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7위에서 60위 중견기업까지...박삼구 회장 굴곡진 경영사

김해원 기자입력 : 2019-04-15 19:00
-무리한 사업 확장, 글로벌 경제 위기 등 악재 겹쳐 -계열사 통매각 시 금호고속, 금호산업, 금호리조트만 남아
아시아나항공을 이끌던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비행이 31년 만에 마무리됐다. 1988년 제2 민항사 선정과 1989년 해외 여행 자유화로 날개를 달았던 박 전 회장은 한때 재계 순위 7위까지 승승장구했지만 60위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대한항공과 30년간 '투톱' 체제를 이끌며 경쟁을 벌였던 아시아나항공은 박 전 회장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글로벌 금융위기, 아시아나항공의 회계 파문 등으로 논란이 됐다. 

대한민국 항공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퇴장하는 박 회장은 도약과 팽창을 거듭했던 항공사를 뒤로한 채 금호고속과 금호산업만을 손에 쥐게 됐다. 

앞서 대우건설, CJ대한통운, 금호타이어, 롯데렌터카(금호렌터카), KDB생명(금호생명), 우리종합금융(금호종합금융)을 내준 박 전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그의 굴곡진 경영의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고(故) 박인천 회장이 중고 택시 2대로 고속버스와 운수업을 시작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이후 그룹은 1988년 2월 정부에서 추진한 제2 민영항공 사업자로 선정됐다. 국내 항공업계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었다. 설립 6개월 뒤 사명을 아시아나항공으로 바꿨고, 1990년대부터 아시아나항공을 필두로 수십개 계열사를 거느리게 됐다.

1990년대는 국내 항공사가 팽창을 거듭하던 시기다. 해외여행자 수 증가로 인해 1992년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시작됐고, 냉전 종식 이후 국제선 노선도 다양해졌다. 1984년 부친이 떠나며 본격 경영을 시작한 박 전 회장은 1991년 아시아나항공 대표에 취임해 2002년 회장에 올랐다. 박 전 회장의 야심이 커지던 시기로, 2006년 대우건설, 2008년에 대한통운을 인수해 재계 7위까지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인한 차입금은 금융위기를 만나며 독이 됐다. 2006년 박 전 회장의 사세 확장은 '승자의 저주'로 불리기도 했다. 결국 2009년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의 재무구조가 악화돼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돌입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은 '형제의 난'까지 초래했다. 2015년 동생인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을 필두로 8개 계열사가 그룹에서 계열분리됐고 현재까지 독자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은 박찬구 회장과 '금호' 상표권 분쟁 등 10건이 넘는 송사를 벌였다. 

박 전 회장은 2015년 그룹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을 다시 인수하면서 복귀하는 듯했다. 하지만 6000억원가량을 외부차입과 자본유치로 조달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인수금액에 대한 담보로 박 전 회장과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44)의 금호고속 지분 42.7%가 현재까지 묶여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그룹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종속기업인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세이버 등을 지배하고 있어 그룹의 실질적인 몸통이다. 매각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통매각이 유력시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44.17%), 아시아나IDT(76.25%),아시아나에어포트(100%), 아시아나세이버(80%), 아시아나개발(100%), 에어서울(100%)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계열사 통매각 시 금호그룹은 금호고속, 금호산업, 금호리조트만 남게 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 = 금호아시아나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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