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코로나19 덮친 韓中, 안타까운 '평행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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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0-02-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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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포비아, 사회혼란 극심

  • 개학연기·재택 후유증 대비 필요

  • 택배 산더미, 흔들리는 서민경제

  • 중국 경험·실패 반면교사 삼아야

"상급 기관에서 알립니다. 정부가 방역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자녀가 가까운 시일 내에 베이징에 돌아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학교 통지를 전합니다. 한국 국적의 학생은 집에 머물며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으십시오. 당분간 베이징에 돌아오지 마십시오."

베이징의 한 교민이 각각 지난 19일과 25일 초등학생 자녀의 담임교사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다.

비슷한 내용 같지만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르다. 실제로 19일에는 "자녀의 입국 일정을 미리 알려달라. 방학 중 지방에 갔던 중국인 학생들의 증세를 확인한 뒤 등교 시기가 결정되면 연락하겠다"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26일 받은 문자 메시지의 첫 문장은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전염병 발생 현황이 심각하다"였다.

일주일 새 중국에서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둔화하고 있는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 감염 사례가 폭증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역전된 상황을 반영하듯 중국은 "우리를 보고도 배우지 못했는가. 더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훈수를 두고, 한국에서는 "적반하장도 유분수. 미리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지 않은 게 한스럽다"는 격앙된 반응이 나온다.

치열한 네 탓 공방 속에 양국 국민은 강박적 공포증(포비아)과 생필품 품귀 현상, 판치는 한탕주의, 비자발적인 재택 근무와 학업 차질 등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빼닮은 고난을 공유하는 중이다.

코로나19의 전국적 대유행을 막기 위한 중대 기로에 선 한국 입장에서 중국의 앞선 경험과 실패는 충분히 반면교사가 될 만하다.
 

후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치료 중인 중국 의료진(위)과 대구 칠곡경북대학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의심환자 검사를 준비 중인 의료진의 모습. [사진=신화통신·연합뉴스]


◆난장판된 교육 현장··· 베란다에서 줄넘기

한국 내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경계'에서 최고 등급인 '심각'으로 격상되면서 교육 당국은 전국 유치원과 각급 학교의 개학을 3월 2일에서 9일로 일주일 연기했다.

일각에서는 개학 시기가 4월 이후로 추가 연기될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맞벌이 부부 등 자녀의 학업 지도가 어려운 가정은 비상이 걸렸다.

중국은 2월 초중순으로 예정됐던 개학 시기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온라인 수업이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교수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특유의 권위주의식 교육 방식까지 더해져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악전고투를 벌이는 중이다.

중국의 초·중·고 학생들은 등교 후 아침 낭독(시·소설 문구를 집단 낭독하는 행사)과 국기 게양에 참여한 뒤 수업 중간중간에 안구 운동과 건강 체조도 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온라인상으로도 이를 모두 엄수할 것을 요구해 학부모들은 자녀가 시를 읽고 국기 게양식을 시청하며 휴식 시간에 체조를 하는 전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해 담임 교사에게 제출한다.

하루에 평균 7교시 정도가 진행되는데, 과목별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는 사이트가 제각각인 것도 혼란스럽다. 예컨대 수학 수업을 청취하기 위해 A라는 플랫폼에 접속했다가 영어 수업은 B 플랫폼으로 듣고 국어 수업 때 다시 A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체육 교사가 줄넘기를 과제로 주면 학부모는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운 탓에 아이를 베란다로 잡아 끌어 줄넘기를 시킨다. 개학 후 성적에 반영되는 줄넘기 심사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체온 등 건강 상태와 방과 후 학습 스케줄을 하루에 몇 번씩 보고해야 하는 학부모도, 이에 대해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교사들도 진이 빠진다.

이 와중에 애국심 고취를 위한 각종 온라인 행사에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아이들은 우한과 후베이성을 격려·응원하는 그림이나 작문을 과제로 제출하고, 학부모도 위챗 등 온라인 소통 수단을 통해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고 토론해야 한다.

베이징 내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교민은 "학급별로 온라인 개학식을 진행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단체 대화방에 방문해 한마디 하고 떠나자 학무모들이 이에 감사하는 댓글을 수십개 달았다"며 "개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글이 580여개에 달해 읽어볼 엄두가 안 났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학부모들이 재택 근무 중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점이다. 하루 종일 자녀와 함께 학업에 치이다 보니 정작 본업에 집중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상 출근이 재개되면 자녀의 온라인 수업을 도와줄 수 없어 불안하다. 한국의 학부모와 마찬가지로 중국 학부모들도 진퇴양난이다.

◆택배의 바다에서 허우적, 판치는 한탕주의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은 당정청 협의회 결과를 설명하며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은 통상의 차단 조치를 넘는 최대한의 봉쇄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가 비판 여론에 혼쭐이 났다.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강행했던 '우한 봉쇄' 혹은 '후베이성 봉쇄'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봉쇄 조치가 풀리지 않은 우한과 후베이성 주민들의 삶은 참담하다.

외부에서 공급하는 생필품에 의존해 연명하고, 병상 부족 등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병세가 악화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정부와 민주당은 "지역 출입을 봉쇄하는 게 아니라 방역망을 촘촘히 하겠다는 것"이라고 급히 해명했지만, 대구·경북 민심은 크게 동요했다.

이 밖에 바다 건너에서 전해 들은 전국 각지의 생필품 품귀 현상, 대구발 항공편 및 버스 운영 감축 등의 조치 역시 어떤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소기업의 조업 재개율이 30%에 그치고 있다고 발표했다. 마스크 등 방역 물품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의 대부분을 중소기업이 생산한다. 만성적인 물품 부족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 교통운수부는 전체의 71% 수준인 505개 도시에서 시내버스 운행을 재개했다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나머지 3분의1은 아직도 대중 교통이 멈춰 서 있다는 얘기다.

베이징의 경우 시외버스 및 공항 리무진 버스 운행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 베이징 시내 아파트 단지 앞은 허마셴셩(盒馬鮮生), 샤오샹셩셴(小象生鮮), 까르푸 등 대형 마트의 매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은 모습이다.

모바일 앱을 통한 식자재·생필품 주문이 폭주하자 아예 자사 로고가 박힌 물품 보관대를 마련해 배달원이 주문품을 해당 마트의 보관대에 두고 간다.

주민과 배달원의 접촉은 원천 차단됐고, 방호복을 입은 경비원은 혹시라도 제 것이 아닌 물건을 들고 가는 얌체족이 있지 않나 눈에 불을 켜고 살핀다.

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량 주문을 하다 보니 재고가 부족해지고 이 틈을 탄 매점매석과 바가지 요금이 판을 친다.

새벽 배송 서비스까지 일시 중단될 정도로 사재기가 심화하고,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코로나 예방 식기·용기까지 불티나게 팔린다는 한국이 조만간 맞닥뜨릴 상황일 수 있다.

◆국민 저력 믿고 전염병 퇴치 사활 걸어야 

코노라19 확산이 심각해지고 특히 후베이성 우한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1월 중순 이후 두 달 반 넘게 중국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문구가 있다.

'힘내라 우한(武漢加油), 힘내라 중국(中國加油).'

정부와 관영 언론 홈페이지는 차치하더라고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거리의 광고판 및 입간판, 차량에 부착된 스티커, 아이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까지 이 문구로 채워져 있다.

전염병과 맞서 싸우다 희생되고 있는 의료진, 그들을 위해 도시락과 커피를 몰래 병원 앞에 두고 가는 자영업자, 무질서한 중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1.5m 간격 줄서기.

중국이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건 인구 1000만 도시를 강제 봉쇄하는 사상 초유의 조치를 단행한 정부 때문이 아니라 공포 속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중국인들 덕분이다.

확진 판정을 받은 세 살배기 아이를 돌보려 자가 격리 중인 동료를 위해 음식을 싸온 지인들, 교차 감염을 우려해 지인이 돌아간 뒤에야 놓고 간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가 그 중국인들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위기에 처한 대구·경북을 응원하는 '#힘내라 대구경북', '#힘내라 대한민국' 해시태그 붙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손님이 끊겨 경영난에 빠진 식당에 배달 주문이 폭주해 2시간 만에 3일치 재고가 동났다는 사연, 세입자를 위해 임대료를 삭감한 건물주 등 미담은 차고 넘친다.

정부는 이 같은 국민의 저력을 믿고 전염병 퇴치에 전력을 기울이면 된다. "중국은 이미 코로나19에 대해 많은 경험을 쌓은 만큼 이를 한국과 공유하고 가능한 한 돕고 싶다"는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 총편집인의 말을 고깝게 여길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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