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용의 Under the SEE] 수출 호황에도 팍팍한 삶, 집값 경제의 그늘

  • <보이는 것 아래 숨은 이야기>

수출 호황 팍팍해진 삶
수출 호황, 팍팍해진 삶


수출 지표만 놓고 보면 한국 경제는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반도체는 다시 살아나고 있고, 자동차와 조선도 버티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 체감경기는 다르다. 월급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집값과 전셋값, 대출이자는 버겁다. 자영업자는 손님이 줄었다고 말하고, 청년은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 수출은 괜찮다는데 왜 삶은 더 팍팍해졌을까.

문제는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기대온 성장 공식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데 있다. 밖으로는 수출 대기업이 벌어오고, 안으로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소비와 세수, 자산효과를 떠받치는 구조였다. 이 공식은 한때 작동했다. 수출이 늘면 공장이 돌아갔고, 고용이 늘었고, 임금이 올랐다. 집값이 오르면 중산층은 자산이 불어났다고 느꼈고, 건설투자와 가계소비도 함께 움직였다. 수출과 부동산은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었다.

그러나 이제 두 기둥의 성격이 바뀌었다. 수출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과실이 과거처럼 넓게 퍼지지 않는다.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 관련 산업은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투입되는 산업이다. 생산성이 높고 부가가치도 크지만, 고용 창출 효과는 예전 제조업 전성기만큼 크지 않다. 대기업 실적이 좋아져도 동네 상권과 중소기업, 청년 일자리까지 온기가 퍼지는 속도는 느리다. 수출 호황이 곧바로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부동산은 더 큰 문제다. 집값 상승은 한때 경기 회복의 신호처럼 여겨졌다. 집을 가진 사람은 부자가 된 듯했고, 은행은 담보대출을 늘렸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거래세와 보유세 수입을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의 집값 상승은 더 이상 건강한 자산효과가 아니다. 청년에게는 넘을 수 없는 진입장벽이고, 가계에는 평생 갚아야 할 빚이며, 사회 전체에는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압박이다.

집값이 오르면 경제가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끌어다 쓰는 것이다. 가계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당장은 거래가 늘고 건설과 금융이 움직인다. 그러나 이후에는 원리금 상환 부담이 소비를 짓누른다. 아이를 낳고 교육비를 쓰고 노후를 준비해야 할 돈이 은행 이자로 빠져나간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내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내수를 갉아먹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서울 집중은 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좋은 일자리, 대학, 병원, 문화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리니 청년은 서울을 떠날 수 없다. 지방에 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회가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울 집값은 더 오르고, 지방은 인구와 소비 기반을 잃는다. 수도권 청년은 비싼 주거비에 눌리고, 지방 청년은 기회 부족에 좌절한다. 이쯤 되면 집값 문제는 부동산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장, 분배, 인구, 지역 균형을 모두 뒤흔드는 경제의 핵심 문제가 됐다.

더 큰 위험은 정부와 정치권이 여전히 낡은 공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이 잘되면 경제가 괜찮다고 말하고, 집값이 떨어지면 경기가 무너질까 걱정한다. 물론 수출은 한국 경제의 생명줄이고, 부동산 급락도 금융불안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수출 실적이 국민 삶으로 이어지지 않고, 집값 상승이 미래세대의 기회를 빼앗는다면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경제정책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수출액과 성장률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돈이 임금과 투자, 내수와 지역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봐야 한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좋아졌다면 협력업체와 연구인력, 지역경제로 이어지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 첨단산업 투자가 수도권 일부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지방 거점도 함께 키워야 한다. 수출 대기업이 번 돈이 금융시장과 부동산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적 투자와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을 떠받치는 것을 경기대책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주거 안정은 집값을 계속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청년과 신혼부부가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고, 맞벌이 부부가 대출 상환 때문에 출산을 미룬다면 그 사회의 성장 기반은 이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한국 경제는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수출 대기업과 아파트값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수출은 좋은데 삶은 나빠지고, 집값은 오르는데 미래는 좁아지는 경제는 지속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대출도, 더 높은 집값도 아니다. 수출의 성과가 임금과 일자리로 이어지고, 주거비 부담이 줄어들며, 지방에서도 삶의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성장의 회로다.

수출로 벌고 집값으로 버티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 한국 경제가 물어야 할 질문은 수출이 얼마나 늘었느냐가 아니다. 그 성장이 누구의 삶을 나아지게 했느냐이다. 집값이 얼마나 올랐느냐도 아니다. 그 집값 때문에 누가 미래를 포기하고 있느냐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수출 호황이라는 숫자는 점점 더 공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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