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냉경열'은 옛말? 국제정치 갈등으로 번지는 경제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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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기자
입력 2019-07-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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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美IT기업 디지털세 도입에 미국 '와인세''로 맞불

  • 트럼프 "마크롱 어리석어" 佛 "디지털세 도입 필요성 강조"

  • 우크라와 갈등 겪는 러시아도 가스관 계약 연단위로 변경

  • 미·중 무역갈등 이어 한일 경제전쟁...각국 이익 위한 사활적 대립

국제 정치·경제 관계엔 ‘정냉경열(政冷經熱)’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가 냉각돼도, 경제교류는 활발하다는 뜻이다. 정치적 갈등이 경제 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긴데, 최근 이 미덕이 사라지고 있다. 혹자는 존 미어셰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쓴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을 인용해 21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일극체계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협의체와 조정자 없는 세계, 힘의 논리로만 설명되는 국제정치의 비극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자국의 거대 정보기술(IT) 업체들에 프랑스가 디지털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과 관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어리석다고 비난하며 '상응 조처'를 예고했다. 프랑스의 대표 상품인 와인에 보복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 계정에 "프랑스는 우리의 위대한 미국 기술 기업들에 디지털 세금을 부과한다"며 "만약 누구든지 그들에게 세금을 부과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고국인 미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상원은 지난 11일 연매출 7억5000만 유로(약 9900억원) 이상이면서 프랑스 내에서 2500만 유로 이상의 매출을 내는 글로벌 IT기업에 프랑스 내 연간 총매출의 3%를 디지털세로 부과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미국 'IT 공룡'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주요 표적이 됐다는 평가다.

같은 날 러시아도 갈등관계에 있는 우크라이나와 유럽행 가스관 이용 계약을 기존의 10년에서 1년 단기로 바꿀 것이라는 계획이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가스관 문제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이용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다시 10년짜리 장기 가스 경유 계약을 체결하길 원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1년 단기 계약으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 무역분쟁은 경제적 마찰이 정치적 대립으로 확대된 대표적인 사례다. 벌써 수년째 양국은 공방을 주고받으며 이제 이 갈등은 관세 부과를 넘어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 분야로 번지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른 미·중 양국은 오는 30일 상하이에서 무역협상을 재개할 예정이지만, 양국의 상처가 봉합되기에는 시각차가 너무 크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한국 대법원의 위안부 판결에 이어 일본 수출규제로 점화된 한국과 일본의 갈등 또한 쉽게 마무리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의 수출규제가 일단락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있었으나 대립상황에서 양국 정권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양국 정부는 서로에 대한 난타전을 계속하고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세계적인 대립 현상을 두고 21세기는 단연코 힘의 논리로만 설명되는 현실주의 시각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 관점에서 다자주의나 국제법을 통한 호혜적인 관례들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이는 세력균형으로 현상유지에 골몰하던 20세기와는 달리 미국을 일극으로 하는 체제에서 중국 등 타 국가들이 세력전이를 일으키면서 더욱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21세기 이후 미국의 패권체제가 출범했지만, 미국과 함께 이른바 'G2'로 불리는 중국 등 현상타파를 위한 세력국가의 힘의 투사가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또 “보수화된 세계적인 시민의식도 한몫을 하고 있다”며 “각국에서 극우정당이 성장하면서 정권은 경제를 무기로 정치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각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힘을 투사해야하는 공격적인 정책 결정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 자유무역 관점에서 경제 분야의 많은 사례들이 개별기업의 사안으로 국한됐지만 이제는 ‘신산업은 곧 자국의 이익’이라는 명제 아래 각국 정부가 보수적인 입장에서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데 혈안이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국제법은 힘의 논리가 아닌 상호호혜를 기반으로 준수된다”며 “모범적으로 이를 준수해야할 강대국들이 먼저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점차 분화되는 국제정치의 양상에서 관세전쟁, 자국기업 보호 등 갈등은 더욱더 빈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20세기는 전후 UN이 창설되고 EU가 만들어지는 등 다자적인 협의를 중시해온 전통이 있었다”며 “이를 통해 자유무역이 확산되고 핵확산방지 등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최근 극단으로 치닫는 각국의 대립에서 UN과 G20 같은 협의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국제연합 국기[사진=유엔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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