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vs AI 세기의 승부에서 변호사 대패... AI 판사 현실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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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기자
입력 2019-09-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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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률 문서 검토 대회서 인간+AI팀이 변호사팀 압도... 법률 AI 상용화 코앞 실감

  • AI, 경쟁자 아닌 동반자... 미래 변호사 덕목은 AI 활용능력

  • 국내 '리걸테크' 산업 발전위해 양질의 법률 데이터 공개 시급

리걸테크·법률 AI 국내 현황.[사진=아주경제DB]

지난 8월 29일 한국 법조계가 충격에 빠졌다. 인간+인공지능(AI)으로 구성된 팀이 인간 변호사와의 대결에서 압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채점 결과 인간+AI로 구성된 세 팀은 평균 50점대에 머문 변호사 여섯 팀과 달리 모두 100점을 넘기며 1~3등을 독차지했다. 특히 3등은 변호사 대신 일반인+AI로 구성된 팀이라 충격을 더했다. 한 변호사는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바둑계를 충격에 빠뜨린 것처럼 이번 대결도 법조계에 큰 충격을 남겼다"고 관전 소감을 전했다. 법률과 기술을 결합하려는 '리걸테크(Legal Tech)'가 더 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인간+AI가 1~3등 독식··· 일반인+AI도 변호사 상대 승리 거둬
 
이번 대결은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알파로 경진대회(Alpha Law Competition)'의 일환이다. 대결은 AI연구소 인텔리콘이 개발한 법률 AI(Legal AI)와 변호사·일반인의 혼합팀과 변호사만으로 이뤄진 변호사팀이 제한 시간 내에 근로계약서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라운드(30분)에선 일반적인 근로계약서 2건, 2라운드(20분)에선 복잡하고 까다로운 근로계약서 1건이 문제로 나왔다. 문제는 두 라운드 모두 객관식 1문제, 주관식 단답형 1문제, 주관식 서술형 1문제 등 세 가지 형태로 출제됐다.
 
채점은 박명숙 변호사 등 변호사 경력이 풍부한 3명의 심사위원이 맡았다. 채점방식은 변호사 시험처럼 이름이나 신분 등을 노출하지 않고 답안의 수준만 평가하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했다. 1시간에 걸친 채점 끝에 1등 120점, 2등 118점, 3등 107점, 4등 61점, 5등 52점 등 상위 5개의 팀 점수가 공개됐다. 1·2·3등은 혼합팀이었고, 4·5등은 인간 변호사 팀이었다. 둘의 점수차는 두 배 가까이 났다.
 
승패의 향방은 문제를 읽고 분석하는 곳에서 갈렸다. 인간 변호사는 문제를 읽는 데만 몇 분이 걸렸고, 이를 분석하는 데 20~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AI는 계약서 내용을 넣고 7초 만에 분석 결과를 내놨다.
 
분석의 정확도에도 차이가 있었다. AI는 계약서의 문제점·위험요인·보안이 필요하거나 누락된 내용 등을 찾아내고 해당 부분에서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지 근로기준법 조항, 시행령, 판례, 노동부 유권해석까지 들어가며 문서로 제시했다. 이용자인 변호사가 알아보기 쉽게 분석한 내용의 중요도를 상·중·하로 나눠 각각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등으로 표시해 주기까지 했다.
 
혼합팀 변호사들은 인공지능이 사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면 모든 내용을 답안지에 인용하고, 의견이 다르면 해당 내용을 참조하는 형태로 답안지를 작성했다. 혼합팀 변호사들은 모두 법률 AI의 높은 활용성에 감탄했다. 1등을 차지한 법무법인 지평 김형우 변호사는 "문제를 풀면서 AI의 빠른 속도와 정확한 분석 능력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각종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을 분석해 현행 최저임금 수준에 못 미친다고 빠르게 도출한 점이 큰 도움이 됐다. 각종 사례 조사 및 분석에 AI의 도움을 받으면 분석 시간이 단축되고 쟁점을 놓치는 오류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결과에서 가장 큰 화제는 3등을 차지한 일반인 참가자 신아영씨다. 그는 "물리학을 전공해서 법은 전혀 모른다. 객관식은 인공지능이 분석한 내용을 그대로 넣고, 주관식은 적절히 짜깁기 해서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3등을 차지해서 놀랍다"고 소감을 밝혔다.

◆AI 경쟁자 아닌 동반자··· 미래 변호사 덕목은 AI 활용능력
 
결과는 충격적이었지만, 행사장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았다. 변호사들이 AI에 밀려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리걸테크 본연의 목적대로 전문가의 지식과 AI의 정확한 분석을 결합한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 심사위원은 "의료 AI인 IBM 왓슨처럼 법률 AI도 변호사들의 직역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들의 오판을 줄이고 업무 시간을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변호사인 1·2등과 일반인인 3등 사이에 점수 차이가 있는 것처럼 AI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결과물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변호사들 역시 동일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 변호사는 "법률 AI는 빠른 분석 시간이 강점이고, 정확도도 상당히 우수하다고 생각된다. 격무에 시달리는 현업 변호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향후에는 AI와 변호사 간 경쟁이 아니라 AI와 같은 리걸테크 기술을 잘 활용하는 변호사와 그렇지 못해 도태되는 변호사 간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법률 AI의 도입으로 일반인들이 법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문제를 찾아내는 '예방법학(Preventive Law)'의 혜택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법조계는 사건이 일어난 후 피해를 복구하는 사후 법률 처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률 AI가 활성화되면, 일반인들이 상대적으로 변호사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법률 AI의 도움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의료계의 경우 의료 AI를 활용한 개인 건강 맞춤형 예방의학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년 늦은 법률 AI 대회··· 국내 법률 AI 활성화 위해 법률 데이터 개방 절실

현재 리걸테크는 법조삼륜 가운데 민간 영역인 변호사를 중심으로 도입이 활발하다. 김앤장, 율촌 등 국내 주요 로펌들 역시 전담 부서를 세우고 리걸테크 도입을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김앤장의 경우 대표적인 리걸테크 기법인 '이디스커버리(전자증거개시)'를 활용해 영국 법원에서 진행된 1000억원대 소송에서 승소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판사, 검사의 공적 영역에도 법률 AI가 도입되고 있다. 중국 하이난 지방법원 형사법정에는 벌써 AI를 활용한 양형 기준이 도입됐고, 충칭 서남대학교 법학대학에는 법률 AI 개발을 위한 AI법학원이 개설됐다.

AI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국내 법조계의 빠른 AI 도입을 주문했다. 이번 대결만 해도 2017년 영국에서 진행된 AI 대 변호사의 대결을 한국 상황에 맞게 재현한 것이라고 평했다. 당시 영국 변호사 112명은 케임브리지 법대생 4명이 만든 법률 AI '케이스 크런처 알파'와 보험문서 분석 대결을 펼쳐 완패했다. 실제 소송까지 간 사례를 찾는 대결에서 AI는 86.6%, 변호사는 66.3%의 정확도를 보여줬다. 이렇듯 법률 문서를 검토하는 분야에선 법률 AI가 변호사보다 높은 효율성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이번 대결에서 가장 긍정적인 신호는 변호사와 대결을 펼친 법률 AI가 국내 AI 개발사인 인텔리콘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 변호사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컴퓨터 과학과 법률 양 분야 전문가라는 점을 십분 살려 법률 AI 개발에 나섰다.

그는 "현재 법률 AI는 양형 판단, 재발 위험성 예측, 법률문서 검토 등 재판 과정의 도우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법률 AI가 판결을 대신하는 AI 판사는 시기상조"라며 "하지만 고도의 자연어 처리·딥러닝(인공신경망) 기술과 10억건 정도에 달하는 양질의 판례 데이터만 있으면 AI 판사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향후 법률 AI 시장을 전망했다. 이어 "한국은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법률 데이터를 대법원에서 극소수만 공개하고 있다"고 법률 AI 개발에 따르는 어려움도 함께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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