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용의 Under the SEE] 공정만 있고 공동체 없는 사회

  • <보이는 것 아래 숨은 이야기>

  • 서울 집중화와 세대 갈등,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악순환

세대갈등
세대갈등



선거가 끝날 때마다 세대 갈등이 화두로 떠오른다. 청년은 기성세대를 향해 “좋은 시절을 다 누리고 사다리를 걷어찼다”고 말한다. 기성세대는 청년을 향해 “노력보다 불평이 앞선다”고 비판한다. 집값 문제를 두고도, 연금 문제를 두고도, 복지와 세금을 두고도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정치권 역시 이런 갈등을 중재하기보다 표를 얻기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지금의 세대 갈등은 단순히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충돌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방치해온 더 큰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서울 집중화와 공동체 의식의 붕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수도권 집중이 심한 나라가 됐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주요 대기업 본사와 정부 기관, 상위권 대학과 문화 인프라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방 청년들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서울로 향하고, 기업들은 다시 인재를 찾아 서울에 모인다. 서울은 더욱 커지고 지방은 더욱 작아지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경쟁의 강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높아졌다는 점이다. 서울에 진입하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고, 서울에 진입해도 집값과 생활비 때문에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 대학 입시부터 취업, 승진, 주택 마련까지 모든 것이 생존 경쟁이 됐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경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집값은 그 갈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강남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수십억원을 넘는 현실에서 자산을 보유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의 인식 차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중장년층에게 집값 상승은 노후를 지켜주는 안전판일 수 있다. 그러나 청년층에게 그것은 평생 따라잡기 어려운 장벽이다. 같은 현상을 두고 한쪽은 안도하고 다른 한쪽은 절망한다.

연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노년층은 어렵게 납부한 보험료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다. 복지 정책 역시 비슷하다. 누군가를 지원하면 다른 누군가는 역차별을 이야기한다. 사회적 논의는 점점 "무엇이 공동체 전체에 도움이 되는가"보다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가"에 집중된다.

그 과정에서 공정이라는 가치도 변질되고 있다. 공정은 원래 출발선의 차이를 줄이고 누구에게나 기회를 보장하자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종종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논리로 사용된다. 내가 얻은 이익은 정당한 대가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지원은 특혜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은 역차별이 되고, 청년 지원 정책은 포퓰리즘이 되며, 노인 복지는 미래세대 착취라는 비난을 받는다.

물론 각자의 주장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문제는 모두가 자신의 공정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양보와 연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양보보다 권리를, 책임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서울 집중화 역시 그런 사고방식이 낳은 결과다. 부모 입장에서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수도권으로 이주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기업 입장에서 인재가 모여 있는 서울에 본사를 두는 것도 경제적 판단이다. 집을 가진 사람이 집값 상승을 바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개인의 합리성이 모두 합쳐지면 사회 전체는 비합리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지방은 소멸하고 서울은 과밀해지며, 주거비와 교육비는 치솟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다.

실제로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방 대학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지방 중소도시는 존립 자체를 걱정하고 있다.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중장년층은 자산 방어에 몰두하며, 노년층은 노후 불안을 걱정한다. 모두가 불안한데도 서로를 향해 책임을 묻고 있다. 같은 배를 타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이 배를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공정’을 말하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공동체’를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모두가 자신의 몫을 주장하지만, 누군가는 다음 세대와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내놓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비용은 내지 않으면서 공동체가 제공하는 혜택만 누리려 하고 있다. 서울의 집값이 오르길 바라면서도 저출산을 걱정하고, 지방 소멸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수도권 집중을 선택한다. 그것이 오늘 한국 사회의 모순이다.

서울 집중화와 세대 갈등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서울에 기회가 몰릴수록 자산 격차는 커지고, 자산 격차가 커질수록 세대 갈등은 깊어진다. 그리고 갈등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게 된다. 이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하나의 공동체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정만 있고 공동체가 없는 사회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쟁이 아니라 더 큰 연대다. 서울과 지방, 청년과 노년이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공동 운명체로 바라볼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미래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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