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세계를 뒤흔드는 중국, 사방에 아킬레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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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12-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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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을 잠자게 두어라, 깨어나면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 나폴레옹

 

[이수완 논설위원]




“중국은 잠자는 거인이다. 그냥 잠자게 두어라. 깨어나면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China is a sleeping giant. Let her sleep, for when she wakes she will shake the world,"  진위 여부에 논란은 있지만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1769~1821)가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이 경구(警句)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중 관계를 다루는 서적 또는 언론 기사에서 꾸준히 등장한다. 덩샤오핑이 1978년 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은 마침내  깨어났고 실제로 전 세계를 마구 흔들며 뒤섞고 있다. 서양인의 심리에는 중국 공산주의 일당 체제와 눈부신 경제 발전이  결합하여 눈앞에 보이는 거대 제국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만도 하다.  

2008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FT) 칼럼니스트 지던 라크맨(Gideon Rachman)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활력이 넘치는 중국에 대한 칼럼에서 자신은 글에서 상투적 문구를 사용하길 싫어 하지만 우리 귀에 익숙한 나폴레옹의 어록을 꺼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금융위기로 경기 침체 그늘에서 잔뜩 움츠려 있는 반면, 세계 어디를 가도 중국의 부단한 상승세를 목격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젠 미국 중심의 단축(單軸) 시대는 저물고 글로벌 패권을 위한 미·중간 경쟁이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또 그 경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마라톤이라며, 차분한 마음으로 장기적 게임 전략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크맨이 언급한 대로 미국과 중국의 마라톤 시합이 이미 시작됐다. 미국이 앞에서 달리고 있지만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 속단하기는 너무 이르다.      

30년 전 중국 경제 규모는 전 세계 경제의 2% 정도만 차지하는 미약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16%를 넘어섰다.  10년 전엔 미국을 위협하는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이젠 세계 경제 성장의 주력 엔진으로 국제 무역과 상품 시장까지 쥐락펴락하는 존재가 됐다. 과거 '짝퉁 왕국'이었던 중국은 이제는 5G,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분야에서까지 미국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 경제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파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막대하다. 그리하여 세계 각국은 중국의 미세한 몸짓 하나 하나에도 민감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에도 중국발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GNI)이 1만 달러를 넘어서는 단계에서 중국이 고도성장을 멈추고 중속 성장 시대에 진입하면서 고성장 시대 묻혀있던 여러가지 부실 요인이 드러나면서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2018년 이후 현재 진행형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곧바로 이해된다.  미·중 무역 갈등 여파로 인해 승승장구 하던 중국 경제가 타격을 입자, 세계 경제도 동력을 크게 상실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2018년도 전 세계 국가의 75%가 경기 상승을 경험했으나, 올해에는 무려 90%가 경기 둔화를 겪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고 동맹국들에게 화웨이의 5G 장비 사용 배제를 요구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면서 최근 중국의 경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여러가지 공식 경제 지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내년 성장률이 6%선을 깨고 5%대로 내려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 경제계에서는 6%대 성장률 사수를 위한 방어선을 치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성장 둔화는 고용 악화 등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야기 시킨다. 그렇지만 급격히 늘어난 부채로 인해 경기진작을 통한 인위적 경기 부양 대책은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중국이 정부 기업 가계의 부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할 경우 글로벌 경제도 성장 둔화를 피할 수 없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201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56%인 중국 부채 비율이 2022년엔 300%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부채 증가와 금융 부실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중국 경제가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지금 살아 있었다면, 중국이 넘어지면 세계가 모두 함께 다친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이번 달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를 체결하기로 합의하면서 양국은 정면충돌을 피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국이 미국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고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와 금융서비스 시장 개방 확대, 환율조작 중단 등을 약속하자 서둘러서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를 연기하고 기존 고율 관세를 인하한 것이다. 하지만 자국 경제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는 미국의 대중 관세가 아직 대부분 남았고, 통상 분야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중 압박이 외교·군사·기술·인권 등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아직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없는 상황이다. 내년도 1단계 합의가 공식 서명된다 해도 이행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또 양측이 2단계 논의 단계에 진입하면 대표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지목되는 중국의 산업 보조금 문제 등 불공정 관행이나 국영기업 개혁 등 합의가 쉽지 않은 '진짜 쟁점'들이 대기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


설사 미·중간 무역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이 된다 해도, 중국 경제가 이미 상승 모멘텀을 잃어가고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 해주는 여러가지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기회를 찾는 한국과 일본 등 이웃 국가뿐 아니라 중국 내수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성장동력을 키워가던 신흥국들에게는 암울한 징조이다.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고도의 불균형 경제이다.  즉 중국 경제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지나치게 크고, 이로 인한 신용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IMF에 따르면 중국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5%로 미국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지난 10년간 민간 분야의 신용 증가 속도는 1980년대 일본의 버블 붕괴 이전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상회한다. 이로 인해 산업 시설의 과잉과 주택과 상업 건물의 공실 문제가 중국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은행의 부실채권 문제 해소와 좀비 기업의 퇴출이 시급하다. 최근 중국 인민은행이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이례적으로 금융리스크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중국의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노동시장 변화도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오랜 1 자녀 정책의 결과 중국의 노동력은 향후 30년간 25% 정도 감소할 전망이다. 이리하여 중국이 진정 부자가 되기도 전에 너무 나이가 들어 버릴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중국 천하'의 꿈을 펼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야심이다. 그의 지나친 야심은 중국에게 황금알을 낳아주던 거위를 죽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덩샤오핑은 중국 경제를 개혁하면서 민간부문이 중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불행하게도 시 주석은 덩샤오핑이 제시한 개혁의 방향과 다른 길로 나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민간 경제의 급속한 확대로 공산당의 국가 장악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당의 기강을 확립하고 국영기업의 역할을 확대시키는 데 치중하는 모습이다.  

미·중 무역갈등 속에 홍콩 시위 사태로 올해 시 주석은 집권 이후 최대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각종  '내우외환' 속에서도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뿐만 아니라 정부와 군에 대한 장악력까지 높이면서 난국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통치이념으로 대변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중국몽(中國夢)의 실현을 위해 중국 인민들의 애국심 고취, 그리고 대만과 홍콩을 겨냥해 평화통일과 일국양제(一國兩制) 강화를 위한 행보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달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하고 친중파가 참패하면서 시 주석의 정치적 위상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재신임을 확인하고 시위 사태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시 주석은 지난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어떠한 힘도 우리 위대한 조국의 지위를 흔들 수 없으며 중국 인민과 중화민족의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고 있는 '두개의 백년'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인 2021년, 신중국 건국 100년인 2049년) 목표와 중국몽 실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 


'절대권력' 시진핑의 중국몽 

2012년 집권 이후 시 주석은 반부패 투쟁을 명분으로 강력한 1인 권력을 구축했다. 지난해 3월 양회 때는 2032년까지 최고 권력자로 군림할 수 있는 2기 집권 기반을 완성했다. 그가 제기한 '중국몽'은 2021년까지 기본적으로 의식주 문제가 없는 샤오캉(小康·풍족하고 편안한)' 사회 실현 등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풍요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이 미국의 국력을 따라잡아 세계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의 표출로 인식되고 있다. 한마디로 강한 중국을 내외에 과시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浮上)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중국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우선시하는 서구식 민주주의 가치보다는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기반으로 국가의 번영을 추구한다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공산당 간부와 인민들의 불타는 투쟁정신과 애국심으로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이 경제력, 군사력 등 하드파워 측면에서는 미국과 맞짱을 뜰 만큼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지구촌에서 인류보편의 가치를 무시한다면 진정한 선진국으로 존경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전문가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자신의 저서 에서 중국은 미국이 가진 언어(영어), 통화(달러), 문화(미국 대중문화) 등의 패권요소가 필요하며 "전 세계인과 이해관계를 함께한다는 인식 기반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시 주석은 과거 중국 지도자가 내치(內治)에 비중을 두며 수동적으로 대응했던 대외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즉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생긴 국제 사회의 리더십 공백을 중국이 메우겠다는 '강한 외교'를 대내외에 표명하고 있다. 덩샤오핑 시대부터 이어지던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우다)에서 벗어나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겠다)의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전쟁은 어차피 벌어질 수밖에 없는 미·중 패권 경쟁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승부욕이 강한 트럼프와 '절대권력' 시진핑의 출현으로 한발 앞당겨진 것일 뿐이다. 시장에서는 미·중 전쟁이 30년 또는 50년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다. 우리로선 서로가 지나친 난타전으로 세계 경제를 대혼란에 빠트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위축되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중 양측이 나름대로 절묘한 균형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과 몇 합을 겨루어봤더니 이전의 중국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중국도 마냥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파국으로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마카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마카오 주둔 인민해방군 부대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마카오 주둔 부대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실천을 위해 더 많은 공헌을 해야하며 이를 위해 임무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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