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이은결 일루셔니스트가 말하는 마술로 먹고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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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기자
입력 2020-03-2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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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반 한국 마술계에서 마술사 최현우와 함께 당대 최고였던 이은결 일루셔니스트. 실제로 이은결과 최현우 이후 마술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났다. 차세대 마술사들은 세계 대회에서 상을 휩쓸면서 실력을 인정 받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본업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지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연 선배 마술사들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은결 일루셔니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마술로 먹고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EG PROJECT 제공/ 이은결 일루셔니스트 ]


Q. 마술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나요?
A. 부모님의 권유로 소심한 성격을 고쳐보고자 중학교 시절인 1996년부터 마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마술에 무섭게 빠져들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직업 마술사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마술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을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어물어 전국에서 유일한 마술학원에서 3개월간 기초 과정을 익혔고 그 이후부터는 해외의 쇼와 마술 강의 비디오테이프를 스승 삼아 수없이 돌려보며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Q. 이은결 일루셔니스트와 최현우 마술사 같은 선배 세대 마술사들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반면, 세계대회 등에서 상을 휩쓸었다는 차세대 마술사들의 경우 제 이름을 건 국내 마술공연 하나도 갖지 못하는 현실인데요. 이러한 경우 계속 한국 무대에서 고전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해외시장으로 나가는 게 맞는 걸까요?
A.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내에서 대중에게도 각인되는 활동을 하려면, 대회의 입상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에도 이미 정말 많은 후배들이 해외 대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대회 입상을 위주로 준비하다 보면, 그 콩쿠르의 레퍼토리 외에는 기본기가 안되어 있거나 실제로 관객들을 접해보지 않아서 공연자로서 부족함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연을 하려면 여러 채널을 통해서 인지도나 팬덤을 쌓아야겠지요. 유튜브 같은 플랫폼도 좋고, 일반 제도권 방송을 이용할 수도 있겠죠.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저나 현우 씨를 제외한 새로운 스타일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해야 합니다. 둘과 비교되지 않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필요한 것이죠.
 

[사진= EG PROJECT 제공]

Q. 학창시절 이은결은 어떠한 학생이었나요?
A. 사실 전교에서 굉장히 유명한 지각생이었습니다. 연습을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서 새벽 4시까지 연습을 하다가 자면 이미 지각은 확실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연습밖에 안 했던 것 같습니다. 매일 지각하다 보니까 매일 10바퀴씩 운동장을 뛰었고 덕분에 체력은 아주 좋아진 것 같습니다(웃음).

Q. 자신이 생각하기에 마술로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마술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선배 마술사로서 조언 부탁드립니다!
A. 제일 필요한 것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하고 같은 생각, 목표를 가진 사람이 필요하죠, 라이벌이 있으면 서로 의지가 되거든요. 선의의 경쟁도 되고요. 만약 마술사를 꿈꾸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 세계만 보지 말고 넓게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제가 너무 마술 안에만 갇혀 있었거든요. 마술을 소비하는 관객은 이제 놀라움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엔터테이닝에서 머무르지 않습니다. 마술사가 마술을 보여주는 건 너무 당연하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그 이상의 층위를 가지는 장면을 연출해낼 수 있어야합니다. 따라서 ‘마술’의 공부 및 연마와 동시에 다른 분야의 공부 및 자신만의 시선을 갖기 위한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Q. 만약 마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어찌 되었던 비슷한 일을 했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땐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만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적도 있어요. 만화를 그리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머리로 좋아하는 것이랑 실제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거예요.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랑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진짜 다르죠. 만화는 사실 귀찮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는 그 과정 말이죠. 그 노고가 유쾌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림을 계속 안 그렸던 것 같아요. 반면에 마술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 힘든 과정조차 유쾌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해온 것이 만약 그때 안했더라도 결국은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일반적인 직장인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진= EG PROJECT 제공]

Q.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처음 마술을 할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디지털 시대의 대중은 이미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동시대의 자극적이고 스펙터클한 이미지들을 영화나 방송, 유튜브 등으로 쉽고 빠르게 접하다보니, 예전보다 확연히 대중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현장에서 느끼곤 합니다. 그만큼 기대하는 바가 높아졌다고 할까요? 다만, 간접 체험에 익숙한 지금시대의 사람들이 직접적인 ‘마술적 체험’을 할 땐 그만큼 극대화되기도 하죠. 따라서 단순한 보여주기식 ‘마술’은 외면 당하는 반면 ‘마술적 체험'이나 매체로써 마술의 가능성은 더욱 무궁무진해져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Q. 마지막으로 현재 마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많은 웃음을 전해주고 계시는데요, 이처럼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고 해야 하는 일로 다른 이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전해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 주세요.
A. 이제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꾸준히 유지하고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좋아하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서, 할 수 있을 때마다 경험해보고 펼쳐 보일 수 있는 때와 장소를 스스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생산적 활동(경제적활동)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생산적일테니까요. 거기에 조금 보태서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조금이라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이미 행복한 일입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이은결 일루셔니스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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