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매출500억 CEO 비결? "트렌드 읽는 유연함"

김세원 논설고문입력 : 2019-10-09 18:08
김세원의 '人.討.VIEW' 아리온 테크놀로지 채명진 대표
 

[채명진 아리온 대표] [사진,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청년 일자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요즘, 20대 나이에 코스닥 상장기업의 대표이사가 된 청년이 있다길래 궁금했다. 지난 9월 6일 디지털 셋톱박스 전문기업인 아리온 테크놀로지 임시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된 채명진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90년 2월생이니 만 29세에 연 매출 500억 기업의 CEO자리를 꿰찬 것.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채 대표는 시카고학파로 불리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산실이자 역대 81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30명을 배출한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거기에 패션모델 못지않은 체격과 아이돌 스타급 얼굴까지 갖췄다. 논설위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를 보는 순간, 신(神)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온은 1999년 설립돼 위성 방송수신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디지털 셋톱박스를 개발했고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영역을 확장해온 기업인데, 본인을 CEO로 선임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리온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 회사입니다. 회사가 오래된 만큼 쌓인 노하우와 전문성도 있지만, 동시에 트렌드를 선도하는 역동성이나 유연성에 있어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의 다각화와 신성장 동력을 만들고자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영역을 확장했으나, 생각만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기에 제가 이커머스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던 부분을 주목해주신 것 같고, 글로벌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점에 대해 높이 봐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제안 드린 콘텐츠와 커머스를 결합한 D2C 사업모델, 미디어 커머스 사업의 미래가 밝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채 대표의 이력을 보면 시카고대를 졸업하고 현지 대기업에 입사하는 대신, 귀국해서 밀라노익스프레스라는 푸드트럭 업체를 창업했더군요. 미국 명문대 출신이라 글로벌기업의 러브콜도 상당했을 텐데 굳이 힘든 창업을 선택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주도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남이 선택해주는 삶이 아니라 제가 선택하고 제가 그 선택을 책임지는 인생이지요. 그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가 만든 회사를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선택한 아이템이 푸드트럭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 세계 각국 음식을 값싸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푸드트럭에 매료됐어요. 마침 한국에서 규제개혁의 상징으로 푸드트럭이 합법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해 2014년 8월 ‘밀라노익스프레스’란 푸드트럭업체를 마포구 상수동에서 창업했어요. 저는 기획과 마케팅을 맡고 스위스에서 요리 유학을 한 지인이 셰프가 되어 이탈리아식 샌드위치와 파스타를 팔았는데, 사업은 성공했지만 관계법령이 개정되지 않아서 5개월 만에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푸드트럭사업을 접은 뒤에도 몇 개의 회사를 더 창업했지요? 많은 이들이 창업을 꿈꾸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각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면서 얻은 교훈은 무엇입니까.

“케이브랜드시티는 중국 건설회사와 함께 백화점 부지에 한국브랜드 전문 쇼핑몰을 만드는 일이었고 소울시티컬쳐스는 신진디자이너들의 패션 상품을 큐레이션하여 온라인 편집숍을 운영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었어요. 럭셔리브랜드 유통, 블록체인사업 등도 해봤습니다. 직장 생활을 어느 정도 했더라면 시행착오가 덜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같이 일하는 팀원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쉽지가 않았어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실패를 전제로 하고 장애물과 리스크를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습니다. 혼자 열심히 한다고, 잘하고 싶다고 잘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그리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자산인 것 같습니다. 많이 깨져 보고 실패도 하면서 스스로의 능력과 장단점에 대해 매우 객관적일 수 있게 됐습니다.”

-기업가와 전문경영인은 역할에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스타트업 기업의 오너로 일하다가 기존 기업의 대표이사가 되니 무엇이 다르던가요.

“아직 적응 중인데요. 제가 만든 조직이 아니라, 이미 갖춰져 있는 조직에 맞춰 전략과 운영방식을 새로 짜야 된다는 점이 가장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존 조직이 갖고 있는 습관들을 바꾸는 것이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전통있는 회사들을 보면 오래 지속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세스라든지 인프라라든지,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살릴 수 있는 장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내가 창업한 회사가 아니다 보니 좀 더 객관적이고 덜 감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불과 한 달 전 취임한 대표에게 적합한 질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취임한 후 어떤 일을 했는지요.

”9월 초 정식 취임을 했지만 사내 이사로 회사에 합류한 건 7월부터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생활용품, 유아용품 분야에서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도록 제품연구개발팀을 신설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영국에 있는 부동산 금융 플랫폼과 파트너십을 맺어서 선진 금융기술을 한국에 가져올 예정입니다.“

-대표이사로 선임될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시카고대 경제학과를 2년6개월 만에 최우등으로 조기 졸업한 영재이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및 스페인어, 중국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보통의 한국 청년은 꿈도 꾸지 못할 최고의 스펙을 어린 나이에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영재가 아닌데, 너무 좋게 표현해 주신 것 같네요. 비결이란 건 없었고 어렸을 때부터 목적의식이 뚜렷했던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 일을 하려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릴 때부터 엄청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땐 막연히 아버지처럼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사업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러려면 여러 가지 언어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아버지 사업관계로 온 가족이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에서 4년간 살면서 현지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거기서 여러 가지 언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빨리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 욕심에 고등학교 때 미리 선수과목을 이수한 덕분에 대학을 일찍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유니콘기업들의 공통점은 20대 젊은이들이 창업했다는 것입니다. 청년 실업의 돌파구를 창직, 창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만 한국에서 청년 창업자의 성공스토리를 찾아보기 힘든 까닭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장기적으로는 교육 방식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답을 정해놓고 외워 가는 교육에서 창의적인 혁신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생 말만 잘 듣고 시키는 대로만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고 교육받아 왔는데, 갑자기 창업의 시대니까 ‘창업하라’고 한다면 과연 잘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새로운 회사들이 생겨날 수 있게 규제부터 완화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꿈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채 대표는 “매우 큰 사업을 해서 영향력을 갖고 그 영향력을 사회적인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쓰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었다”며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을 롤모델로 꼽았다. “손정의 회장은 시대를 앞서는 혜안을 가지고 그때 그때 중요한 시점에 올인해서 성공을 이끌어냈다”며 “그의 혜안과 강한 의지를 닮고 싶다”고 덧붙였다. <논설고문·건국대 초빙교수>
어린이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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