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붉은깃발법과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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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입력 2019-05-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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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인 1865년 증기자동차가 나오자 흔히 ‘붉은깃발법’으로 알려진 적기조례(Red Flag Act)가 만들어졌다. 자동차 등장으로 피해를 볼 마차(馬車)업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마차사업과 마부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자동차 운용 방법을 규정한 이 법에 따르면 한 대의 자동차에는 반드시 운전사와 기관원, 기수가 있어야 하며 최고 속도를 시간당 6.4㎞로 제한하고 시가지에서는 절반인 3.2㎞로 떨어뜨렸다. 기수가 붉은 깃발(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 55m 앞에서 이끌도록 했는데,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게 한 것이다.

1896년까지 30년 이상 유지된 붉은깃발법은 마차업계와 마부 일자리 보호라는 위정자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마차보다 느리고 반드시 3명이 있어야 굴릴 수 있는 자동차를 살 소비자가 거의 없었던 탓이다. 이 규제로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은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들고도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독일·미국·프랑스 등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적기조례가 폐지되었을 때 영국 자동차기술은 매우 뒤처져 있었고 이후 오스틴이 부활하기까지 70년 이상 걸렸다.

영국 자동차산업을 암흑기로 몰아넣은 이 규제는 150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에도 소환되고 있다. 지난해 8월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대목에서 붉은깃발법을 거론해 화제가 되었고, 올 4월 신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취임사에도 들어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타다' 논쟁에서 붉은 깃발이 재현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장에 나온 타다는 앱으로 차량(11인승 카니발)을 대여하면 운전기사가 함께 오는 승차공유 서비스이다. 문제는 이 서비스가 뭔가 이동수단이 필요한 소비자에게는 택시와 다르게 여겨지지 않아 택시업계의 거센 반발을 낳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풀에 이은 모빌리티 서비스 격돌의 2탄인 셈이다.

택시업계와 택시기사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해법을 둘러싸고 정부 당국자와 1세대 벤처업계 대표들 간 불거진 타다 논쟁에서 이들의 거친 말을 다시 중계할 생각은 없다. 다만 택시면허 구매를 강제하는 해법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택시기사라는) 개인은 1억 들여 면허를 사야 하고 우버 같은 외국계나 대기업은 앱이나 하나 만들어 영업해도 되는가. 4차산업 어쩌구하며 날로 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혁신에 따른 피해집단을 챙겨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자는 선의로 보더라도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적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타다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를 하려는 사업자에게 택시면허 구매를 강제한다면, 150년 전 영국의 적기조례와 무엇이 다른가? 다른 혁신 서비스에도 이런 요구를 한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가령 언론소비가 주로 포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포털업체는 언론사를 운영하기 위한 인력과 설비를 구축한 적도 없고 한국사회가 어떤 대가를 요구한 바도 없다.

포털서비스나 모빌리티서비스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가능해졌다. 디바이스와 인터넷이 연결되고 개방과 공유를 통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일상화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영향력은 어느 한 부분이 아닌, 가히 전면적으로 시장 및 사회구조를 뒤흔들고 있는 참이다. 이 혁신적인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플랫폼 업체들이다. 플랫폼은 네트워크, 디바이스, 콘텐츠 등 ICT산업의 가치사슬을 연결하여 사용자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이 제공하는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가 많은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상품과 서비스가 혁신인지 아닌지는 수많은 소비자, 즉 시장이 판정한다.

카풀서비스에도 그랬지만 이번 타다 논쟁은 집단과 집단 간 이해관계를 드러낸 부(富)의 재분배 문제라고 생각한다. 혁신에 따른 편익을 누리게 하는 한편으로 이에 따른 그늘을 줄이는 사회안전망 강구가 중요하다. 기술변화는 이미 소유와 노동, 고용의 양상을 적잖이 바꾸고 있다. 혁신에 따른 효율과 생산성 제고 등의 결실이 일부 플랫폼 기업에 집중돼 부의 양극화를 점점 키우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반대로 이 플랫폼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 플랫폼 노동의 영역은 갈수록 커질 텐데 기존 산업 혹은 일자리의 대체에만 주로 관심을 갖는 것은 균형을 잃은 것이다.

결국 혁신에 따른 과실을 어떻게 재분배해서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할 것인지, 사회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조정·합의 기제가 필요하다. 이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 등 공적 영역은 조용하기만 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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