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슈퍼리치' 블룸버그 대선行.. 태풍의 눈? 찾잔속의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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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12-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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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지난달 25일 세계적인 갑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77)이 2020년 미국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4년 더 감당할 수 없다"며, "트럼프를 물리치고 미국을 재건하는 것은 우리 삶의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싸움"이라며 출마의 변을 올렸다. 그의 출마 소식을 접하면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자신의 이름을 딴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 L.P.의 사주이며 창립자로 그의 자산은 무려 534억 달러(약 63.5조원)로 미국에서 9번째 부호(포브스 집계)이다.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보다 재산이 17~18배나 되는 부자인데, 주식 트레이더 출신인 그가 어떻게 해서 그 많은 부를 쌓게 되었나? 뉴욕 시장을 3연임 하면서, 9·11 테러 공격으로 파괴된 도시와 2008 금융위기로 인한 월가의 패닉 등 美 현대사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직접 목격한 그는 미국을 어떻게 재건 시키고자 하나. 민주당 경선에서 후발주자로 나선 그는 과연 기존 경선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위협적인 카드인가? 마지막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 그룹의 사주 개인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부딪치는 '이해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 문제이다. 특히 세계 금융시장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블룸버그 단말기나 TV 등에 제공되는 뉴스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다른 기업도 아니고,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의 사주(社主)가 출마를 하자 많은 고민을 했을 듯하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우리는 이번 대선의 사실상 모든 면을 다룰 것이다. 마이크(그리고 그의 가족과 재단)에 대한 심층보도를 하지 않아온 전통 역시 계속된다. 이러한 방침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다른 경쟁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존 미클레스웨이트 편집국장은 사내 고지를 통해 이번 대선 보도와 관련 지침을 이렇게 내렸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하면 내가 월급을 주는 기자들이 나에 대한 나쁜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선에 출마할 경우 블룸버그 매각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으나, 아직 아무런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사주의 출마 선언으로 객관성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블룸버그 통신의 언론 윤리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미클레스웨이트 편집국장의 지침에 따르면,  블룸버그 전 시장의 '재산 또는 개인 생활'에 대한 보도는 일절 허용이 안된다. 강력한 총기 규제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등 사회문제에 대한 사주의 개인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오던 블룸버그 오피니언 서비스도 제약을 받게 되었다. 특히 선거 캠페인에 대한 외부 칼럼은 완전히 사라질 방침이다. 몇명의 오피니언 섹션 소속 논설위원들은 휴직을 하고 블룸버그 선거 캠페인에 투입 된다. 2700여명의 기자와 데이터 애널리스트를 보유한 세계 최대 경제 매체가 지구촌 최대 관심사인 미국 대선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편집의 독립권은 사실상 박탈된 것이다. 민주당 경선 주자에 대해 심층보도를 하지 않겠다는 블룸버그의 특이한 보도정책은 블룸버그가 12년간 뉴욕시장으로 재직했던 당시에도 적용되었다. 하지만 대퉁령 선거는 뉴욕 시장 선거와 다르다. 뉴욕 시장과는 달리 미국 대통령 자리는 블룸버그가 사업의 기반을 두고 있는 금융 시장을 규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다. 그리하여 선거 보도의 공정성과 이해상충 문제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다른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심층적 파헤치기 보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러한 지침은 공화당 후보로 유력한 트럼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휘말린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父子)의 부패 혐의는 파헤치지 말고, 군사지원을 지렛대로 우크라이나 정부에게 바이든 부자의 조사를 압박한 트럼프에 대해서는 심층보도가 허용된다는 얘기다. 물론, 블룸버그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해 민주당 후보로 지명을 받을 경우, 트럼프에 대한 심층 보도 방침은 재고될 것이라고 사측은 밝혔다. 하지만 이는 블룸버그 후보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느냐 아니냐 여부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블룸버그 통신이 공정보도에 대한 독자들의 우려를 잠재우려면 사주와 다른 모든 대선 후보에 대한 기자들의 취재에 제약을 두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못한다면, 차라리 선거 자체에 대한 취재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메검 머피 블룸버그 전 편집국장은 트위터를 통해 "(블룸버그 기자들은) 업계에서 가장 성실한 인재들"이라면서 "가장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유능한 기자들의 취재를 금지하는 지침을 내리다니 믿을 수 없이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1990년 설립된 블룸버그 통신은 처음엔 금융정보 뉴스 서비스에 주력하며 로이터와 다우존스와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후 디지털 모바일 플랫폼, TV, 라디오 등으로 보도 영역을 확장하면서 2015년 퓰리처상 수상 등 탐사부문에서도 명성을 쌓아왔다. 현재도 최대 수입원은 주식·외환·채권 등 전세계 금융시장과 기업의 트레이더, 펀드 매니저, 분석가에게 한순간도 없어서는 안되는 실시간 데이터와 뉴스와 분석, 오피니언 등이 담긴 단말기(터미날)이다. 연 매출은 110억 달러에 이르며 현재 69개국에 1만9000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약 32만5000개 단말기에 각국 선거나 쿠데타 소식은 물론 기업 CB 발행 정보까지 독자들 니즈에 특화된 뉴스가 하루에 5000개 정도 쏟아진다. 단말기 한대당 사용료가 월 1500달러 정도이니 단말기 사업만 해도 엄청난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자신들의 단말기 독자들을 "세계 비즈니스와 금융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런 영향력 있는 매체의 미국 대선 보도 지침은 세계적으로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트럼프 재선 캠프는 블룸버그 기자들에게 취재를 제한키로 결정했다. 대선 관련 블룸버그의 '편향적 보도방침'을 철회할 때까지 트럼프의 재선 관련 행사에 취재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래저래, 블룸버그의 기자들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로이터 등 세계 주요 유력 매체는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신뢰의 원칙(trust principles)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이해 관계에 있는 특정의 개인과 단체, 당에게 유리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며, 청렴과 정직 그리고 독립성을 준수토록 기자들에게 엄격한 교육을 시키고 있다. 전통적으로 블룸버그 편집국 기자들과 에디터들에게는 색다르지만 중요한 지침이 하나 더 내려진다. "돈을 따라가라'는 것이다. 미디어 업계에서 이 지침을 '블룸버그 방식' (Bloomberg Way)으로 칭한다. 아마도 창업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러시아에서 이민 온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존스홉킨스 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하버드 MBA 학위를 받은 이후 살로먼브러더스 주식 트레이더로 입사한다. 초고속승진을 거듭하며 1973년에는 파트너 지위까지 오르며 주식 트레이딩과 시스템 개발 부문을 이끌었다. 그러나 1981년 살로먼브러더스가 다른 회사에 인수되며 해고가 된다. 이후 파트너 자격으로 받은 1,00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기반으로 금융회사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PC에서 전송받아 제공받는 단말기를 개발해 눈부신 성공의 가도를 달려왔다. 각 증권사에 금융정보와 실시간 뉴스를 바로바로 보내 주기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서비스가 된 것이다. 블룸버그 단말기는 손으로 일일이 계산했던 채권 수익률이 단말기가 알아서 척척 계산하고, '메시징 서비스'를 통해 전세계의 사용자들이 특화된 정보를 서로 교환하게 만드는 등 금융시장의 혁신을 이끌어 왔다. 

2001년 블룸버그는 기업가가 아닌 정치가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이 건강상 이유로 사임하자 당적을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바꿔 뉴욕시장으로 선출된다. 9·11 테러 발생 바로 몇 주 후이다. 2005년 재선된 이후 2년 만인 2007년에 공화당을 탈당했다. 이후 무소속 정치인으로 있다가 지난해 민주당원으로 복귀했다. 재임시 블룸버그 시장의 초반 지지율은 미약했다. 하지만 뉴욕 시의 엄청난 재정 적자가 흑자로 전환되고, 공공 교육 부문 개혁 등 성과가 나타나면서 상당히 높은 지지율을 누려왔다. 그는 선거 때마다 경쟁 후보에 압도적으로 많은 비용을 사재로 충당했고, 시장 연봉으로 1달러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민간 로비그룹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정치인은 돈이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민주당 후보 대선 출마 선언 이후에도 다른 경쟁 후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막대한 물량공세를 벌이고 있다.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블룸버그 후보의 대선 자금은 최소 5억 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등 모든 후보자의 선거자금보다 많은 규모이다. 그의 출마 소식이 알려지자 민주당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또다른 부자가 선거를 사려 한다'는 비판도 고개를 들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뉴욕 시장일 당시 트럼프는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명성을 날렸다. 트럼프와 달리 자수성가형 부자인 블룸버그는 자신은 트럼프보다 이미 훨씬 돈도 많고 경험도 풍부해 트럼프와 대선에서 상대하면 그를 물리칠 것이라고 호언장담 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doer and a problem solver - not a talker" (말로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가)라고 칭하고 있다. 그는 이민, 총기 규제
등 사회문제에 대해선 다른 민주당 후보들과 같은 입장이지만 경제 문제 있어서는 보수적 친기업 성향이다. 예를 들어 '슈퍼리치'에 대한 부유세 신설이나 정보기술(IT) 대기업 해체 등 급진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을 운영하자는 '메디케어 포 올' 구상이나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그린 뉴딜정책'에 대해서도 실용적인 대안을 주장하고 있다. 또 대선 후보 중에서 가장 친중(親中)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對中) 관세에 대해 "(양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인권침해와 홍콩 시위 폭력 진압에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를 자제해 왔다.

그렇다면 블룸버그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바이든 전 부통령(76), 엘리자베스 워런(70), 버니 샌더스(78) 상원의원 등 소위 민주당의 '빅3' 주자 모두 현재 지지율이 정체된 상태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탄핵 악재로 고전 중이지만 그들이 아직 큰 위협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블룸버그가 뒤늦게나마 경선에 뛰어든 것이다. 민주당 내 대표적인 온건 중도파인 바이든 후보는 아들 스캔들 등 각종 흠으로 휘청하는 상황이고, 워런과 샌더스는 급진적 진보 성향이라 본선 경쟁력에서 취약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빼앗긴 중서부의 노동자, 중산층 유권자를 되찾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도 주자'가 나서야 한다는 민주당내 목소리가 커지고는 있지만, 아직 그의 지지율은 '빅3' 주자에 못미치는 수준이다.

블룸버그 후보는 거대한 미디어 그룹을 키우면서 입증된 경영능력과 뉴욕시장 재임 당시 성공적인 시정(市政)경험은 최대 장점이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옷을 수시로 바꿔입은 경력이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가는 그의 '중도적인' 성향 때문에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시장 재임 당시 도입한 '신체 불심검문(Stop and Frisk) 강화'나 '탄산음료 판매 제한' 등 블룸버그표 정책도 논란의  대상이다. 한달 전만해도 2020년 대선을 향한 민주당 후보 경선전은 진보와 중도파의 싸움으로 묘사됐지만, 블룸버그의 등장으로 판도가 바뀔 수 있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 후보는 다른 17명의 민주당 예비 후보들과 달리 내년 2월 경선이 치러지는 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건너뛰고 3월 3일 슈퍼화요일에 주력할 방침이다. 민주당 대의원표의 35%가 걸린 만큼 전문가들은 이번 슈퍼화요일에서 선전하는 후보의 승리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고 전망한다. 만약 블룸버그가 슈퍼화요일 예비투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대선 도전은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블룸버그가 슈퍼화요일에서 선풍적 바람을 일으켜 반 트럼프 대세론을 형성할 경우, 뉴욕 억만장자 간의 대선전은 현실화될 것이다.
 

대선 기자회견 하는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 (노퍽 AP=연합뉴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25일(현지시간) 첫번째 유세 지역으로 택한 미국 버지니아 주 노퍽 힐튼 호텔에서 대선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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