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검찰을 공수처처럼 바꾸자

김낭기 논설고문입력 : 2019-10-31 17:41
검찰총장 임명에 야당 참여와 동의 절차 거치고 법무부장관 지휘권 폐지로 수사 독립성 높이고 기소권 제한 장치 마련하면 공수처같은 검찰 가능 새 제도 신설보다 기존 제도 개선하는 지혜 필요
공수처 논란을 보면서 공수처를 만들지 말고 검찰을 공수처처럼 바꾸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검찰총장을 공수처장처럼 야당의 참여와 동의 절차를 거쳐 임명하게 하고, 검사들의 범죄에 대해선 검찰 기소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검찰을 바꾸면 공수처를 만들지 않고도 공수처를 민든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초 공수처 설치 필요성이 나온 이유는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검사, 판사 등 권력자들의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수처 법안은 권력자들의 범죄 수사를 위해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장치들을 뒀다. 그중 핵심이 공수처장 임명에 야당의 참여와 동의를 거치게 한 것이다. 또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방지를 위해 검사, 판사, 경무관 이상 경찰 고위 간부의 범죄에 대해선 공수처에 수사권 외에 기소권까지 줬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검사에 관한 것이지만, 내친김에 판사와 경찰 고위 간부도 공수처 기소 대상에 포함시켰다.

공수처장 임명 절차부터 보자.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면 그중 한 명을 대통령이 공수처장으로 지명한 뒤 국회 인사청문회나 동의를 거쳐 임명하도록 했다. 추천위원회는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 회장,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 등 총 7명이다. 이 중 5분의 4, 즉 6명 이상의 찬성으로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하도록 했다.

공수처만이 중립·독립 수사기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등은 공수처장을 이런 절차를 거쳐 임명하면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반대하면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야당이 후보 추천권을 갖는 것이나 같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굳이 공수처를 만들지 말고 검찰총장 임명을 이 방식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공수처장 후보 추천 절차는 현행 검찰총장 후보 추천 절차보다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검찰총장의 경우도 후보추천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실상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는 위원이 9명이다.  전직 검찰 간부 1명, 법무부 검찰국장,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회장,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 협의회 이사장, 각계 전문가로서 변호사 자격을 갖지 않은 3명이다. 전직 검찰 간부 1명과 각계 전문가 3명은 법무부장관이 위촉하게 돼 있다. 이 4명에 법무부 검찰국장을 합쳐 과반수인 5명이 법무부장관과 뜻을 같이할 사람으로 구성될 수 있다. 9명 중 과반수 찬성으로 후보를 추천하기 때문에 사실상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를 좌우할 수 있는 구조다. 나아가 법무부장관은 추천위원회가 추천하지 않은 사람도 검찰총장 후보자로 대통령에게 제청할 수 있다. 법무부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니 결국 대통령이 마음에 드는 인물을 얼마든지 검찰총장에 임명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러니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라는 게 겉치레에 불과한 것이다

검찰총장 임명 절차의 개선에 더해서 검찰에도 공수처처럼 ‘독립성’을 부여하는 규정을 둘 수 있다. 공수처 법안은 공수처가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권 독립을 보장한 것이다. 이 조항의 취지를 살려 법무부장관의 검찰 수사 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은 수사에 관한 직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고 하면 된다. 공수처를 누구의 지휘 통제도 받지 않는 수사기관으로 만들 수 있다면 검찰이라고 그렇게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수처 없이도 검찰 권력 제한·분산 가능

공수처를 설치하지 않으면 검찰 권력을 제한하고 분산할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공수처 법안은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검사, 판사, 경무관 이상 경찰 고위 간부 등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검찰에서 뺏어서 공수처로 옮기도록 했다. 그러나 수사 대상을 제한한다고 검찰 권력이 제한되고 분산된다고 할 수는 없다.

공수처는 검사, 판사, 경찰 고위 간부를 제외한 다른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권만 있지 기소권은 없다. 수사 결과를 검찰에 넘기면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어차피 검찰이 형사 처벌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는 것이다. 검찰 권한의 핵심은 기소권이지 수사 대상이 아니다. 검찰 권력의 제한이란  기소권의 제한이다. 기소권이 검찰에 있다면 아무리 공수처를 만든다고 해도 검찰 권력은 그대로다.

공수처가 검찰 기소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가 공수처 법안에 들어 있긴 하다. 검찰이 고위 공직자를 불기소하면 공수처가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법원 판단으로 기소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재정신청 제도다. 그러나 지금도 공무원의 직권남용 등 일부 범죄에 대해선 검찰이 불기소하면 고발인들이 재정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형사소송법에 있다. 재정신청 제도가 검찰의 기소 재량권을 제한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고위 공직자 범죄 등 공수처 수사 대상에 대해선 고소·고발인들의 재정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면 된다. 그러면 검찰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

◆검찰 제식구 감싸기 막을 방법도 있어 

공수처를 만들지 않으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도 가능한 방법이 있다. 하나는 검사, 판사, 경찰 고위 간부에 대해선 검찰의 기소 재량권을 없애고 무조건 기소하게 하는 방법이다. 현재의 기소 편의주의(재량주의)를 기소 강제주의 또는 기소 법정주의로 바꾸는 것이다. 선진국 중에도 일부 범죄에 대해 기소 강제주의나 법정주의를 실시하는 나라가 있다. 기소 강제주의는 검찰 기소권을 제한함으로써 자동적으로 검찰 권력을 제한하게 된다.

또 하나는 검사, 판사, 경찰 고위 간부 범죄는 현행 상설 특검법에 따른 특검 수사 대상으로 의무화하는 방법이다. 상설 특검법은 특검 수사 대상을 국회 의결이나 법무부 장관 판단으로 정하게 돼 있다. 그런데 특검법을 고쳐서 검사, 판사, 경찰 고위 간부는 무조건 특검 수사 대상으로 하고, 특검 발동 요건과 절차를 지금보다 크게 완화해서 특검 수사가 보다 쉽게 이뤄질 수 있게 하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을 수 있다. 검찰 수사와 기소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유명무실한 상설 특검법을 활성화할 수도 있다.

요즘 공수처가 옥상옥이라느니, ‘민변 검찰’이 될 것이라느니, 청와대 하명 수사 전담 검찰이 될 것이라느니 등의 논란이 많다. 이런 논란이 아니더라도 국가 기관은 함부로 만들 일이 아니다. 정권이 일부 여론을 등에 업고 정파적 이유로 국가 기관을 만들면 결국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고 만다. 박근혜 정부 때 만든 특별 감찰관이 대표적 예다. ‘문고리 3인방’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권력 실세들의 비리를 감찰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게 특별 감찰관 제도다. 특별 감찰관은 국회가 후보자 3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3일 이내에 이 중 1명을 특별 감찰관으로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현재 개점 휴업도 아니고 폐업 상태다. 특별 감찰관이 공석이 된 지 오래다. 국회가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추천 거부할 땐 공수처 유명무실화 불보듯 

상설 특검법도 비슷한 처지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검법을 만들지 말고 특검이 필요하면 곧바로 특검 수사를 할 수 있게 미리 절차를 마련해 두자고 만든 게 상설 특검법이다. 특검법은 공수처처럼 특검에 누구의 통제와 지휘도 받지 않는 ‘독립적 지위’를 인정했다. 특검 수사 대상은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의결한 사건 또는 법무부장관이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다. 국회나 법무부장관이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국회에 설치된 특검 후보 추천위원회가 5일 이내에 후보자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은 3일 내에 이 중 1명을 특검으로 지명하게 돼 있다. 추천위원회는 7명이며 이 중 4명을 국회가 추천하도록 했다. 4명을 실제 추천하게 될 경우 여야 협의에 따라 여당 몫 2명, 야당 몫 2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검 임명과 수사 대상 결정 절차 등 뭐 하나 손색이 없게 돼 있다. 그러나 이 법도 유명무실하게 된 지 오래다. 여당과 야당은 이 법을 놔두고 지금도 무슨 일이 터지면 새로 특검법을 만드느니 마느니 하고 싸운다.

공수처라고  특별 감찰관이나 상설 특검제 신세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예컨대 야당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의 추천을 거부하면 추천위원회가 구성될 수 없다. 그러면 공수처장 임명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공수처장 제청을 거쳐야 하는 공수처 검사 임명도 못하게 된다. 공수처는 곧바로 기능 정지 상태에 빠지게 된다. 반면 검찰이라는 기존 제도 아래서라면  야당이라고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 추천을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야당이 공수처 제도를 반대할 수는 있지만 검찰 제도를 반대할 수는 없고 실제로 반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검찰 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별개의 수사 기관을 만드는 것은 국가적 낭비이기도 하다. 공수처라는 새 집을 지어서 운영하려면 돈이 든다. 그 돈은 국민 세금이다. 새 집이 아니고선 살 곳이 없다면 빚을 내서라도 새 집을 지어야 한다. 그러나 헌 집을 고쳐서 새 집처럼 쓸 수 있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공수처 만능·새 제도 신설 능사 사고에서 탈피를 

영국의 내각책임제는 오랜 세월을 거쳐 군주제를 고치고 고쳐서 태어났다. 처음엔 왕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왕의 신하인 대신들이 왕명을 받드는 전제군주제였다. 이를 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의회가 대신들을 통제하는 제한군주제로 고쳤다. 다시 왕의 권한을 없애 상징적 존재로 만들고 의회 의원으로 내각을 구성해 내각이 전권을 갖는 입헌군주제로 고쳤다. 그 결과 생겨난 게 내각책임제다. 군주제가 반민주적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없애고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게 아니다. 군주제라는 기존 제도를 민주주의 이념에 맞게 꾸준히 개선해 온 것이다. 오늘날 내각책임제가 유럽 선진국들의 정치제도로 자리잡은 데는 이런 역사와 지혜가 담겨 있다.

한 나라의 정치체제도 이렇게 고쳐나가는데 기껏해야 수사 기관인 검찰을 바꿔나가지 못할까. 공수처만이 최선이고 만능이 아니다. 새 제도를 만드는 것이 능사는 더욱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존 제도를 보완해서 지금보다 더 좋은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진짜 발전이고 개혁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새뮤얼 헌팅턴은 ‘사회 발전의 척도 중 하나는 각 부문의 제도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제도화란 어떤 제도가 ‘가치와 안정을 얻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 제도가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국민의 인정을 받아서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있게 되는 게 제도화라는 말이다. 가치와 안정을 얻는 데는 낯선 새 제도를 만들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익숙한 기존 제도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고쳐나가는 게 유리하다. 하루아침에 급조한 제도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기 쉽다.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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