과 성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성향 논쟁에만 수 십 년째 그것도 간헐적으로 몰입하고 있다. 작사자는 미상으로 얼버무리고, 가장 핵심인 가사는 근처에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 -강효백


◆제5공화정 시대(1980~1987년)

1981년 5월 전두환 정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주년을 맞아 대규모 문화행사 ‘국풍81’을 거행했다. 이듬해 1982년 10월 국풍81 후속사업의 일환으로 국가제정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위원장에 안호상(학술원 원로회원), 부위원장에 한갑수(한글학자)·박병배(전 국회의원), 전형위원에 나운영(음악가)·김종갑(사회운동가)·백시영(전 언론인), 고문에 유진오·백낙준·이희승·류달영 등이 추대됐다. 국가제정위원회는 1983년 4월경 저명인사 5,000여 명에게 새로운 국가의 제정 필요성을 설명하고 제정방법 등을 묻는 설문서를 보냈다.

설문서엔 현재의 「애국가」 가사와 곡은 ‘나라 노래’로서는 부적합하다. 가사도 고종때 국운이 완전히 기울여져 있을 무렵 만들어져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의타적이다. “자유·평화· 화합·단결·개국 이념 등을 나타낼 수 있는 국가 제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담겨 있었다.

국가제정추진위원회가 지적한 가사와 곡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가사의 문제점>
① 우리나라 국토가 만주까지라는 것을 강조해야 함에도 ‘무궁화 3천리’로 영토를 한정시켜 일제의 반도사관과 흡사하다.
②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는 표현은 소멸적이며 하소연하는 의미다.
③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표현은 의타적이다.
④ ‘남산 위의 저 소나무’라는 가사는 세계로 뻗어가는 오늘의 기상과는 거리가 멀다.

<곡조의 문제점>

① 겨레의 기백이 담겨져 있지 않다.
② 고유의 리듬이나 장엄 활기찬 면이 없다.
③ 불가리아 민요와 16소절중 8소절이 비슷한 서양곡이다.
④ 당초 안익태가 국가가 아닌 환상곡으로 작곡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5000명의 답신에 대한 경과나 결과 등 피드백은 거의 없었다. 다만 내무부 등 정부관계자들은 ‘신중히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는 고식적 자세를 견지하였다는 뒷담화만 흘러나왔다.(동아일보 1983년 4월 29일 '국가를 새로 만들자' 기사 참조)

게다가 1983년 5월 3일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회장 오경인)는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일부 인사들이 국가제정추진위원회를 결성해 현재의 「애국가」 대신 새로운 국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하면서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기독교 지도자 10여 명이 배석한 가운데 가진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경린 회장은 “애국가는 지난날 일제의 탄압과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 속에서 우리 얼을 지키며 불러온 애환이 담겨있는 민족의 국가”라고 지적하고 특히 “전 국민의 화합과 단결이 요망되는 이때에 국가 제정이란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하게 하는 것은 반국가적 행위로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경향신문 1983년 5월 30일, '새국가 제정운동 중지를' 기독교지도자협회 성명 참고)

◆제6공화정 시대(1987~2017년 4월)

1987년의 6월 항쟁의 결과로 제6공화정 시대가 열렸다. 1988년 2월 신군부 출신의 민주정의당 노태우 정부는 애국가와 무궁화를 공식국가와 국화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총무처는 10월 7일 국가상징자문회를 열었으나 ‘애국가 곡이 너무 어렵고 노랫말도 시에 맞지 않는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기에 부적합하다’는 때문에 백지화됐다.(세계일보, 1988년 10월 8일자)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7년 1월 26일 조상현 한국음악협회의 회장(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은 애국가의 표절 의혹과 함께 가사와 선율의 불일치, 소극적인 내용의 가사 등의 문제점을 제기했다.(경향신문 1997년 5월 6일자)

1997년 5월 28일 총무처는 애국가는 국경일 경축식, 외국 국빈 방한행사 등 정부의 공식적인 의전행사는 물론 각종 국제경기대회 등 국내외 행사에서 국가로 널리 불려오고 있기에 국민들이 더욱 애창할 수 있도록 오히려 애국가를 적극 권장해 나갈 방침이라며 새국가 제정론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국가상징자문위원회를 열어 학계 및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거쳐 연말까지 `국가상징대전'을 편찬하겠다고 발표했다.(연합뉴스 1997년 5월 28일 보도 )

1998년 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제2의 건국'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경제 회복을 추진하는 한편 '상록수(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 등 제2 애국가를 선택적으로 불러질 수 있게 했다.

특히 상록수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국민가요'로 널리 불려졌다. 상록수처럼 푸른 기상을 갖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자는 가사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상록수가 199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50주년 기념 TV캠페인 광고의 주제 음악으로 사용됐다. 2002년 1월 21일 ‘이 기상과 이 맘으로 민족을 모으며'가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로 개작되는 등 애국가 가사의 일부가 구한말 널리 애창됐던 원곡인 '국가(國歌)'의 것과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2년 83주년 삼일절 기념식장에서 상록수는 기존 애국가와 더불어 제2애국가 격으로 당당히 울려퍼졌다. (연합뉴스 2002년 3월 1일 보도)

2002년 겨울 16대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부른 ‘상록수’는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행사 피날레에 합창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애국가의 문제점을 알았던 것일까? 2007년 1월 26일 애국가를 법률상 공식 국가로 제정하자는 일각의 주장을 물리치고 태극기를 국기로 규정하는 <국기법>(법률 제8272호)만을 제정 공표했다.

2009년 5월 23일~29일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기간인 일주일 동안 대한민국은 대중가요 ‘상록수’의 공화국이었다. 그 선율은 29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이어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에서 가수 양희은씨의 열창으로 절정을 이루었다.(쿠키뉴스 2009년 5월 29일 보도)

2008년 2월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747 공약과 실용주의, 4대강 복원사업과 자원외교를 추진했다. 새국가 제정론은 물론 공식행사에서 제2애국가 격으로 불러졌던 ‘상록수’나 ‘임을 행진곡’은 완전히 사라졌다. 2010년 7월 27일 이명박은 애국가를 법적 효력이 하나도 없는 <국민의례규정>(대통령훈령 272호) 제4조②항 2에 삽입했다. 그러나 <국민의례규정>은 법령이 아닌 대통령훈령으로서 행정기관의 내부관계에서 하급관청에 대하여 발하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2012년 6월 15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애국가는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 중 하나이고, 독재정권에 의해 굳어진 것인데 그걸 마치 국가인 양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민족의 ‘정한’이 담긴 아리랑을 국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새누리당은 16일 즉각 논평을 내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현행법을 위배하는, 그래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 해가 되는 모든 이적, 종북행위자는 당연히 엄정한 법의 잣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아예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통진당에 대한 코멘트를 자제해왔던 민주당마저 선을 긋고 나섰다. 민주당 김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2010년 제정된 국민의례규정에서 법적 근거를 부여받는 애국가를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이념논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면서 이 의원에게 ‘상식의 정치’를 주문했다.(SBS 2012년 6월 17일 보도)

이 대목에서 필자는 이석기의 발언의 진위나 찬반 여부를 떠나 당시 민주당의 논평, 애국가가 법적 근거를 부여받았다는 비판은 훈령이 법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평가 분석한다.

박근혜 정권 원년 2013년 4월 25일 국회의원 장윤석과 한국입법학회 주최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애국가법 제정을 위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애국가법 제정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 토론회에서는 애국가 제정을 둘러싼 입법화 여부를 검토하였다.(경북일보 2013년 4월 25일자)

박근혜 정부는 그의 부친 박정희가 일본 국민가 애국행진곡을 표절한(유사율 64%) ‘내 나라 내 겨레(동해의 태양)’를 삼일절과 광복절 등 공식행사에 제창하게끔 했다.(한국경제 2014년 3월 1일 참조)  ‘불법국가 또는 비법국가(非法國歌)를 이른바 보수우파 일각에선 국가로 입법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대(2017년5월~현재)

애국가는 나라 사랑의 마음을 일깨우는 노래로서 그 위상을 상실했다. -김원웅 광복회장

2017년 5월 10일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당선, 9년 만에 민주 정권으로 교체됐다. 2019년 2월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에 대해 친일 행적에 이은 독일 나치 연관설이 나와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반대 의견이 58.8%, 찬성 의견이 24.4%로 반대 의견이 2배나 높았다.

2019년 8월 8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장)의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라는 제목의 긴급 국회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에는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김원웅 광복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부영 이사장은 공청회에 앞서 국회 정론관에서도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는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다. 친일·친나치 경력이 드러난 안익태씨의 애국가를 계속해서 부를지 여부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며 "이제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안익태씨의 친일, 더 나아가 일독(日獨)협회를 통한 나치부역행위는 그 죄상이 너무 명백하며 1945년 이후 보여준 안익태씨의 표변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며 "안익태씨가 독일에서 일독협회의 지원을 받아 일제 괴뢰국 만주국환상곡을 작곡하고 지휘할 때, 우리 독립군들은 일제가 만든 만주군 토벌대의 총탄에 쓰러져갔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안익태씨가 작곡한 애국가를 오늘도 부르고 있다. 하늘에 계신 순국선열들 앞에 송구할 따름이다. 나아가 자라나는 우리 미래세대가 안익태 곡조의 애국가를 계속 부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김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안익태의 표절과 자기표절'이란 발제에서 "(안익태 애국가) 전체 16마디 중 4마디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선율의 유사성이 매우 높다"라며 "애국가의 출현음 총 57개 중 맥락과 음정이 일치하는 음도 모두 33개로 58%의 일치도를 보였다. 변주된 음까지 포함하면 모두 41개로 유사도가(일치도) 72%로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 모두가 <애국가>를 오랫동안 불러왔다고 해서 그 부끄러움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순진하고 어릴 때 애국가를 부르면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움이 용솟음쳤다. 애국가는 나라 사랑의 정신을 일깨우는 노래로 자리 잡아야 된다"면서 "뒤늦게 이 노래의 작사, 작곡이 친일 반민족 인사라는 사실에 대해서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애국가는 나라 사랑의 마음을 일깨우는 노래로서 이미 그 위상을 상실했다. 애국가를 부를 때 께름칙하다면 이미 그 생명력을 상실한 노래다. 민족 공동체의 이상과 명예를 생각할 수 있는 자랑스러움이 깃들어있는 애국가를 만드는데 이 자리가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결론 맺었다. (국회뉴스 2019년 8월 8일)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새국가 제정론 75년사 요약

새 국가 제정론 75년사를 요약하자면 새국가 제정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시기는 해방공간이었다. 신문사가 거액의 사례금을 내건 새국가를 공모하는 광고까지 냈다. 친일매국인사를 중용한 이승만 정권 시대 내내 애국가에 대한 이의제기는 입도 벙긋 못하는 분위기가 계속 됐다.

4·19 직후 애국가 교체론 비등했으나 박정희 5·16 군사 쿠테타로 물거품이 되었다. 3공과 5공 군사정권 시절 초기 1964년, 1983년 약간의 새 국가 제정 움직임을 보였는데 주로 가사에 중점을 두었다. 1987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제6공화정 시대를 일람하면 수구정권 집권기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은 기존의 국가 유지론에 더하여 애국가를 공식국가로 입법화하자는 ’애국가 격상론‘까지 대두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권 시대는 ‘상록수’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제2 애국가 격으로 불러졌다. 문재인 현 정부시대는 애국가 문제 논의가 재개되었으나 여전히 작곡자와 곡만 주요 쟁점으로 머물러 있다. 즉,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성향과 곡의 불가리아 민요 표절만 간헐적으로 문제 삼고 작사자는 윤치호냐, 안창호냐, 실익도 가치도 별로 없는 프레임 논쟁에 갇힌 채 가장 핵심인 가사는 근처에도 가려고 하지 않는 요해 불가한 이상한 흐름이 수십년 째 계속되고 있다.

다 떠나서 국가상징 ‘애국가’에 72년 헌정사상 단 한 번의 여론조사(1964년 새국가 제정 찬성 85%)와 가사에 단 두차례(1964년, 1983년)파편적 문제 제기뿐, 책이나 논문 하나 없는 건 주권국가로서 극히 미스테리한 엽기적 사건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를 교체한 나라는 모두 87개국이나 된다. 식민지나 자치령에서 독립하여 주권국가를 건국한 나라는 대다수 국가를 교체했다. 대한민국만 예외다.

최근 2019년 11월 21일, 니제르 대통령은 프랑스를 찬양하고 프랑스 식민통치에 감사하는 기존 국가를 퇴출하고 새로운 탈식민지 국가 제정을 결정했다고 공표했다.

2020년 3월 10일 아일랜드 대표 일간지 <아이리시 타임즈>는 “새로운 국가 제정 경연대회를 개최하자 –군국주의 국수주의 가사의 찬가는 사라져야 한다” 는 제목의 시론을 개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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