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압박 강화에도 적성국들 안 흔들려…제재 회피망 정교화"

  • 제재 2017년 880건서 2024년 3000건 이상으로…"문제는 제재 아닌 집행"

미국과 이란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이란과 러시아, 북한 등을 상대로 경제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제재 대상국들이 회피망을 정교하게 구축하면서 효과가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미국이 경제전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이란과 러시아, 북한 등이 제재 회피 수단을 정교화하면서 미국의 압박 효과가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연간 신규 제재 대상 지정 건수는 2017년 880건에서 2024년 3000건 이상으로 늘었다. 제재는 통상 대상국이나 기업·개인을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하고, 이들과 거래하는 제3자까지 압박해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제재가 곧바로 대상국의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 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암호화폐 절도 등을 통해 최근 몇 년간 60억 달러(약 9조2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WSJ는 이 자금이 평양의 전기차 증가와 건설 붐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란도 최근 18개월간 미국으로부터 1000건이 넘는 제재를 받았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석유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이란은 2024년 석유 수출로 430억 달러(약 65조8000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WSJ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석유 수출을 억제하고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항구 봉쇄라는 물리적 압박까지 동원해야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강력한 제재를 받았지만 에너지 수출과 주변국을 통한 우회무역으로 버티고 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 등을 거친 미신고 무역은 러시아 군수산업 물자와 아이폰, 메르세데스 차량 등 소비재의 유입 통로가 되고 있다.

제재에는 설계상 허점도 있었다. 유럽 등에 대한 러시아산 에너지 판매가 일부 허용된 데다, 이란 전쟁으로 유가 상승 압력이 커지자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3월 이후 러시아 원유 관련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경제분석가들은 이 조치로 러시아가 5월 한 달에만 24억 달러(약 3조7000억원)의 추가 수입을 올렸다고 분석했다.

제재 회피에는 중국 금융시스템과 위안화도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미국 관리들은 이란·러시아·북한이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 등에 위장회사와 중개인을 세워 필수 물자를 사고팔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서방은 중국과의 무역 차질과 외교적 충돌을 우려해 중국을 직접 강하게 제재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 의회의 초당파 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는 지난해 11월 의회 보고서에서 러시아 관련 결제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미국 제재를 받은 중국 은행은 없다고 밝혔다.

제재 부담이 정권보다 일반 시민에게 더 크게 돌아간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여전히 집권 중이고, 쿠바 정부도 제재 속에 버티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도 10년간 제재를 견뎠다.

트럼프 행정부도 제재 체계의 재검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우리는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제재 대상을 검토하고 있다"며 "제재는 의도한 효과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정도로 오래 지속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제재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이 제재 자체보다 집행에 있다고 본다. 아비 비슈네비츠 테러자금조달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이란 제재에 대해 "제재 자체가 약했던 것은 아니었다"며 "너무 약했던 것은 그 이행과 집행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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