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가부도의 날' 유아인 "나를, 내 멋대로 쓰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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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8-12-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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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윤정학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사진=UAA 제공]

“유아인은 여러분과 제가 만드는 거예요. 제 의지와 성분이 녹아있지만, 우리가 함께 만든 사회적 캐릭터죠. 이 캐릭터를 어떻게 재밌게, 의미 있게 가지고 갈 수 있을까요? 사탕 같은 좋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영향력을 가져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해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죠. 나를, 내 멋대로 쓰지 말아야겠구나.”

배우 유아인(32)은 나름의 책임을 지고 있다. 청춘으로서 기성세대와 맞서왔던 그가 조금씩 그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청춘들에게 ‘이해’와 ‘소통’의 방법들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청춘의 아이콘이라 불리며 기득권에 반항하고 청춘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그는 기성세대와 요즘 세대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자청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8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은 유아인의 새로운 방점이기도 하다.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은 아니지만 IMF 당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를 접근할 수 있게끔 돕고 싶었다”는 또렷한 목적의식으로 참여 뜻한 바를 이루었다. 이는 세대와 세대의 연결고리를 자청하는 유아인의 뜻과도 맞물린다. “나를, 내 멋대로 쓰지 않기 위해” 유아인은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유아인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윤정학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사진=UAA 제공]


왜 ‘국가부도의 날’이었나?
- 작품에 끌린 이유를 말하자면 IMF라는 주 소재에 큰 흥미가 있었다. 정치에 관한 이야기, 사회에 관한 이야기 등을 많이 볼 수 있던 시점에 IMF 경제 위기를 직접적으로 말한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참여하고 싶었고 의미가 있을 거라고 보았다. 제 역할이 주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건 아니지만 매력적인 윤정학이라는 인물을 통해 IMF의 상황을 요즘 세대에 전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당시 상황에 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세대가 욕망을 투사하며 접근할 수 있게 돕고자 한 거다.

윤정학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사표를 던진 금융맨이다. 국가부도의 위기를 직감하고 배팅하는 인물인데, 레퍼런스가 따로 있었나?
- IMF 당시 저는 12살이었다. 그런데도 윤정학이라는 인물에 관해 공감이 갔다. 먼 이야기 같지만 가까운 이야기지 않나. 주변을 둘러보니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돈, 투자, 재테크에 관심이 많더라. 그런 현상은 어떤 시대를 반증한다는 생각이다.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이 주도하고 끌고 온 세상에 아이들에게 욕망이 전이되며 빈부격차가 심해지지 않았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비중은 작을 수 있으나 의미 있는 캐릭터가 될 거라고.

윤정학은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IMF에 관해 복합적인 심리를 가지는데
- 이 인물이 비중은 작을 수 있으나 가장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악이 아니라 욕망과 갈등을 담은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영화 ‘베테랑’ 속 조태오는 해석의 여지가 없는 나쁜 놈이었으나 ‘국가부도의 날’ 윤정학은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인물인 거다. 사실 정학이는 드라마 같은 곳에서 그려내고 싶었던 인물이다. 먼 세상 이야기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 볼 법한 인물로.

IMF 당시 12살이라고 했다. 당시 시대상에 대한 정보가 따로 필요했을 텐데
- 유튜브로 공부했다. 젊은 사람들이 다른 시대를 접할 수 있는 게 유튜브 같은 영상 매체가 가장 쉽지 않나. 그때 사람들의 말투, 패션, 당시의 공기, 색채, 거리의 풍경 등을 생동감 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90년대 다양한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폭주족 같은 사회문제부터 신세대, 오렌지족 등의 모습이 담겨있더라.

영상을 통해 윤정학 캐릭터에 도움이 된 건 무엇이었나?
- 비주얼적, 시각적인 면모들이다. 정학은 젊은 감각을 가진 인물로 의상도 과감하게 표현했다. 영화는 의상 팀이 의상을 맡는데 이번에는 개인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작업했다. 의상의 재미, 시각적 재미도 영화적 재미니까. 덕분에 (류)덕환 씨와 함께 등장할 때는 보는 재미까지 더해지니까.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윤정학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사진=UAA제공]


배우로서 윤정학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 셀프 디스하자면 윤정학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그간 제가 해왔던 연기들 중 도드라지는 에너지와 자극적인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도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그러면서도 풍성한 인물로 창조해낼 수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제게 주어진 미션은 윤정학을 매력적인 인물로 만드는 일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보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유아인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했다. 결국에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서 새로움을 느끼는 것, 새로운 지점을 통해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제 나름의 성실한 걸음, 진행을 보여주고자 했다.

연기에 관한 많은 고민이 있었나보다
- 그렇다. 저 말고도 영화에 출연한 많은 선배님도 그러셨을 거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선배들의 연기가 격이 있다, 격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저 깊이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연기해온 선배들을 통해 앞길을 바라보게 되었다. 흔히 남자 배우는 30대부터 시작이라는데 저는 10대에 데뷔해 30대를 맞을 때까지 굉장히 많이 소비되지 않았나. 별의별 짓을 다하며 장르, 캐릭터를 연기해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유아인이 식상해지지 않을까’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남들 다 하는 고민이겠지만 특이하게도 저는 (고민이) 조금 일찍 온 셈이다. 깊은 고민을 하던 도중 선배님들을 보며 ‘아, 살아볼 만 하겠다’ ‘이 작품에 던져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생각이 정리되어 간다. 본보기가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롤모델이 누구에요?’라는 질문이 너무 싫었는데 오히려 이제는 답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다면 롤모델은 누구인가?
- 김혜수 선배님이다. 하하하. 제가 남자배우니까 남자 선배가 롤모델일 필요는 없다. 모든 선배님을 통틀어 김혜수 선배님은 그만의 공감대가 있다. 선배님도 아역으로 데뷔해 다양한 모습을 통해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데 그 안에서도 본인만의 고유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나. 충분히 롤모델로 삼을 만하다.

연기적 생각의 변화가 ‘버닝’ ‘국가부도의 날’의 선택으로 이어졌나?
- 그런 것 같다. 성과나 성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인형처럼 굴고 싶지 않아서 언제나 ‘이 바닥을 떠나도 상관없어’, ‘내 몸을 던지되 언제든 떠나도 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연기가 좋아지고 순간순간 성실함보다 진정성을 가져야겠다고 생각이 미쳤다. 그게 ‘버닝’과 ‘국가부도의 날’로 이어진 거 같다. 어쩌면 저는 연기의 이응도 몰랐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아, 내가 또 이렇게 배워가는 건가?’ 싶다. 애들이 보면 재미없는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하하.

말한 대로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인가?
- 내가 대립하던 상대편에 설 수도 있겠구나. 정신 차려야지 싶다. 어찌 보면 결국 다음 세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해서 그런 것 같다. 그들에게 어떤 자세로 다가가야 하지? 그런 고민을 하다가 그들에게 나의 어린 시절을 투영, 호흡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윗세대들과도 마음이 닿는 것이 필요하다. 일, 관계, 삶, 돈, 경제활동 등 이런 걸 대하는 자세가 다른 변화를 몰고 왔다.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혼자만의 자위가 아니라 여러분도 느낄 만한 지점을 만든다면 재밌지 않겠나.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윤정학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사진=UAA 제공]


청춘의 아이콘이었는데
- 그간 동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을 연기했다면 ‘사도’ ‘베테랑’ 이후에는 또 다른 책임감이 생긴 것 같다. 특정 세대가 아니라 전 세대를 공감하게 하는 인물, 조금 더 확장된 이야기와 해석으로 관객의 심상에 전달될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기적인 목표가 아니라 더욱 더 확장적인 상태로 배우 유아인의 캐릭터를 가져가는 것 말이다. 유아인에 관해 객관화되어가기도 한다. 유아인은 여러분과 제가 함께 만드는 거다. 제 의지와 성분이 녹아있지만, 우리가 함께 만들어왔고 우리가 만든 캐릭터를 어떻게 재밌고, 의미 있게 가져가는 게 덜 헛헛할까? 사탕 같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의 지점에 어느 순간 가 있더라. 내 일을 하고 싶고, 나를 찾고 싶었는데 나라는 게 그렇게 만들어졌구나. 그러니 내 멋대로 쓰지 말아야지. 적어도 이 일을 하는 순간에는.

신선하면서도 솔직한 접근법이다
- 배우라는 캐릭터는 더 신비로운 베일에 싸인 인물이 아니니까. 이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세상이 왔고 ‘젊은 세대 배우가 어떻게 실험적인 확장을 하며 배우라는 역할을 가져갈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 제 행보에 드러날 거라고 본다. 제가 추구하는 건 여러분과 함께 좋은 순간을 만드는 것, 재밌는 순간에 도달하는 거다. 거기에 몸을 던지는 게 나의 일이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가 있나?
- 누군가는 내게 철들지 말라고 하는데. 하하. 어느 순간 세대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무조건 10대 20대의 편이었는데. 내가 겪은 혼란, 상처를 인물에 대입하고 싶었다. 힘들게 살아야 하는 세대를 대변하고 싶었던 거다. 결국 더 의미 있는 것이 무언지 찾아가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변화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모님과도 화해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 ‘버닝’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 세대에 관한 미움을 끌고 오려고 했다. 그 에너지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모든 걸 내려놓게 되었다. 살아가다 보니 아버지가 이해되기도 하더라. ‘국가부도의 날’ 언론시사회 이후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냥 제 삶이 버겁게 느껴지고 많은 사람과 있다가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게 헛헛하게 느껴지더라.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가 엉엉 울었다.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고 엄마에게 나를 내려놓게 되었다. 거리감이 해소됐지. 그런 과정이 기성세대, 부모세대, 윗세대를 받아들이는 느낌으로 전달된 것 같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 TV 쇼프로그램 기획을 함께 하고 있다. 영화는 급한 맘 먹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청춘에 관한 공식이 너무 뻔하고 똑같지 않나. 이제 그런 짓 안 하면서 살려고. 온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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