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아시아 요람’ 세계경제 ‘재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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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기자
입력 2019-03-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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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마카오·홍콩·대만·한국 출산율 최저 1~5위

  • 중국, 저출산·고령화 문제 세계 경제 미치는 영향 커

  • 스웨덴·프랑스 등 사례 참고해 '양성평등' 정착 돼야

#최근 몇 년 동안 홍콩에서는 ‘검은 머리카락’의 택시운전사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택시운전사의 절반이 60대 이상이다. 30~40대는 고작 15%에 불과하다.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2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시즈오카현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이사비 견적을 알아보다 경악했다. 1인 가구다 보니 비용이 저렴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예상비용이 40만 엔(약 409만원)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짐을 싣고 날라야 하는 젊은층 일손이 부족해 이사업계 인건비가 폭등한 탓이다.

아시아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저출산의 폐해다. 특히 동아시아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을 넘어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앞서 소개된 홍콩과 일본을 포함해 한국, 대만, 싱가포르, 중국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합계 출산율(가임 여성 1인당 출산아 수)은 1.7명도 넘지 않는다. 이 중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는 중국은 최근 들어 출산율 저하와 인구 증가 둔화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아시아 저출산의 원인을 정착되지 못한 양성평등 사회문화와 남성 위주의 노동 조건 등으로 꼽는다. 또 이들은 아시아의 저출산 문제가 아시아와 더불어 세계경제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홍콩, 인구감소 문제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18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28개 국가를 상대로 조사한 지난해 국가별 합계 출산율 중 일본, 한국, 마카오,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국가는 모두 200위권인 하위권에 속한다.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싱가포르로 0.84명을 기록했고, 한국(1.27명)과 대만(1.22명), 홍콩(1.22명), 마카오(0.95명)가 나란히 224~227위를 차지했다. 최하위 5개국이 모두 동아시아 국가인 셈이다.

일본은 1.42로 211위를 차지해 비교적 높은 순위에 랭크 됐지만 일본의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것으로, 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먼저 합계 출산율 1명대를 기록한 나라라고 소개됐다.

실제 최근 일본에서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다음달 7일과 21일 실시되는 통일지방선거에서 입후보자 부족 문제가 부각될 전망이다. 신문이 지난 12월 전체 시구정촌 의회 178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약 40%에 달하는 678곳이 ‘의원 입후보자 부족이 과제’라고 답했다. 고령화와 저출산이 지방의회의 ‘구인난’으로 이어진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는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홍콩에서는 택시 운전사의 높은 연령대로 인한 사고율 상승이 문제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MCP)에 따르면 2017년 홍콩 택시의 사고율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중 60% 이상은 55세 이상의 운전자가 일으킨 것이며, 55세 이상의 운전사는 전체 운전자의 70%에 달한다.

SCMP는 “홍콩 경제는 서비스 중심”이라며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이 같은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저출산 문제 [사진=연합뉴스]

◆중국도 저출산·고령화 ‘초비상’

 ‘인구대국’ 중국도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신생아 숫자는 1520만명으로 전년보다 11%(약 200만명)가량 감소했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실시한 강력한 '한 자녀 정책' 등 산아제한정책을 모두 폐지했음에도 출산율이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신생아 수는 2016년 1786만명, 2017년 1723만명으로 계속 줄었다.

저출산 추세는 중국 인구 증가율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 인구 증가율은 0.38%로, 1961년 이래 최저 수치였다. 큰 변수가 없다면 중국 인구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감소해 2020년 18.3%에서 2065년 12.0%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도 심각하다. 지난 1970년 19.3세에서 2015년 37.0세로 오른 중국의 중위(총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할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연령이 2050년쯤 50세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인구 증가 둔화 추세가 중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왕 펭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의 인구 둔화 추세는 매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을 0.5%씩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와 더불어 최근 지속되고 있는 경기둔화 여파가 중국 성장률을 3%대로 떨어뜨린다면 이 감소분에 따른 경제 피해가 심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경제 성장 둔화 근본원인은 저출산·고령화

전 세계 경제 성장의 30%를 책임질 정도로 큰 경제대국인 중국의 경기가 둔화하면 전 세계 경기도 급속히 둔화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최근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소비력이 저하하자 미국 기업들은 물론, 유럽 자동차 업체 등이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원자재나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 역시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생산가능인구의 축소와 소비 기반 약화로 직결된다. 그리고 이는 공공부채와 재정적자를 증가시키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조장, 다시 인구감소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 경제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

래리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을 통해 “세계 경제 성장 둔화의 진짜 이유는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구가 늙어가고 일할 사람이 줄면서 투자가 위축되고, 수익성 높은 투자처가 사라지고 있다”며 “전 세계의 투자가 저축보다 구조적으로 부족해 낮은 중립금리가 형성된다”고 밝혔다. 중립금리는 저축 공급과 투자 수요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의 가격이다.

서머스 교수는 낮은 중립금리, 저성장 추세의 최대 원인 중 하나로 중국의 저출산을 꼽았다. 그는 중국의 출생률이 역대 최저를 기록한 것은 미·중 무역전쟁보다 더 큰 세계 경제 성장 둔화의 이유”라며 “그런 면에서 중국의 고성장 미래와, 세계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강조했다.

◆亞저출산 ‘양성 불평등’ 탓… 선진국 사례 참고해 제도 정착돼야

외신들은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있지만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습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고, 사회·경제적 인프라와 자원이 부족한 게 아시아 국가들의 저출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FT는 “아시아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여성 인권은 생각만큼 높아지지 않고 있다”며 “출산율이 낮은 것은 단순히 낡은 정책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이 출산할 환경을 만들지 못하는 모순 탓도 크다”고 밝혔다.

메리 브린튼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시아 국가 중 일본과 한국의 사례를 콕 집어 ”일본과 한국의 남성들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남성들에 비해 가사 노동에 가장 적게 참여하고 있다”며 “양국의 기혼 여성은 가사노동과 육아의 80~90%를 담당하고, 직장 내에서도 남성에 비해 승진 기회가 적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들은 단 한 명의 아이만 가질 가능성이 크다”며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육아, 가사노동, 직장에서 느끼는 여성의 부담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브린튼 교수는 특히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스웨덴의 저출산 대책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의 합계 출산율은 1978년 1.6명까지 떨어졌으나, 1999년 이후 여성 노동참가율과 함께 반등했다. 2008년 합계 출산율은 1.91명으로 인구 대체율 수준으로 올랐다. 스웨덴 복지정책의 핵심은 양성평등의 생활화다. 남녀 모두 육아와 일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하고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지원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이 높은 국가임에도 출산율이 높은 것은 ‘남녀평등 실현’을 중요시한 출산장려정책 때문이라는 평가다. 

프랑스의 사례도 눈에 띈다. 프랑스에서 출산율 감소는 유럽국가에서 가장 빠른 19세기에 시작됐다. 이에 따라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가족정책을 시행했다. 취약계층만을 위한 잔여복지가 아닌 중산층에도 해당하는 보편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보육서비스 역시 모든 계층의 부모와 아동을 위한다는 원칙으로 진행된다. 보육시설은 주로 국·공립이다. 모든 유치원 교육은 무상으로 제공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도 1970년대에 일찌감치 도입됐다. 출산휴가는 출산 전·후 16주 동안 가능하고 휴직급여 대체율은 10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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