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화 칼럼] 중국흐름 못 읽는 한국기업에 고(告)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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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장
입력 2019-03-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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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구인투자법 확 바꾼 중국 ...장사 안된다고 베트남으로 옮기는 게 능사였나

[안유화 원장]


작년 말 삼성전자 톈진(天津)공장 운영중단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 얼마 안 되어 올해 초 현대자동차 베이징(北京) 제1공장의 가동 중지, 최근 기아차의 중국 옌청(盐城) 제1공장 철수 뉴스가 전해오면서 중국 내 한국 제조업체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대비되는 현실은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지난 15일 외상투자법(외국인투자법) 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중국정부가 중국 내 외국법인의 투자환경을 대폭적으로 개선한다는 소식이다. 중국의 외상투자법은 총칙·투자 보호·외국인 투자관리 등 총 6장 41개 조항으로, 외국인 투자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강요 금지, 외국인기업의 내국민 대우, 자금조달 환경 개선과 외국인 독자 투자기업 허용 분야 확대 등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외상투자법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외국기업에 대한 내국민 대우와 네거티브 규제 도입, 중국 국유기업 독점산업에 대한 시장개방이다. 중국정부는 외국기업의 중국시장 진출 이전과 이후의 내국민 대우를 약속함으로써 현재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 45개 영역 이외에는 외국기업도 중국기업과 똑같이 등록만으로 모든 영역에서 100% 지분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기존에 외국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영역, 예를 들면 자동차·인터넷·교육·증권·생명보험·은행 등 영역에 대한 개방을 포함한다. JP모건과 노무라증권은 가장 먼저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에 100% 독자증권회사 라이선스를 신청한 상태이다.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미국·일본의 기업들과 대조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중국 내 제도환경 미비와 여러 가지 이유를 근거로 공장 가동을 정지시키거나 베트남 등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 이는 미래 흐름에 반하는 전략이다. 우선 중국외상투자법 개편으로 중국 내 외국기업의 투자환경이 많이 개선되고 있으며 네거티브 규제로 가고 있어 기회는 확대되고 있다. 다음으로,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중국공장 폐쇄 배경에는 중국 내 시장 점유율 하락과 수익 악화가 한몫했다. 이는 동남아로 이전한다고 해서 결코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2008년부터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기 시작한 삼성의 경우, 현재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하여 삼성의 최대 해외 스마트폰 생산기지가 되었지만 실적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의 점유율은 1%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되었고, 최근 인도시장에서도 시장 1위 자리를 중국 샤오미에 내주었다. 문제의 핵심은 진출한 시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을 빨리 읽지 못한 데 있다.

그동안 중국 진출 한국기업들은 무엇을 놓쳤을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중국 내 실적 부진 원인은 놀랍게도 공통적으로 중국 내 변화 흐름을 제대로 못 읽었던 데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이 이미 4G로 진입했음에도 기존의 3G 휴대폰 확대생산에만 집중하다 보니 시장에서 10위 밖으로 밀려나는 굴욕을 경험했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시장 수요가 이미 SUV 시장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소형차 확대생산에만 치중해 오늘날 공장가동을 멈추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사실 2014년 이전까지만 해도 삼성 스마트폰은 중국 내 점유율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었으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100만대 생산량을 돌파하면서 중국 내 자동차 제조업체 4위로 등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중국시장은 이미 중국 국내제조업체들의 부상과 더불어 수요국면이 크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한국기업들은 이 변화 흐름을 적시에 따라가지 못했다. 반대로 과거 성과가 좋다는 이유로 공장 증설로 생산확대를 도모하였으며, 결국 오늘날 과잉생산으로 막대한 재고 부담에 공장 가동률도 50% 이하로 떨어지게 되었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는 중국 현지에서 성장하는 미래 자동차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체질 개선이 필요할뿐더러 중국 현지 판매 감소에 따른 대응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한국제조업체가 중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와 추세의 흐름을 먼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중국은 제도법규가 미완비된 상황이었지만, 외자들은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보고 현지공장을 설립하고 생산상품을 해외시장에 파는 전략으로 중국을 활용해 왔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해외자본에 대해 생산요소 주도형 개방전략을 취함으로써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세계시장에 수출하면서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시장이 침체되면서 중국의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은 한계에 부딪히고, 중국진출 외국자본도 중국 내수시장 공략으로 전략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중국 내 소비시장 변화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 전략변수로 떠올랐지만, 한국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데만 치중하였지 결코 내수시장 공략을 위한 장기 전략은 부족했다.

한국기업들은 중국에서 빨리 탈출하는 전략 대신에 중국 시장에서 자신의 산업영역에서의 빅데이터 확보와 인공지능 도입, 4차 기술영역에서의 지적재산권 선도 확보전략을 구사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면서 신시장을 만들어 가야 하고, 4차 기술혁명의 중심지인 중국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 중국시장에서 잘 안 되면 중국에서 나가고, 베트남시장에서 부진하면 베트남에서 빠져나가고, 인도시장에서 실패하면 또 다른 국가로 이전해가는 기러기형 산업 이전 발전전략은 이제 시대흐름에 낙오된 전략이다. 과거 인터넷도 없고, 국가 간 금융거래도 제한되던 시대에 선진국의 기술이 이머징 국가로 가고, 이머징 국가에서 다시 후진국으로 산업이 이전해가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5G 출현으로 기업 간·국가 간·사람 간의 통신이 거의 비용 없이 순식간에 진행되는 시대에 국경은 형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결국 글로벌 시장은 하나의 시장에 불과하며, 기술이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현재 한국업체들은 이러한 변화를 잘 읽고 재빨리 대응하고 있는 것일까?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보면, 현재 세계는 자율자동차로 가고 있지만 현대자동차는 세계 자율자동차 순위 10위권 밖에 있다. 자율주행차 '선두'는 구글·GM·포드 등이며, 중국의 바이두와 일본의 도요타는 10위권 안으로 신규 진입한 상황이다. 반도체 기업 인텔도 2017년 3월 자율주행차 카메라 제조업체 '모빌아이'를, 포드는 2018년 1월 자율주행차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 '오토노믹'을 인수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만약 자율주행차 시대가 완전히 도래하면 자동차는 더 이상 자동차가 아니라 달리는 사무실이나 회의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자동차 산업 가치사슬의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며, 지금처럼 자동차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물인터넷과 그에 따른 빅데이터 및 AI 기술의 융합을 통한 서비스 제공이 핵심경쟁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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