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밥이다] 이중근과 정경심…검찰의 예외없는 ‘우격다짐 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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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 기자
입력 2019-12-1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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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혐의 쪼개기, 우격다짐식 법 적용, 생각보다 만연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부인 정경심 교수 등에 대한 수사에서 검찰이 비난을 받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먼지털이식 수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격다짐식 혐의적용이다. 같은 사안에 여러 가지 법을 적용해 위법사항이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른바 ‘혐의 쪼개기식’ 공소장도 논란이 된다.

정치권의 막후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수사를 지지하는 야권에서조차 “검찰이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검찰이 칼을 어디로 들이  대느냐에 따라 누구든 감옥행을 각오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행태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만연해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일수록 우격다짐식 법적용이나 무리한 기소가 심했을 수도 있다.

힘 좀 쓴다 했던 정치인도, 돈 좀 벌어봤다는 기업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두가 ‘파렴치범’이라는 멍에를 쓰고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던 것이 사실이고 언론은 그들을 조리돌림 했다. 

물론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거물급 정치인이니, 혹은 대기업 총수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는 분명 잘못된 행태다. 그리고 그렇게 함부로 휘둘러 댄 칼은 언제든지, 아니 더 쉽게 보통사람들의 목줄기를 노리게 될 수 있다. 

그 순간 아마 검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대기업 회장도, 유명 국회의원도 다 그렇게 내손을 거쳐 기소됐어"라고···.


△납작 엎드린 대기업 회장

그런 게 본다면 부영그룹은 참 만만한 기업일 수 있다. 재계 순위 20위권의 대기업이지만 아직 신생기업일 뿐만 아니라 건설업이 주력인 만큼 속칭 '때'도 왠 만큼 묻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털면 털리는 곳인 셈이다.

게다가 주력업종인 임대 아파트 공급과 관련해 이런저런 잡음도 사실 적지 않았다. 그런 기업이 검찰수사를 받고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일 지경이다.  

지난 16일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자세를 바짝 낮췄다. 아마 부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전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보통 형사재판의 결심공판은 검사가 재판결과에서 드러난 혐의에 대해 구형을 하면, 피고인이 최후진술을 하면서 자신의 억울함과 결백함을 호소하거나 유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일단 후자를 택하라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상식이다. 

게다가 이 회장은 이미 1심에서 혐의의 상당 부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유죄판결이 나온 나머지 혐의에 대해 다투기 보다 몸을 낮춰 선처를 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이날 최후 진술에서 "이유를 막론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매우 죄송하고 후회스럽다"며 "주인의식을 가지려고 회사를 상장하지 않고 100% 주식을 제가 소유한 채 운영했다. 회사가 곧 이중근 제 자신이기에 개인 이익을 위해 회사를 운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이제 늙고 몸도 불편한 제가 얼마나 더 일할지 모르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내 감사제도를 고치는 등 오래 존재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은퇴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잘 정리할 기회를 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변호인들도 같은 부분을 강조했다. 변호인은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된 혐의는 겸허하게 반성하고 있다. 모든 피해도 복구하는 등 충분히 집행유예가 권고될 범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며 "피고인은 결코 사리사욕만 채우는 탐욕스러운 총수가 아니다. 공소사실 전부 개인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에 선고된 1심에서 법원은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12년보다는 대폭 줄었지만 경제사범으로는 상당한 중형에 해당된다. 하지만 법원은 이 회장을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방어권 행사를 이유로 들었지만 사실상 항소심 등 상급심에서 낮은 형량이 선고되거나 집행유예가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 판단이 가능했던 것은 이 회장의 혐의 가운데 대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유죄판결을 받은 부분보다 무죄의 비중이 몇 배는 컸다. 기소된 횡령·배임액이 수천억원에 달했지만 벌금을 1억원이라는 이례적으로 낮은 액수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되는 부분이다.
 

△ 12개 혐의 대부분 무죄

이 회장은 당초 4300억원에 달하는 횡령과 배임 등 모두 12개 혐의로 기소됐다. 법리상 횡령·배임혐의는 필수적으로 조세포탈 혐의를 동반하게 되는데, 그래서 그 액수만큼의 조세포탈도 함께 적용됐다. 임대주택법 위반과 공정거래법 위반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원래는 이런 경우 처단형이 무거운 것만 기소하면 되는데 검찰은 굳이 혐의를 나눠 공소장에 기재했다. 소위 말하는 '혐의 쪼개기'이다. 

검찰 기소내용 가운데 무엇보다 이 회장을 곤욕스럽게 하는 것은 임대주택을 분양으로 전환하면서 적용한 공사원가를 부풀렸다는 혐의다. 관급공사에서 예산을 산정하는데 쓰이는 ‘표준 건축비’를 적용해 분양가를 정했다는 것인데 실재로 들어간 공사비용보다 20~30% 부풀려졌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이 있다.  정부에서 정한 ‘표준건축비’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결정한 것을 어떻게 죄가 되는 행위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시중가격보다 비싸다고 해도 엄연히 정부에서 정한 기준인데 어떻게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것.

그런 식이라면 그간 표준건축비에 맞춰 진행된 모든 관급공사는 국고낭비이며 동시에 국고유용·횡령으로 처벌을 받아 마땅한 행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1심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임대주택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만약 이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면 이 회장은 물론 부영그룹도 뒷일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부분이 유죄로 인정되면 뒤이어 분양을 받은 입주자들로부터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 반환소송이 잇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간 부영이 전국에 지은 아파트 단지를 감안할 때 소송가액은 수조~수십조원에 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4300억원에 달한다는 횡령·배임액도 대폭 줄었다. 횡령과 배임을 합쳐 340억원만이 유죄로 인정됐다.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액의 1/10 수준에 불과했다. 통상 횡령·배임은 법정에서 액수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 일상적이기는 하지만 1/10은 매우 이례적이다.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 아니었느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피고인이 부영그룹이고 이중근 회장과 그 일가족이 아니었다면 검찰은 상당한 비난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오히려 언론을 통해 ‘여론전’을 벌이며 자신들의 공적을 자랑했다. 임대주택법 위반 등 그럴 싸한 혐의를 일부러 흘리거나 공소내용과 관련이 없는 사적인 문제를 들춰내기도 했다. 

변호인들도 이점을 문제 삼기도 했다. 변호인들은 지난 해 1심 공판에 앞서 “이미 파렴치한 기업인으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면서 재판부에 선입견 없이 재판해 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 비난할 수 있으면 처벌할 수도 있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부영그룹의 잘못된 행태가 있다. 서민들에게는 재산목록 1호가 바로 ‘내 집’이고 여전히 ‘내 집 마련’이 중요한 재태크의 하나인 상황에서 하자보수를 미루거나 나몰라라 했던 것은 두고두고 원한을 살 만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 하자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을 상황에 처할 뻔한 기억이 있다면 그 ‘원한’은 골수에 사무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어떤 내용이 됐든 부영을 두둔해 주고 싶은 생각은 1도 없다.

오래 된 일이기는 하지만 2006년 경남 김해 장유지구 임대아파트에서 벌어진 '영아 화상사건'  같은 것은 부영주택과 부영그룹의 이미지를 매우 나쁘게 만든 사례였다.

필자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문제의 그 아파트에 우리 가족이 들어가 살 뻔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내 아들이 그 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셈인데, 솔직히 아찔하기만 하다.

당연히 필자 역시 부영그룹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 이런 악연 때문에 필자 역시 부영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에 상당한 응원을 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부분이 그때도 눈에 띄지 않은 것을 아니지만 '모른 척 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도덕·사회적 평가는 법률·형사사법적 평가와 다르다. 욕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둘을 혼동해서 보고 있지는 않았던가? 

내년 1월 설 연휴 직전에 나올 것으로 보이는 항소심 선고는 이 회장에게는 인생의 황혼기를 좌우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일단 이 회장 쪽에 유리한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조금 더 우세하다.

임대주택법 위반혐의에서 유죄가 나오지 않는다면 집행유예를 기대해 볼 수도 있는 견해까지 있다.

원칙적으로 횡령·배임은 손해액을 전부 변재하면 선처하는 것이 관행이었다는 점이 근거다. 부영그룹이 재계 20위권에 들어가는 재벌기업이지만 이 회장 일가가 주식의 100%를 소유한 사실상의 가족기업이라는 점도 양형에서는 유리한 점이다.

피해를 본 다른 주주가 없는데, 법인의 피해는 이미 변재됐으니 처벌할 당위성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이 회장이 우리나라 나이로 80세의 고령이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와 별개로 사회의 법 감정이 과도한 검찰의 무리한 ‘우격다짐식’ 기소를 방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곰곰이 되짚어 볼 때가 된 것 같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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