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직 출몰하는, 반칙 사회 유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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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기자
입력 2019-05-2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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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정치부장]

촛불시민혁명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꼭 2년이 됐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문재인 정부의 모토인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다운 나라”는 어디까지 이뤄졌나. 정치, 경제, 산업,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국가와 사회가 정상적인 패러다임과 공정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기는 한 걸까.

‘적자생존’, ‘약육강식’ 법칙만이 통하는 우리 사회 곳곳에는 꼼수와 반칙이 상식과 원칙을 조롱하듯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이기주의와 탐욕으로 똘똘 뭉친 거대한 패거리 집단이 상식과 원칙을 파괴하고 공공성과 공동체, 인간성을 말살하는 참담한 현실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최근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에서 드러났듯, 특권층을 비호하기 위해 검찰·경찰 권력이 나서서 사건을 은폐·조작했으며, 사법부 역시 공공연한 ‘재판거래’와 ‘전관예우’로 법치주의의 신뢰를 뒤흔드는 범죄를 저질렀다. 헌법이 위임한 국가권력을 자신들의 사익편취에 악용한 것이다.

친일·독재세력의 후예들은 국가폭력에 맞서 싸워서 이 땅에 민주화의 씨앗을 뿌린 광주 5월 영령들을 거리낌없이 모욕하고 있다. 되레 ‘독재 타도’를 외치며 자신들의 파렴치한 불법 행동에 국익과 진실·정의라는 허울을 씌운다.

국익을 중요시한다면서도 국가기밀인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유출해 양국 간 신뢰를 손상시키고, 적폐 비리로 줄줄이 수사 받는 인사들을 두고 ‘정치적 탄압’이라고 우기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경제 현장도 마찬가지다. 보수 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최저임금이 오르는 바람에 기업과 자영업·소상공인들의 한숨이 늘고 있다고 연일 정부정책을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보수 진영과 언론들은 살인적인 임대료, 초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프랜차이즈 불공정계약은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을’들의 갈등으로 몰고 갈 뿐이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한 축인 공정경제 실현에서 규제개혁과 재벌개혁은 결이 다른 문제다.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는 과감하게 풀되, 특혜 시비를 불러일으켜선 안 된다. 재벌개혁은 불공정하고 잘못된 관행과 기업의 지배구조를 상식적·합리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보수 진영은 정부가 경제 살리는 규제개혁은 더디게 하면서 기업 죽이는 재벌개혁만 꿋꿋이 밀고 나간다고 비난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은 대내외적 여건의 불확실성과 함께 조선·제조업 침체 등 구조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다. 

학교 현장은 또 어떤가.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성능 시험 기계로 전락하고, 친구를 이겨야 내가 살아남는 법을 일찌감치 터득한다. 그래야 남보다 더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미 편 가르기에 익숙하다. 사는 지역과 아파트 브랜드명, 부모의 직업과 타고 다니는 차량으로 친구의 기준을 가른다. 이 교실에서 계층 양극화와 빈부 격차, 정서적 거리감은 이미 싹튼다.

고액 사교육비를 쓰는 강남 아이들이 명문대로 불리는 이른바 ‘SKY’ 진학을 휩쓸고, 이곳을 졸업한 이들이 사회 주류층을 차지하는, 부와 권력의 대물림 사회에서 이미 공정한 룰은 깨지고 없다.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정답 유출사건을 비롯해 대학교수가 자신의 딸의 논문을 대학원생에게 대필시킨 사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금융권과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청년들에게 실망감을 넘어 좌절감 또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렇듯 학력주의가 정당화되고 능력주의가 신성시되는 풍토에서 자란 우리의 아이들이 과연 건강한 시민, '깨어 있는 시민'으로 성장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

5월 28일은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청년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그의 참혹한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법과 규정대로 산업 현장의 시스템이 돌아갔더라면 그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서 홀로 외롭게 죽어간 청년 김용균,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려 과로사한 집배원 이은장씨.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다.

반칙사회는 결국 개인과 사회를 불행하게 만든다. 반칙과 불평등을 보완하는 조치들이 단계마다 수행되어야 과정의 공정이나 결과의 정의가 가능하다.

‘느리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필 메모에 남긴 글귀처럼 시간은 빨리 흐르고 개혁은 더디기만 하다. 그러나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결국 역사는 진보한다.

"특권층끼리 결탁하고 담합하고, 공생하여 국민의 평범한 삶에 좌절과 상처를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반드시 끝내야 합니다.“(2019년 4월 9일 문재인 대통령)

열심히 땀흘리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 반칙과 특권 대신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세상이 이뤄지길 부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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