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찬 교장·향나무·친일파 작곡 교가…교육계, 일제 잔재 청산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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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기자
입력 2019-08-1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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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도교육청·시민교육단체, 학교 안팎 일제잔재 청산 운동 펼쳐

  • 일본이 원산지인 수종 교목으로 쓰는 부산 내 학교 197개교

  • ‘담임’ ‘교감’ ‘개근상’도 일제 강점기에 사용된 용어

일본 패망 이후인 1945년 10월 24일까지 임기가 기록된 일본인 교장(왼쪽)과 바로 다음 날 교장으로 부임한 한국인 교장 사진.[사진=충남도교육청]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 제외 사태로 촉발된 ‘NO JAPAN’ 운동에 교육계도 가세했다. 3·1운동 100주년, 광복 74주년을 맞아 시·도 교육청과 시민단체들이 학교 안팎의 일제 잔재 청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3월부터 ‘새로운 미래 100년을 위한 학교문화 바로세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문가로 구성된 ‘학교 속 일제잔재 청산지원팀’이 학교 교육과정, 교육시설, 역사, 관행적 용어, 무형 문화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찾아 청산작업에 필요한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학생·교사·학부모·시민들이 자료수집과 공론화에 참여하도록 ‘학교 속 일제잔재 청산 참여마당’ 코너를 부산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설치·운영한다. 또 학생들에게 친일인명사전을 보급하고, 부산학생·부산지역 독립운동사 자료를 개발·보급한다.

충남교육청은 학교 내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 시대 잔재 청산을 위해 ‘미래 100년을 위한 새로운 학교문화 운동’을 추진중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도내 713개교를 대상으로 학교 안팎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전수조사했다.

충남교육청에 따르면 △공개적인 장소에 일본인 학교장의 사진을 게시한 학교가 29개교 △친일 경력자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사용하는 학교가 31개교 △일제강점기 생활규정을 그대로 둔 학교가 80개교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일제 강점기 교장도 학교의 역사라는 주장도 있으나, 교내에 사진을 게시하는 것은 누군가의 표상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일본인 교장은 그 표상이 될 수 없다”며 즉시 철거를 지시한 바 있다.

전남도교육청도 전수조사를 통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의 동상이나 공덕비 등 친일 잔재 115건을 확인하고 현재 청산 작업을 진행중이다.

인천시교육청은 친일 인사가 교가를 작곡·작사한 사실이 확인되면 학교 측에서 교체하도록 안내했다. 대전광역시교육청도 지난 1~3월 중·고등학교 교장·교감 회의를 열고 자율적으로 학교 내 친일잔재를 조사해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청산 절차를 밟으라고 안내했다.
 

충남 한 학교 복도에 전시돼 있는 일본인 교장의 사진[사진=충남도교육청]

◆일본이 원산지인 수종 교목으로 쓰는 부산 내 학교 197개교
시민교육단체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는 부산시교육청과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사업’ TF를 구성했다. 이들은 자치구별로 소속 초·중·고등학교의 교화·교목·교가 등을 중점 검토한 전수조사 결과를 지난 12일 발표했다.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에 따르면 부산 동항초등학교, 천가초등학교 등 2개교에서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교표를 사용하고 있었다. 욱일기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현 자위대 군기다.

가이즈카 향나무(일본 향나무)·히말라야시다(설송)·영산홍·국화·벚꽃(벚나무) 등 일본 수종이거나 원산지가 일본인 나무·꽃을 교목·교화로 사용하고 있는 학교는 무려 197개교에 달했다.

가이즈카 향나무(일본 향나무)는 1909년 조선통감부 초대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국채보상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던 대구에 가서 의도적으로 기념식수 1호로 심었다는 점에서 조선침탈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전국 관공서는 물론 학교와 공공시설에 심기 시작했다.

문화재청은 외래수종인 일본 향나무를 사적지에 심을 수 없는 부적합 수종으로 결정한 바 있지만, 각 학교에서는 ‘인내, 극기, 굳센 기상, 의지, 푸르름, 세련된 삶의 추구, 한결같은 마음’ 등 잘못된 상징으로 소개하고 있다.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는 12일 부산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지역 학교 내 일제 잔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사진=연합뉴스]

이 외에도 히말라야시다로 불리는 설송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국내에 들어와 퍼진 대표적인 수종이고, 연산홍은 관상용 일본 철쭉을 개량해 만든 종이다. 국화는 일본 왕실의 상징이며, 벚꽃은 일본 국화로 알려져 있다.

친일 인사인 이흥렬·김성태·김동진·이항녕이 작곡하거나 작사한 교가를 사용하는 학교는 16개교였다. 이외에도 경남고에는 친일파 안용백 흉상이, 경남여고에는 친일행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유치환의 글이 발견됐다,

김선양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제 잔재를 발굴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의견을 모아 바꿔 나가는 것이 의미 있다”고 평했다.
 

부산시 한 학교 내 설치된 안용백 흉상[사진=연합뉴스]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서울지부도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학교에 남아 있는 친일파 동상 철거 △친일파 이름 딴 기념관 이름 변경 ·친일 음악가가 작사·작곡한 교가 폐기·교체 등을 제안했다.

전교조 서울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7명의 동상과 기념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작사 혹은 작곡한 교가를 사용하는 학교는 113개교로 초등학교 18개교, 중·고등학교 95개교였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서울시교육청에 공동 TF를 구성해 교육계 친일 잔재에 대한 엄밀한 전수조사 및 청산작업을 하자고 요청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혁신교육’이라는 교육지향 가치에 따라 학교 별로 자율적으로 청산하라고 권고했다.

현재 구로중학교 1곳만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교가를 교체하기로 한 상황이다. 손동민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생활교육과 기획운영팀장은 “추후 학교에서 새로운 교가를 제작하는 데 드는 작곡비·녹음비 등이 필요하다면 재정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홍태 전교조 서울지부 대변인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작사·작곡가가 어떤 친일 행적을 했는지 알리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며 “서울시교육청도 학교내 친일 잔재 조사를 위한 TF를 구성해주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일본도를 들고 있는 일본인 교장(왼쪽 사진 중앙)과 군복을 입고 있는 일본인(오른쪽 사진 중앙)교사 사진[사진=충남도교육청]

◆‘담임’ ‘교감’ ‘개근상’도 일제 강점기에 사용된 용어
학교 내 친일문화 용어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학급 급장’은 총독부 발행 교과서 성적이 1등인 자를 급장으로 임명한 데서 유래했다. 흔히 쓰는 ‘담임’ 역시 학급 업무를 맡아 담당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일제 강점기 때 사용되던 용어다.

‘교감’ ‘교육감’ 에 들어있는 ‘감’이라는 단어도 교사를 감시하기 위한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다. ‘상장’ ‘표창장’ ‘개근상’ ‘정근상’ ‘통지표’ 등의 용어 역시 일제 강점기 때 사용된 용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수-우-미-양-가’는 그 역사가 일본 전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무라이들이 적의 목을 많이 베어오는 순서대로 ‘수-우-양-가’로 표기했고, 해방 후 5단계 평가로 기술하며 ‘미’가 추가됐다.

교목, 교가, 일제 강점기 사용 용어 등에 대한 친일 잔재 청산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일국사 중심의 한국사만 배워서는 화해와 평화를 위한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을 넘어서서 냉정하게 역사의 전개과정을 볼 수 있도록 학교 현장에서 ‘동아시아사’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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