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우호인물대상]호국상 이소심 여사 "임시정부 수립 이후 광복까지 중국 지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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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선 기자
입력 2019-01-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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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국상 이종찬 전 국정원장 "태어나면서부터 중국에 신세졌다"

  • -곽영길 아주경제 회장 "독립투쟁은 유례가 없을 만큼 불굴의 민족의지 보여줘"

  • -정세균 전 국회의장 "국가를 우선시한 대단한 희생이고 헌신"

1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한중우호인물대상'에 참석한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이소심 여사가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컸다고 강조했다.

1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중우호인물대상 시상식에서 호국상을 수상한 독립운동가 이달 선생의 딸 이소심 여사는 “올해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 수상이 더 뜻깊다고 생각한다”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중국에서 수립된 지 27년 동안 독립운동가들이 노력한 뒤에야 대한민국이 성립됐는데, 임시정부가 27년 동안 중국에서 중국 인민과 정부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충칭에서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더 발전되고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 당시 중국 정부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며 “1941년도에는 광복군이 창설됐다”고 설명했다.

이 여사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한중우호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며 “한국과 중국의 우호가 천년만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한국이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 "태어나면서부터 중국에 신세졌다"

호국상을 수상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할아버지 우당 이회영 선생뿐 아니라 6형제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전부 중국에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시작하면서 중국에 신세를 져 고맙게 생각한다”며 “나 자신이 상하이에서 태어나 나면서부터 중국에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1986년부터 1998년까지 한중문화협회 회장을 했는데 협회는 1942년 충칭에서 한·중이 공동으로 문화 분야에서 항일 투쟁을 하자는 의미에서 만든 독립투쟁 협회로 조소앙, 최영덕 선생이 회장을 맡았고 지금은 아우인 이종걸 의원이 맡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전 원장은 “독립투쟁 과정에서 가장 고마운 나라가 어디냐고 하면 주저 없이 중국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한중우호인물대상 수상이 더욱더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의 장남 김정육씨(보국상)는 “1935년 3월 25일 남경에서 태어났는데 1933년부터 1937년까지만 평화로웠다”며 “1937년 일본 침략군이 남경을 짓밟아 12월 13일 함락되면서, 임시정부 관계자 가족들이 탈출해 임시수도인 충칭을 향해 장정길 떠났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느라 가정사는 어머니가 도맡았고 당시 큰딸이 다섯 살, 제가 세 살로 어머니의 고통은 컸다”며 “1939년 충칭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병석에 누웠다. 세상을 떠나면서 가정을 지키는 주부가 없으니 막내가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를 뒤따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독립운동을 멈출 수 없는 아버지는 자식 둘을 고아원에 맡겨 2년을 있었는데 중국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 충칭은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 있다”며 “2007년 8월 한중수교 15주년을 맞아 초청을 받아 인민대회당에서 성대한 기념식에 참석해 중국 인사들과 우의를 다졌는데 이후에도 한중우호 증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의 딸인 윤경자 여사(보국상)를 대신해 수상한 장남 정철승 변호사는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대신 수상하게 됐다”며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여서 훈장을 받았는데 어머니에게 상을 준다고 해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적절한 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독립운동가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명예로운 행동으로 이름을 후세에 오래 남기게 된 이면에는 가족들의 큰 희생이 있었다”며 “외할머니는 두 딸과 함께 외할아버지가 1912년 망명한 뒤 외가는 망하고 35년 망명 생활 동안 말 못 할 고생을 했다. 해방 이후 6·25 때까지 행복한 기간을 빼고는 외할아버지 납북 이후 외할머니와 어머니, 이모는 월북자에 대한 보복이 두려워 수십년을 숨어 살았고 할아버지는 쓸쓸히 그리워하다 혼자 돌아가셨다”고 털어놨다.

정 변호사는 “세 모녀의 고생이 어땠겠나. 그래도 운이 좋아 제가 변호사가 돼서 그럭저럭 중산층 정도의 생활 수준을 하고 있는데 가세 회복에 100년이 걸렸다. 자생적으로 국가가 보상해주고 그런 것은 없었다.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고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국가가 고마움을 생각하기까지 100년이 걸렸다. 제대로 된 나라의 기틀 잡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선현 대표는 “함께 상을 받는 네 분의 선생님은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태어나 격이 맞지 않는 것 같아 고사했었지만 회사(오토그룹)가 15년간 임시정부를 알리기 위해 후원한 데 대한 격려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며 “증조부님(김가진 선생)은 반일 사건으로 가장 투옥자가 많았던 대동단의 총재셨는데 80여분이 대동단 서훈을 받았는데 아직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920년 증조부가 순국한 지 100년이 돼가지만 송경영 능원에 쓸쓸히 묻혀 있어 가슴이 아프다”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달라질 것이라 믿고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가 100년이 되도록 나라를 위해서 순국하신 분들의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 "독립운동가들의 헌신 기려야"

[곽영길 아주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한중우호인물대상'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곽영길 아주경제신문 회장은 이날 “2019년은 우리 국민에게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해”라며 “100년 전, 암울한 식민지의 고통이 깊어가던 시절에 온 국민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 나와 우리 겨레가 홀로 서겠다고 일본을 비롯한 세계만방에 외치던 3.1운동이 있었고, 그 독립의 의기가 모이고 뭉쳐져 이윽고 우리 정부를 새롭게 구성하겠다는 비전을 세운 임시정부가 출범했던 바로 그 해”라고 강조했다.

곽 회장은 “조선의 독립투쟁은 유례가 없을 만큼 불굴의 민족의지와 맹렬한 애국투혼을 보여준, 우리 역사의 보물 같은 기억”이라며 “올해는, 식민지와 전쟁의 황무지 속에서 고도성장을 일구며 달려온 그 국가의 성취를 마침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대전환으로 만드는 해로 이런 뜻깊은 해에, 호국과 보국과 애국의 공훈을 기리고, 민족과 충의와 독립의 가치를 고양하는 이런 상을 응당 받을만하신 분들에게 드릴 수 있어 깊은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한중우호인물대상'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임시정부를 기점으로 100년 동안 오늘의 대한민국 만들었다면 앞으로 100년은 훨씬 더 강하고 의미 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100년 전 임정 수립이 그냥 된 것이 아니고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이 있었다. 가정이나 가족보다는 국가를 우선시한 것이 확인되고 있다. 대단한 희생이고 헌신이었다”고 강조했다.

황호택 심사위원장은 “한중우호인물대상 특별상을 받는 김선현 오토 그룹 대표의 증조부인 동농 김가진 선생은 독립협회 창설에 참여하고 1919년에는 의친왕 망명 기도사건에 가담했다가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다”며 “할머니 수당 정정화씨는 남편 김의한 선생과 함께 임시정부 요인들의 가족을 돌보며 상하이에서 서울, 예산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고 김 부회장의 아버지 김자동씨는 현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 위원장은 “김 대표는 증조부 호를 딴 동농재단을 설립해 역사 연구와 교육을 하면서 할머니 이름을 딴 정정화 재단을 설립해 미혼모 자녀의 장학사업을 하려는 포부를 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 위원장은 “중국에서 어려운 걸음을 하신 이소심 여사(호국상 수상)는 한중수교 전 철거 위기에 놓여 있던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충칭시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받아 보존하는 데 기여했고 이달 선생은 1938년 중국 한구에서 조선의용대에 입대해 1942년 4월 광복군 제1지대 비서로 활동하다가 세상을 떴다”고 소개했다.

그는 “호국상을 받은 이종찬 전 의원의 조부로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우당 이회영 선생은 헤이그 특사파견을 주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0년 6형제와 노비 등 일가족 모두를 데리고 만주로 망명해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며 “우당은 독립당 상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일경에 체포돼 여순감옥에서 순국했다”고 말했다.

황 위원장은 “보국상을 받은 김정육 선생의 부친인 김상덕 선생은 1919년 2·8 독립선언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고 다음해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 의정원의원, 임정 문화부장 등을 지냈다”며 “함께 보국상을 수상한 윤경자 여사의 부친 윤기섭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내고 1935년에는 난징에서 김규식 등과 한국혁명당을 조직해 독립투쟁전선의 통합에 노력했으나 6·25 때 납북됐고 1959년 북한에서 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을 당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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