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홍콩 송환법 시위 100일... 피폐해진 경제

배인선 기자입력 : 2019-09-19 06:21
홍콩 '쇼핑천국' 옛말···문 닫는 프라다 매장 "무역전쟁에 홍콩시위까지···" 이중고 겪는 홍콩경제 "홍콩보다 상하이" 아시아 금융허브 지위 '흔들'
“홍콩 소요사태 100일, 경기후퇴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

홍콩 주간지 아주주간 최신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6월 9일 첫 대규모 시위를 벌인 지 16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미·중 무역전쟁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송환법 시위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홍콩 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다. 시위 장기화로 소매·관광업은 물론, 주식·금융시장, 부동산, 항공업 등 모든 경제 분야가 타격을 받은 것. 홍콩 최대 갑부인 리카싱 청쿵그룹 창업주가 “홍콩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묘사했을 정도다.

지난 15일 홍콩 도심에서 시위대가 우산을 펼쳐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막고 있다. 지난 6월 9일 첫 발발한 홍콩 송환법 시위는 지난 16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쇼핑천국' 옛말··· 문 닫는 프라다 매장

‘쇼핑천국’ 홍콩은 이젠 옛말이 됐다. 시위를 우려한 해외 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다. 블룸버그 통신은 홍콩 관광산업이 지난 8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최악의 한 달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지난 8월 홍콩을 찾은 관광객은 354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90만명에서 40% 가까이 줄었다. 사스가 만연했던 2003년 5월 관광객이 70% 가까이 줄어든 이후 16년여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중국 제일재경일보는 8월 한 달에만 홍콩 관광업계가 입은 손실액이 120억 홍콩달러(약 1조800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관광객이 줄어든 소매업계엔 '엄동설한'이 닥쳤다. 홍콩의 지난 7월 소매판매액은 344억 홍콩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4% 줄며 6개월째 내리막길을 걸었다. 6월(6.7%)보다 감소폭이 더 확대된 것으로, 2016년 2월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홍콩 관광 성수기인 지난 중추절(추석) 연휴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등 현지 주요 상권은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렸다. 시위가 계속 이어지면 10월 황금연휴인 국경절, 12월 크리스마스에도 예전과 같은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명품브랜드 프라다가 홍콩 코즈웨이베이에 운영하던 1만5000평방피트(약 421평) 규모의 3층짜리 매장을 임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내년 6월에 폐점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애니 야우 츠 홍콩소매관리협회 주석은 "지난 6월부터 이어진 시위로 주요 상권 점포 매출이 절반 이상 줄었다”며 “특히 시위가 있는 날은 하루 매출이 70~80%씩 준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가 나날이 격화하고 있어, 관광·소매업 경기가 단기간에 개선되긴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홍콩 관광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약 25만명 남짓으로, 홍콩 전체 취업인구의 7%를 차지한다. 관광업계가 부진하면 수십만명의 생계가 위협받는 셈이다.

일각에선 대량 실업 사태도 우려한다. 실제로 홍콩 실업률은 지난 4~6월 2.8%에서 5~7월 2.9%로 높아졌다. 이로써 홍콩의 실업률은 2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시위 장기화로 7~9월 실업률은 더 높아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애니 주석은 "일부 점포에선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하고, 직원에게 반강제적으로 유급·무급휴가를 장려하고 있다”며 시위 장기화로 대규모 해고 사태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그래픽=아주경제DB]


◆"무역전쟁에 홍콩시위까지···" 이중고 겪는 홍콩경제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글로벌 교역 침체에 홍콩 수출입 통계 성적표도 참담해졌다. 홍콩 통계국에 따르면 7월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하며 9개월째 하향곡선을 그렸다. 같은 달 수입도 8.7% 줄었다. '아시아 물류허브'로 불리는 홍콩 국제공항의 8월 환적 화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19% 급감했다.

홍콩 실물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한파가 몰아닥쳤다. 중위안부동산 보고서에 따르면 8월 한 달 홍콩 아파트·주차장·오피스·점포 등을 포함한 전체 부동산 매매 계약건수는 5557건, 액수는 428억 홍콩달러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각각 1.9%, 2.1% 감소한 것으로 6개월 만에 최저치다. 시위 발발 직전인 5월 1만건에 달했던 데 비해 반토막이 난 셈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홍콩 부동산이 단기간 내 급락하자 '바겐헌팅(저가매수)'을 노리는 세력도 나타났다.

금융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홍콩 항셍지수는 8월 한 달에만 2000여 포인트 하락했다. 한 달 낙폭만 7.4%에 달했다. 전 세계 주요 증시 가운데 최악의 성적표다. 같은 기간 일본·한국·대만 등 아시아 주요국 지수는 약 3% 떨어졌다. 

홍콩 경제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이상이다. 특히 무역·물류, 금융, 전문서비스, 관광업이 4대 지주산업이다. 홍콩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22%, 17.6%, 12.4%, 5%에 달한다. 무역전쟁에 홍콩 시위까지 겹쳐 지주산업이 흔들리면서 홍콩 경제가 최악의 국면에 처했다.

홍콩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보다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분기(-1.7%) 이후 거의 10년 만에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홍콩 시위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3분기 성장률이 0.3%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석 달 전 2.3%로 전망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블룸버그는 올해 홍콩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의 2.2%에서 0.7%로 3분의2 넘게 낮췄다.

홍콩 정부는 지난달 190억 홍콩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를 발표했다. 세금 감면, 사회보장연금 추가, 중소기업 대출지원 및 수수료 면제 등의 내용이 포함됐지만 홍콩 경기를 살리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홍콩보다 상하이" 아시아 금융허브 지위 '흔들'

홍콩은 그동안 중국 대륙 진출의 관문이자, 정치·경제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도시로 여겨졌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에서도 25년째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글로벌 100대 은행 중 70여개가 사업을 하는 도시가 바로 홍콩이다.

그런데 시위 장기화로 '중국 리스크’가 부각되며 홍콩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도시가 됐다. 지난달 말 영국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이 발표한 '2019년 안전한 도시지수'에서 홍콩의 순위는 20위에 그쳤다. 2017년 9위에서 10계단 넘게 추락한 것이다. 최근 홍콩 시위 장기화로 사회 불안이 고조된 탓이다. 지수는 60개 도시를 대상으로 디지털 안전, 보건 안전, 기반시설 안전, 개인 안전 등 4개 부문을 평가해 격년으로 발표된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가 최근 홍콩증권거래소의 366억 달러짜리 인수·합병(M&A) 제안에 퇴짜를 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으로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차라리 중국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창구로 "홍콩보다 상하이를 원한다"는 의사까지 내비쳤다.

이달 들어 이미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피치·무디스 두 곳이 홍콩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피치는 지난 6일 홍콩 신용등급을 ‘AA+’에서’AA’로, 전망치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며 추가 하향조정 가능성을 경고했다. 피치가 홍콩 신용등급을 낮춘 건 1995년 이후 처음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3년 사스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AA+’ 등급을 유지했던 홍콩이다.

첸완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는 "(홍콩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며 "시위가 잦아들어도 악화된 경기가 단기간 내 반등하긴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홍콩 경제가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둔화로 더 큰 하강 압력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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