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아이들의 이상 행동을 보면 가장 먼저 이유를 찾으려 한다. 누가 잘못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를 판단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은 바로 그 익숙한 어른들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초등학생 5학년인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시작된다. 사오리는 부쩍 미나토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몸에 상처를 입은 채 돌아오는 일이 일어나자 이상함을 느낀다. 이 와중에 미나토의 물병 속에서 진흙이 쏟아지고 한 짝만 남은 신발이 뒹구는 등 일방적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사오리는 미나토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오리의 추궁에 미나토는 담인 교사인 호리(나가야마 에이타)가 자신을 모욕하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증언을 하게 된다.
엄마인 사오리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너무나 명확하다. 아들의 입으로 담임 교사의 만행을 들었으니 이제 아들을 지켜줄 일만 남은 것이다. 결국 사오리는 분노에 휩싸여 학교로 향하고, 사건에 대한 냉정한 판단보다 “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마음이 앞선다.
어쩐지 학교 측은 안일하고 형식적인 대응만 할 뿐이다. 교장실에서 울부짖는 사오리의 분노를 더욱 크게 만든 것은 교직원들의 의례적인 태도와 호리의 진심이 없는 사과였다. 이들에게 사오리는 “인간의 마음이란 게 있는가”라고 물으며 이들을 ‘괴물’로 단정짓는다. 관객 역시 이런 모습을 보며 사오리의 감정에 쉽게 동화된다.
이제 시점은 호리에게로 넘어가고, 그 순간부터 관객이 알고 있던 사실들이 모두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실 호리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가 아니다. 그는 학생들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상황을 능숙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서툰 어른에 가깝다. 미나토가 동급생 요리를 괴롭힌다고 믿고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파악하려 하지만 아이들은 호리를 대상으로 한 거짓말을 하고 폭력 교사로 몰린 호리의 삶은 파국으로 향한다.
사오리와 호리의 입장을 접한 뒤 관객은 알게 된다. 사오리는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나섰지만 아들의 진정한 마음까지는 보듬어주지 못하는 엄마였으며, 호리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던 교사였으나 진실을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 서 있었을 뿐이다. 모두 틀린 것도, 완전히 옳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전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영화는 마지막에야 사건의 중심에 있던 두 아이, 미나토와 요리에게 시선을 돌린다. 미나토는 괴롭힘을 당하는 반 친구 요리와 가까워진다. 요리는 학교에서 독특한 말투와 행동 때문에 “이상한 아이”로 불리며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집에서는 아버지에게 “남자답지 못하다”며 폭행 당하기 일쑤다.
미나토는 요리와 함께 있을 때만 드러나는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 세상에선 미나토의 정체성을 ‘혼란’이라고 규정지을 때 미나토와 요리는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좋은 아이들이었다.
영화는 아이들의 정체성에 대해 궁극적으로 나타내지 않지만 가정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일례로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에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엄마는 아빠에게 약속했어. 네가 결혼해서 가족이 생길 때까지 잘 돌보겠다고. 어디에나 있는 아주 평범한 가족이면 돼”라고 한다. 언뜻 자식에 대한 일반적인 바람으로 읽힐 수 있지만, 정체성이라는 고민을 안고 있는 미나토에게 이 말은 사오리가 늘상 이야기하던 “선을 넘으면 지옥”이라는 말과 같았다. 미나토는 그 순간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요리 역시 “남자답지 못하다”며 아빠의 폭력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한다. “넌 옆 동네의 여자애를 좋아하지”식의 세뇌를 당하지만 그럼에도 요리는 질 수 없다는 듯 순수한 밝음을 읽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에겐 익숙하고 평범한 순간이 어떤 이들에겐 폭력적일 때가 있다. 대다수에게 평범한 이 말은 “너는 꼭 규범과 규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범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강요로 받아들여진다. 사오리는 아들의 평범한 삶을 바라지만 정작 어떤 것이 아들에게 행복한 일인지는 들여다보지 못한다. 미나토가 반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요리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도 당연히 알 수 없다.
사실 두 아이들은 근처 숲속의 폐기차를 아지트로 삼을 만큼 서로의 세계를 갖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학교도 부모도 “정상적인 아이”가 돼야 한다는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나토와 요리는 서로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함께 있으면 서로의 세계가 채워지는 관계였다.
이들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건 어른들이다. 마사토의 하나만 남은 신발은 괴롭힘을 당한 요리를 위해 한쪽을 벗어주며 남은 것이었고, 물병 속의 진흙 또한 요리가 죽은 고양이를 묻어준 뒤 화장 의식을 치르는 것을 본 마사토가 불을 끄기 위해 하천에서 물을 담다가 남은 잔재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두 아이는 폐열차 안에 숨어 비가 멎기를 기다리고, 두 아이는 자신들을 찾아 헤매는 어른들의 불안과는 무관한 듯 함께 밖으로 걸어 나온다. 이후 자유롭게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 끝내 지키고 싶었던 두 아이의 순수한 세계를 조용히 나타낸다.
영화가 끝난 뒤 뒷맛이 씁쓸했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보며 이들을 ‘괴물’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에. 그리고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얼얼함과 함께 물음 하나가 떠올랐다. 괴물은 사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잣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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