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트럼프 급했나 '이란 참수작전'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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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01-0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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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현지시간) 이란 중북부의 종교 도시 곰의 잠카런 모스크(이슬람 사원) 돔 정상에 게양된 붉은 깃발. 잠카런 모스크의 붉은 깃발은 순교의 피가 흐를 격렬한 전투가 임박했다는 상징물이며, 이는 이슬람과 이란이 적에 보내는 경고라고 이란국영방송은 전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미군의 기습적인 드론 공습으로 이란 군부의 최고 실세이며 전략가인 가셈 솔레이마니(63)가 사망하면서 중동 정세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였다. 이란 지도부는 미국에 '가혹한 복수'를 경고하며 결사항전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백악관 참모들도 놀라워할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솔레이마니 제거 명령은 전격적이며 의외의 선택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란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는 등 중동의 군사 강국 이란과의 정면 충돌을 자제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왜 '극단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적 수뇌부  '참수작전' 카드를 꺼냈을까? 

무엇보다도, 솔레이마니가 어떤 인물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최측근이다. 이란의 신정 일치 통치 체제의 토대인 이란혁명수비대에서 핵심 엘리트 조직으로 통하는 쿠드스(Quds)군 사령관 직을 22년이나 지냈다. 쿠드수군은 해외에서 특수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정예조직으로, 중동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에는 눈엣가시다. 실질적 권력이 대통령을 능가할 정도였던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예멘,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등 중동 곳곳에서 이란 혁명의 대리전을 기획하고 현장 지휘한 인물이다. 이번에 그가 폭사한 장소가 이란이 아니고 이라크의 바그다드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소위 '시아파 벨트' 국가를 활보하면서 친이란 무장조직의 작전과 정보·정책을 총괄해왔다. 그만큼 솔레이마니 살해는 중동 전체 안위와도 직결된 사건으로, 트럼프에겐 엄청난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4월 이란혁명수비대를 해외 테러 조직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솔레이마니의 지휘 아래 이란혁명수비대가 2000년대 미-이라크 전쟁 중에 608명의 미군을 살해한 책임이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시리아에서 정부군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부추겨 바사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집권 유지를 도왔고, 레바논에서는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미국으로서는 이란의 대미 항전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을 제거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솔레이마니의 사살이라는 극약 처방을 쓴 것을 두고 미국에 임박한 위협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사실은 하원의 탄핵 가결과 대외정책 성과 부족에 따른 트럼프의 '반전 카드'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올해 11월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새해 벽두부터 외교적으로 난관에 부닥쳤다. 이란이 지원하는 이라크 민병대가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습격했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에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할 것이라며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2018년 5월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합의(JCPOA)' 탈퇴 뒤,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지난해 6월 이란의 미군 무인기 격추, 9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석유시설 피습 등 사건으로 역내 긴장이 고조되었지만, 양측은 정면 충돌은 피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중동에서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하면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라크 내 미국인 소개령까지 내린 점도 범상치 않다. 이젠 이란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는 이란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정치적으로 그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지난주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의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인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도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종이 호랑이'라는 비난이 거세질 것을 우려한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솔레이마니의 살해에 대한 보복성 공격을 펼칠 경우 이란 52곳이 미 최신 무기의 신속하고 강력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52곳의 의미는 1979년 이란혁명 당시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1년 넘게 억류됐던 인질 52명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수일 내 중동지역에 수천명의 추가 병력도 증파할 예정이다. 

이란 정부는 5일(현지시간) 미국의 압력에 강수로 맞섰다. JCPOA에서 정한 이란 핵프로그램에 대한 동결·제한 규정을 더는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란 핵 위기는 다시 점화되었다. 지난 2015년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이 역사적으로 타결한 핵합의는 협상의 두 축인 미국과 이란의 탈퇴로 4년 반 만에 좌초될 처지가 된 것이다. 이날 모흐센 레자에이 이란 전 혁명수비대장은 이란의 보복에 미국이 대응할 경우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는 가루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동에 전운이 감돌고 있지만 이란이 미국과 전면전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군사력에서 미국과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사일과 드론 등을 이용해 중동 내 미군 시설과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변국 석유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세계 최대 석유 유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유가 급등으로 세계 경제에 대한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하루에 약 2천만 배럴의 원유가 이곳을 통과하며, 이 중 80%는 일본,  중국, 한국으로 향한다.  이란은 마음만 먹으면 호르무즈 해엽을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 청해부대 파견을 검토 중인 우리 정부로도 고민이 커지고 있다. 만약 청해부대를 파견한다면 본의 아니게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 사태는 우리 경제뿐 아니라 안보 지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대북 문제보다는 발등의 불이 된 중동 문제에 치중하면서 북한의 대남·대미 정책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면밀히 분석과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때이다.  

 

[사진=AP·연합뉴스] 솔레이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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