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하메네이의 눈물 ...'진퇴양난' 이란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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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01-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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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짜고 친 고스톱

미국이 드론 공격으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깜짝 제거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중동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변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에는 이란이 첫 번째 보복조치로 이라크 미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는 소식에 세계는 또 한번 놀랐다. 이후 미군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발표에 전쟁 임박설은 수그러들었다. 이란은 '순교자' 솔레이마니의 사망 시각에 맞춰 20여발의 미사일을 쏘았다. 그러나 미군의 인명과 시설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사전에 정보를 흘려 미국 측과 서로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냐는 얘기까지도 나온다.

미국은 이란에 즉각적인 반격을 자제했다. 일단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 위기는 봉합된 것으로 보이지만, 양국간의 뿌리 깊은 갈등으로 언제라도 사태가 다시 긴박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이란은 40여년 전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에서 반미 국가로 변신했다. 이후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에서 주요 분쟁의 뿌리가 되고 있다. 탈미(脫美) 벨트를 늘려 중동 패권을 노리고 있는 이란. 수십년 동안 이란을 봉쇄해온 미국은 힘이 거의 소진된 듯하다. 복잡한 역내 지정학적 갈등으로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는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이 틈을 노려 러시아는 영향력 강화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등 중동 정세는 현재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1)는 이번 미사일 공격을 보복이라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미국의 따귀를 때려 준 셈이라고 했다. 이 정도 가벼운 따귀 한대가 미국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이란 국민을 달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강력한 추가 공격도 시사했다. 겉으로는 쿠란(이슬람 경전)에 나오는 형벌 원칙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미국에 대한 비례 보복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추가 군사대응, 그리고 선전포고는 이란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는 두려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의 경제 제재로 이란 경제는 갈수록 핍박해지고 있다. 리알화 가치 폭락과 생필품 부족으로 정부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지난 11월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일어난 반정부 시위와 군부 진압은 이슬람 혁명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되었다. 이란은 전 세계 4대 산유국이지만 현재 90% 가까이 원유 수출길이 막혀있다. 재정 부족으로 전비 마련조차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과 대화나 타협에 나설 수도 없다. '순교자' 솔레이마니의 죽음에 대해 미국을 보복하기보다는 협상으로 문제를 풀자는 말은 국가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메네이는 일단 미국과의 정면 충돌은 피하는 선택을 했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작전'을 '최대 인내작전'으로 감당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8일 이란의 미군부대 미사일 공격 와중에 이란 혁명수비대가 176명이 탄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실수로 격추시킨 사건은 이란의 허술한 방공 능력을 드러내 하메네이를 더욱 사면초가로 몰고 있다. 고조되던 반미 투쟁 여론은 응집력이 약화되고 반정부 시위까지 발생했다. 트럼프 행정부를 향하던 차가운 세계 여론이 이란으로 방향을 틀고, 반미 감정으로 국민을 결집해 인기를 회복하려던 최고 지도자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신의 대리인' 하메네이의 눈물 

지난 6일 이란 테헤란대 교정에서 열린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에서 추모 기도문을 낭송하다가 울먹이며 눈물을 보이는 하메네이의 모습이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신정일치 체제인 이란에서 신격화된 존재인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눈물까지 보이며 격한 감정을 드러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란 국영방송 카메라가 이 장면을 클로즈업 시키자 극적인 효과는 더했다. 울음바다로 변한 장례식장, 장례행렬에 모인 수백만명의 인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흘린 피와 복수를 다짐하는 상징인 붉은 시아파 깃발을 흔들며 '미국에 죽음을' '트럼프에 죽음을' 등 구호를 외쳐대는 성난 시위대의 모습을 보면, 이번 사태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분노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미국에 대한 보복은 필수이다. 그렇다고 당장 미국에게 속시원하게 분풀이를 할 수도 없다. 미-이란 갈등을 틈타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과의 우호 협력 관계를 확대시키고 있지만,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들이 발 벗고 이란을 지원할 가능성은 없다. 중국이 이란의 원유를 필요로 하지만, 과거와 달리 걸프 국가나 러시아, 심지어 미국에서까지 충분히 공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력 면에서 이란은 미국에 상대가 안 된다. 이스라엘, 사우디 아라비아, UAE 등 역내 미 동맹국들의 최첨단 전투기와 미사일도 위협적이다. 아마도 하메이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공개석상에서 눈물로 표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연설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그가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과 관련, 미국의 입장이 어떤가에 따라 솔레이마니의 사망으로 야기된 후폭풍이 가라앉느냐 아니면 전쟁으로 가느냐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이란에 대한 군사적 선전포고가 아닌 추가 경제제재를 택했다. 트럼프 입장에서도 중동의 화약고가 당장 폭발하는 것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란 사태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종이 호랑이’가 아닌 ‘강한 지도자’임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매우 큰 듯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국내외에서 역풍과 비난의 화살이 그를 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란의 보복 위협으로 미국뿐 아니라 동맹국들의 국가 안보가 위험에 빠져있다. 미국에서조차 적군 수뇌부 ‘참수 작전’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실패를 맛본 미국인들은 미국이 다시 중동에서 전쟁에 나서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고 있다. 이란은 중동에서 시리아 예멘 레바논 이라크 등에서 대미항전의 대리전을 주도하는 시아파의 맹주이다. 이를 견제하기 위한 대이란 경제제재 등 미국의 최대압박 전략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온갖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기존 전략과 행동을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가 원하는 새로운 핵합의 체결에 부정적이다. 이번 사태로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넘어 이라크 등 다른 중동 국가들의 반미 감정만 악화되고 있다. 이라크 의회는 지난 5일 긴급회의에서 미군 철수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라크의 미군 공군기지는 중동 내 미국의 군사전략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이란 견제를 위해 미국이 공을 많이 들여온 이라크가 미군에게 떠나라고 한 것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설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트럼프의 수수께끼


예측 불허의 중동 정세에서, 트럼프가 왜 ‘솔레이마니 제거’라는 의외의 카드를 선택했는지는 수수께끼이다. 이란이 추가 보복 공격으로 미 대사관이나 군시설에 큰 피해를 준다면 미국 내 강경파 목소리는 커질 것이다. 특히 이란이 공언한 대로 이스라엘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 공격한다면 미국 내 개신교 보수세력을 결집시켜 선거 국면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전쟁을 하면 비용이 들어 미국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이란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강화했지만 확전이나 전면전은 트럼프의 계산에 없었을 것인데 왜 이런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일까? 대통령 선거의 해, 예측 불허의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가장 불안한 요소가 틀림없다. 트럼프는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다. 또 현재 세계 1위의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인 미국은 중동의 원유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셰일 가스 증산으로 과거 미국이 중동의 원유 의존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고분고분 하지 않으면 군사행동도 쉽게 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원유 때문이 아니라면 왜 군사적인 작전까지 동원해 적군 수뇌부를 죽이고 이란을 분노의 바다로 만들었나?

트럼프는 솔레이마니의 사망과 관련, 자신의 지시에 따라 미군이 ‘세계 최고의 테러리스트’를 제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솔레이마니는 사망 후 이란에서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다. 수백만명의 인파가 그의 장례 행렬에 몰려 거리가 마비되기도 했다. 왕정을 부정하고 이란의 서구화.세속화 정책에 반대하며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아야톨라 호메이니(1902~1989)가 사망했을 때조차 이번과 같은 대규모 행렬은 없었다.  호메이니의 사망 후 그의 이슬람 종교학교 제자이며 충복이던 하메네이가  종신직인 라흐바르(rahbar. 최고지도자)에 선출되어 이란을 30년 넘게 철권 통치하고 있다. 그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 위에 군림하며 군 사령관 및 대통령 인준 등의 임명권도 쥐고 있다.

하메이니는 이라크와 전쟁이 한창이던 1981년 당시 이란 대통령 모하마드 라자이가 암살 당하자 대선에 출마해 압도적으로 당선되어 이란의 3, 4대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호메이니는 카리스마 넘치는 엄격한 시아파 지도자로 부패한 팔라비 왕조를 타도한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하메네이도  호메이니 사상의 기초인 이슬람 율법에 따라 미국과 식민주의에 대한 강경 투쟁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라는 세속적인 권력을 경험하고 최고지도자를 맡아 신의 이름을 팔아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는 서방 언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최고지도자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이란 혁명수비대는 권력 유지와 반미 항전의 선봉장 노릇을 해왔다. 솔레이마니는 이란혁명수비대에서 핵심 엘리트 조직으로 통하는 고드스(Quds)군 사령관 직을 22년이나 지내며 중동 내 이란의 군사작전을 총지휘한 인물로 국내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실질적 권력 2인자로 다음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되면 온건파인 현재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달리 미국에 더욱 적대적일 것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미국 이란 핵시설 정밀 타격 나설까


솔레이마니의 사망 이후, 전 세계는 하메네이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이란의 핵개발과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이다. 2018년 5월 미국이 이란의 비밀 핵개발을 이유로 이란 핵협정(JCPOA. 포괄적공동행동계획)을 탈퇴한 데 이어 이란 역시 지난 5일 합의 이행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만약 중동에서 전면전이 발생한다면, 미국은 이란의 핵시설 정밀 타격에 나서 핵 개발 의지를 완전히 제거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이리하여 미국이 이란 핵개발 저지를 위해 일부러 중동에서 이란을 자극해 군사충돌의 빌미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처럼 이란이 핵무장을 한다면 중동의 평화는 완전히 물건너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호르무즈 파병 문제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파병을 하더라도 우리와 오랜 기간 경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란을 지나치게 자극하면 안 된다. 우리 병사들이 공격 대상이 되지 않도록 안전을 고려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지난주 아주경제와의 좌담회에서 "사실 이란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했다. 이란 사람들이 "우리는 한국을 좋아하는데 한국은 우리를 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상당히 아쉽다"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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