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귀인' 만난 김정은 위원장, 70년 숙원 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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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교수
입력 2019-03-2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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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


점괘를 보다보면 ‘귀인’이 들어선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미·북 관계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귀인’ 같아 보인다. 김정은에게 트럼프가 ‘귀인’ 같은 형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아우라가 겹치면서 그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로 인해 북한은 지난 수십년 동안 숙원했던 바를 마침내 얻게 됐다. 

첫째, 지난 70년 동안 북한이 요구한 한미군사훈련의 중단이다. 북한의 요구 압박 없이 트럼프 스스로가 일방적으로 중단한 결과다. 트럼프는 가성비를 이유로 해외군사활동의 가치와 효과 및 효율성을 기본적으로 불신한다. 북한의 어떠한 요구 또는 압박이 없는데도  트럼프는 스스로 일방적인 군사훈련 중단 결정을 내리면서 북한은 원하는 것을 얻게 됐다. 둘째,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가능케 했다. 이 아우라는 역대 정부가 저지른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는다는 그의 각오에서 발생했다. 전임자와 다른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그의 일관된 신념으로 김정은과 만남이 가능해졌다. 이 역시 북한 역대 지도자가 지난 70년 동안 고대했던 숙원사업(북·미정상회담)의 결실을 맺어주는 결과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 어느 대통령보다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이는 그가 비핵화 대가로 북한 경제를 책임진다는 발언에 근간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은 트럼프가 자신에게 진정으로 ‘귀인’이 될 수 있음을 재확인했다. 문제는 ‘귀인’의 말에는 항상 전제조건이 있다. 그 조건의 수행 여부에 따라 지침의 횡재성 여부도 결정된다. 이번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었지만 ‘귀인’의 지침이 명백히 밝혀진 회담이란 사실에서 가치가 있었다. 그 지침은 회담 이후의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언론과의 대담에서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드러났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개념, 기본 입장과 전략이 완전히 소개되었다. 비핵화 개념에 대한 미국의 개념 정의가 북한에게 명명백백하게 전해졌다. 트럼프는 이를 영문과 국문으로 문서화해 김정은에게 직접 전달했다. 내용으로 우선 핵물질과 관련해 플루토늄, 재처리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등 모든 핵물질의 제거를 요구했다. 둘째, 대량살상무기의 의미는 핵탄두와 미사일 발사장은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한 탄도미사일의 제거 또는 파기를 포함했다. 결국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문제가 아니다. 핵탄두의 탑재 발사 가능한 모든 미사일을 포함한다. 이밖에 북한의 모든 생화학무기의 완전한 폐기도 포함됐다. 이를 요구한 이유는 주한미군과 한반도의 미국민 안전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셋째, 핵시설과 관련해 미국은 북한의 모든 시설의 폐기를 원했다. 이는 지금껏 거론된 영변핵시설, 미사일개발시설과 풍계리 핵실험장 외에 모든 시설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세계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시설을 김정은에게 제시했다. 이에 김정은이 미국의 정보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정은은 또한 미국의 비핵화 개념 전모에도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백기투항의 의미로 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분명했다. 북한이 이 같은 비핵화 개념을 수용하지 못하는 어떤 합의도 ‘옳은 딜(right deal)’이 아니라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회담 결렬의 이유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이유도 됐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원하면서도 미국이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고 미국에게 제안한 것이 있었으나 미국이 원하지 않은 것들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하노이 회담에 임하는 기본 입장은 미국의 국익을 수호하고 진전시키는 것이었다. 이 역시 협상의 주도권을 갖겠다는 ‘미국 우선주의’의 원칙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턴이 지난 3일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을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은 모든 핵 관련 물질, 무기, 시설 등의 폐기 개념에서의 ‘빅딜’을 강력히 요구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미국이 하나라도 수용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합의가 있을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 북한에게 명확히 전달될 수 있었던 사실이 회담을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였다는 의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국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접근 전략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비핵화의 로드맵과 보상에 대한 미국의 제안은 있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미·북 양국이 이를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북핵 사찰과 검증의 계획과 일정을 포함한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러나 그의 측근들도 이와 관련한 더 이상의 어떠한 발언도 없다.

또한 비핵화 보상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는 자신을 담보하면서까지 북한의 비핵화로 북한 경제 발전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비핵화로 북한의 국가발전방향이 경제발전으로 영원히 확정되도록 이번에 못을 박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아쉬운 사실은 이와 관련한 어떠한 방법론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와 그의 참모들은 대통령의 남은 임기 안에 이 모든 것의 달성 가능성을 점쳤다.

하노이 회담에 대한 트럼프의 총평은 세 가지였다. 첫째, 최종적으로 미국이 납득할 만한 것을 얻지 못했다. 둘째, 미국은 더 많은 요구를 했다. 셋째, 그러나 북한은 이를 수용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수준에서 비핵화 의지를 고수하는 것이 이번 회담에서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관계가 매우 좋고 그에 대한 신뢰가 있어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회담이 결렬되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비록 3차 회담 약속은 없었으나 언제든지 할 의사가 있음을 명확히 밝혔다.

하노이 회담은 완벽한 핵폐기를 북한이 원하는 모든 상응조치의 전제조건으로 확정지었다. 이를 이유로 미국은 북한이 결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임을 확신했다. 트럼프가 통 큰 빅딜을 고수하면서 과거의 점진적 해결방식은 물 건너갔다. 북한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미국은 강한 대북제재를 유지할 것이다. 미·북회담을 강한 대북제재의 결실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3차 회담 때까지 이를 유지하면서 관련국의 긴밀한 협력을 요구할 것이다.
 

환담하는 트럼프·폼페이오, 김정은·김영철 (하노이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 28일(현지시간) 1대1 단독 정상회담을 마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 정원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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