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현장 의견 실제 반영 여부 관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위한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비상경제회의는 비상경제 시국을 헤쳐 나가는 경제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며, 방역 중대본과 함께 비상 국면을 돌파하는 두 축이 될 것이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

전문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12년 만에 되살린 비상경제회의 체제의 성공은 ‘개방성’과 ‘속도’에 있다고 내다봤다.

경제 주체와 학계 등 외부 전문가들의 ‘단순 참여’에만 그치지 말고 회의나 토론에서 나온 의견들이 실제로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정부 회의라고 참석을 해보면 그냥 형식적인 자리가 많았던 느낌”이라며 “결국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에 의해 속도감 있게 정책 반영이 되지 않고, 엉뚱한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독립성 보장’ 한은 총재 참석 여부 논란

단 한 번의 비상경제회의로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한국은행 총재의 참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경제·금융상황특별점검회의에 이어 19일 첫 비상경제회의에 이주영 한은 총재를 참석시켰다.

현 정부에서 한은 총재가 대통령 주재 경제 관련 회의에 들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청와대가 현 상황을 엄중하게 본다는 의미라고 볼 수도 있으나, 독립성이 보장된 한은이라는 기관의 특성에 비춰봤을 때 이례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에도 박근혜 정부의 ‘서별관 회의’를 맹비판하기도 했었다.

특히 이 총재는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됐으며, 문 대통령이 연임을 시켰다. 이 총재의 연임은 1974년 김성환 전 총재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며 역대 세 번째다. 1998년 전까지는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이 아니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첫 사례다.

강원 원주 출신인 이 총재는 원주 대성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한은 정책기획국장과 부총재보, 부총재 등을 거쳐 2014년 한은 총재에 올랐다. 한국은행 총재 최초로 국제결제은행(BIS) 이사회 이사도 맡고 있다.

문 대통령은 첫 회의에서 이 총재에게 모두발언과 마무리 발언 등 두 번에 걸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모두발언에서는 “특별히 이번 조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한국은행이 큰 역할을 해줬다”며 “재정·금융 당국뿐 아니라 중앙은행과 정책 금융기관,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까지 하나로 뭉쳐 협력하고 동참하는 구조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중앙은행으로서 국가의 비상 경제 상황에 책임 있게 대응하며 모든 금융권을 이끌어 주신 적극적 노력에 감사드린다”고도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은 주도로 재정당국 뿐만 아니라 민간은행까지 나서게 된 범국가적 위기대응 프로그램이 비상경제 시국에 신속히 가동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감사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회의 직후 한은은 기준금리 ‘빅컷’(big cut·큰 폭의 금리 인하)에 이어 국고채 매입 등을 통해 사실상 양적완화 수순에 돌입하며 문 대통령의 감사에 ‘화답’했다.

청와대 측은 “한은이 전 금융권이 동참하는 비상금융 조치를 성사시키는데 있어서도 ‘맏형’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현재 상황이 심각한 것은 맞다”면서도 “한은 총재를 청와대로 부른 것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YS 정부 당시 IMF로 인해 비상경제회의…지금은 뭐가 다른가

비상경제회의의 시초는 김영삼(YS)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1월 대통령 직속으로 ‘비상경제대책자문위원회’가 구성됐고, 정부 고위급 인사와 한국은행 총재, 재계·학계·언론계·금융계 등에서 두루 참여했다.

이어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임기가 시작된 1998년 3월, 전년도 11월 터진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물가, 실업 문제 등 경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의장을 맡는 ‘경제대책조정회의’를 발족했다.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결정했던 경제정책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였다.

대통령을 비롯해 재경부, 산자부, 노동부, 기획예산위원장, 금감원장, 한은 총재, 정책기획수석, 경제수석, 대통령이 지명하는 2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돼 이듬해 4월까지 매주 1회 회의를 개최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008년 글로벌 경제금융위기가 터지자, 2009년 1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가동하고, 당시 청와대는 청와대 지하 벙커에 워룸(war room·전시작전상황실)이라고 하는 비상경제상황실을 꾸려 비상경제상황실을 거시경제·일자리, 실물·중소기업, 금융·구조조정, 사회안전망 등 4개팀으로 구성해 운영했다.

경제대책조정회의와 같이 대통령이 의장을 맡았고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은 총재, 대통령 경제특보, 경제주석, 국정기획수석,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2~3명이 고정으로 참여했다.

정책 반영 속도에 있어서는 이명박 정부 때가 가장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급박한 상황에 신속한 금융·재정 정책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를 비교적 잘 극복한 데에는 속도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역시 ‘속도’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상당 부분의 의사결정 처리 과정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정책에 대한 속도뿐만 아니라 인사에 있어서도 발빠른 ‘새 피 수혈’로 위기에 대응했다. 당시 그는 비상경제대책회의 가동 직후 2기 경제팀을 출범시켜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 이른바 ‘경제팀 빅3’를 모두 교체했다. 새롭게 임명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경제수석은 금융위기 극복에 힘을 모았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타이밍과 타겟팅이 중요하다”면서 “정책의 보틀넥(bottleneck·산업 발전의 장애물)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 부처, 중앙과 지방정부 간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정책 반영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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