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미세먼지=생명=안보’…잿빛 디스토피아 대통령이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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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19-03-0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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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칼럼]

‘이승재칼럼-하이브리드각’은 20만 시간 넘게 신문, 방송 등 언론사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에서 일해 온 필자가 정치-경제-사회-문화-스포츠 등의 분야를 융복합, 넘나들고 어우르는 칼럼입니다.

주한미군과 함께 일하는 대한민국 육군 카투사(KATUSA)로 복무할 때 주특기는 화생방(NBC·Nuclear-Biological-Chemical)병이었다. 적의 핵무기, 생화학무기 사용 시 방어하는 군사 기술을 배우고 가르쳤다. 가장 큰 핵심은 방독면이었다. 죽고 사는 운명,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방독면을 신속하게 제대로 착용하는 거다. 카투사 복무에 앞서 육군 논산훈련소에선 대한민국 현역 군인 출신이라면 누구나 ‘당했던’ 화생방 훈련을 경험했다. NBC 군 생활로 각인된 '방독면에 내 목숨이 달렸다'는 생각, 맑고 신선한 공기에 대한 욕구는 생존본능이 됐다.

최근 미세먼지가 최악인 와중에 운 좋게도 맑은 공기를 마셨다. 의도치 않게 미세먼지를 피해 도피하는 '피미'를 한 셈이다. 부산과 지척인 일본 규슈지역의 산과 바다, 도시에 며칠 머물며 신선한 산소를 마음껏 흡입했다.  5일 밤 인천국제공항 상공 착륙 전 짙은 어둠 속 세계 1,2위 최악의 미세먼지 도시인 서울과 인천의 대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인천공항터미널에서 내다 본 바깥은 공포 그 자체였다. 입국장 게이트 너머 자욱한 먼지는 논산훈련소 화생방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를 지켜줬던 그 육중한 화생방마스크를 얼굴에 써야 살수 있다는 본능이 다시 되살아났다.

논산훈련소 화생방실이 준 본능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문재인 대통령 미세먼지 대응방안 긴급 보고’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서 대통령은 모든 부처가 총력체제로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라며 “국민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는 정부가 장기적인 대응책에만 머물지 말고 즉각적으로 요구에 부응해야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또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공기정화기를 빠르게 설치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보고했다. △차량운행 제한 △석탄발전 상한 제약 △미세먼지 배출시설의 가동 시간 조정 △살수차 운행 확대 등의 비상조치를 언급했다.

이 기사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대통령과 정부는 가장 중요한 변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지 않았나 싶다. 중국이다. 몰랐다면 ‘무능의 극치’이고, 알고도 얘기 안했다면 ‘국민 무시’다. 중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라고 강변한다면 지금은 고양이 앞의 쥐라도 ‘찍 소리’는 내야하는 상황이다. 여러 연구를 통해 나온 증거는 차고 넘친다. 중국의 오염원, 바람의 방향만 봐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원인 중 적게는 50%, 많게는 80%가 ‘중국발’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15년 미세먼지 관측 이후 지역별 최고 기록을 경신했던 올해 1월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분석한 결과가 그렇다.

중국의 오염원 중 한반도 서쪽, 중국 동해안 쓰레기소각장이 큰 원인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소각장을 더 짓는다고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중국 동부 연안 성(省)에 244곳(2015년 기준)이던 쓰레기 소각 시설은 121곳이 더 건설 중이고, 2020년까지 추가로 106곳을 더 건설할 예정이다. 왜 중국은 굳이 한반도와 마주한 동부 연안에 이렇게 소각장을 짓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람이 중국 내륙이 아닌 한반도와 일본 쪽으로 불어 나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10년 전 중국 동부 연안 저장성 쓰레기 소각장 건설 현장을 다녀온 사람은 이렇게 증언한다. “당시 중국은 저장성에 쓰레기 소각장 수십 곳을 짓고 있었다. 다 바닷가에 위치했는데 이유는 소각 후 분진이 바다(한국의 서해)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부실공사를 많이 해서 제대로 된 소각장을 짓지도 못했다”라고. 전문가들은 2005년 약 8000만t이던 중국의 쓰레기 소각량은 2015년엔 1억8000만t으로 급증했고, 2020년 소각량은 2015년보다 두 배 가량 증가할 것으로 분석한다. 큰일이다.

여기에 석탄을 주연료로 쓰는 화력발전소도 우리 서해 쪽으로 툭 튀어나온 산둥성에 많다. 중국의 석탄화력발전소 9.3%가 산둥성에 위치해 있다. 중국 동쪽에 위치한 공장 단지에서 발생한 오염 물질은 한반도의 미세먼지와 동일 성분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한반도의 대기오염 특성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중국 산둥성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나온다. 나사는 관측용 비행기를 통해 한반도 전역을 비행하며 2016년 5월부터 6주 동안 한반도 대기오염 특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중국 영향이 71%, 국내 20%로 나타났다.

최우선 안보이슈, 미세먼지 다룰 한중정상회담 시급

미세먼지 사태는 온 국민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단순히 재난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국가비상사태다. 어찌 보면 전쟁보다 더 심각하다. 전쟁이 나면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모든 사람이 갖지는 않는다. 지리산 산 속 얼기설기 집을 짓고 사는 ‘자연인’은 전쟁 발발에도 천하태평이다.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져도 무사한 비밀 핵벙커를 자신의 청담동 건물 지하에 만든 서울 강남의 벼락부자 역시 ‘나는 안 죽어’라고 생각한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은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5도 주민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 사는 국민들은 그 공포를 100% 공감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이 대표로 선출하는 지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안보와 경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과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거다.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안보가 경제보다 먼저다.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살아 있는 것이다.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게 바로 안보의 최우선 과제다. 그런 측면에서 한반도에 사는 7000만 인구가 ‘죽음의 미세먼지’를 마시고 있는 지금은 전쟁 보다 더 위중한 안보의 위기다. 그 안보위기를 불러온 책임은 상당 부분 중국에 있다. 왜 중국에 이를 항의하지 않는가? 중국이 내뿜는 각종 오염물질로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는데도 대통령과 정부는 한 마디도 못하고 있다.

6일 오전 이 글을 마무리하던 중 문 대통령은 다시 미세먼지 관련 지시를 하며 중국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협의해 긴급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공동 시행 협의 △인공강우 공동 실시 △미세먼지 공동예보시스템 △청와대 차량 2부제 등이었다. 또 지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을 다시 보는 듯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은 안하고 남 얘기하듯 지시만 하는듯 하다. 어제는 분노, 오늘은 절망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국가 안보 차원에서 문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말해야 한다. “중국이 내뿜는 오염물질이 미세먼지라는 공포의 무기가 돼 이웃인 우리 국민들을 죽이고 있다. 시진핑 주석을 만나 머리를 맞대고 싶다. 만나자”라고. 여기에 더해 문 대통령은 일본의 아베 총리에게도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아직은 일본이 미세먼지로 고생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의 오염물질이 더 많아지고, 가벼워지면 일본인들의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일본의 쓰레기 소각기술 등은 세계 최고 아니냐. 우리 같이 중국을 압박하고 설득하고 도와주자”

문재인 대통령이 우울한 잿빛 디스토피아(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정반대말)의 대통령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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