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재판에서 또다시 드러난 헌재-대법원의 ‘기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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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근 기자
입력 2020-04-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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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의 치열한 기싸움이 있었던 사실이 다시금 세간에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 이전에도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은 몇 차례 불거진 적이 있었지만 '사법농단'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막후 암투'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열린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 사법농단 의혹 핵심 관계자인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 전 위원은 2015년 4월쯤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에 반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쾌해하며 ‘비상적 대처’를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앞서 대법원은 회사의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특근·잔업 등을 거부해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조 관계자들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이에 노조 관계자들은 노조활동에 적용되는 '업무방해죄'에 대해 직접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 사건 업무방해죄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려 했고 이것이 대법원과 갈등을 촉발시켰다. 

'한정위헌'이란 '해석위헌'이라고도 불리며, 법률 상 개념이 불확정적이거나 법 조항이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경우 위헌이 되는 해석이나 적용을 배제하기 위해 내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법률 조항 전체를 위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석하는 한 위헌이다"라고 선고한다.  

대법원은 '한정위헌'이 헌법 해석이 아닌 법률 해석으로 헌재의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아울러 일선 법원에 '한정위헌은 참고 혹은 권고사항일 뿐 기속력이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 왔다.

대법원 판례(2001년 4월 27일, 95재다14)에 따르면 "헌재의 한정위헌결정은 법률 해석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법원에 전속돼 있는 법령의 해석, 적용 권한에 대해 기속력을 가질 수 없다”고 돼 있다.

반면 헌재는 다른 판단을 내려왔다. 지난 1997년 헌법재판소는(96헌마172, 173(병합)) “한정위헌결정도 헌법에 정한 권한에 속하는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의 한 유형’으로 당연히 기속력을 가진다”고 판단한 바 있다.

아울러 재판이 헌법재판소 결정과 정면으로 배치될 경우, 이를 헌재가 뒤집을 수 있는 '재판소원'도 가능하다는 입장까지 내놓은 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한정위헌'을 둘러싼 대법원과 헌재의 갈등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시절처럼 충돌 양상을 보였던 적은 드물다. 

양 전 대법원장은 '업무방해죄'와 관련한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부인한 것으로 보고 상당히 불쾌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한정위헌에 대해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법의 해석권한은 법원에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며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이 일종의 월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관들이 자신이 최고 사법기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는데, 헌재의 판단에 종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며 헌재와 대법원의 업무적인 갈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이 헌재 재판관을 지명하는 것이 갈등의 원인 중 하나라는 의견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는 “헌법 해석이라는 기능을 대법원이 가질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갈등이 있었다”라며 “(헌재 재판관 9명 중) 대법원장이 3명을 추천해 헌재가 구성되는데 (초기에는) 대법관보다 경력이 낮은 인물을 추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헌재 재판관을 지명하며 영향력을 끼치려 했었다는 것이다.

이에 헌재에서도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3월 당시 박한철 헌재소장은 “헌재 재판관 선출 방식에 대해 자존심이 솔직히 상한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어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원장은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라며 “헌재가 이중으로 민주적 정당성이 희석돼 과연 권위를 가질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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