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모순에 빠진 정부의 '담배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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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생활경제부 부장
입력 2018-12-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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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생활경제부장]

A와 B가 한 주제를 놓고 첨예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B의 논리를 꺾기 위해 A는 관련분야 전문가인 C를 데려온다. 자신의 주장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작 C는 B의 논리에 가까운 주장을 펼친다. A로서는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이 웃지 못할 사례는 궐련형 전자담배(이하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놓고 정부와 기업 간 대치국면에서 벌어진 ‘실제상황’이다.

지난해 6월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를 시작으로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 ‘글로’, KT&G ‘릴’ 등 관련제품이 속속 출시되면서 전자담배 시장은 전성기를 맞았다. 기획재정부 자료를 봐도 올 상반기 전자담배의 시장점유율은 전체 담배 중 9.3%로, 10%대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전자담배 확산 과정에서 필립모리스를 필두로 한 기업과 식품의약품안전처·보건복지부 등 정부 간에 유해성을 놓고 소송전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선제공격한 쪽은 식약처다.

지난 6월 식약처는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 등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자담배 3종을 대상으로 유해성분 11종을 분석한 후 “일반 담배와 다름없는 양의 니코틴과 타르,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이 5개나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타르는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더 높게 나왔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근거로 전자담배가 일반담배와 다른 유해물질을 포함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전자담배 업계에서 총대를 멘 필립모리스는 “식약처가 타르 측정에 있어 가열에 따른 수분 증발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실제치보다 더 높게 나왔다”며 즉각 반발했다. 이어 10월에는 식약처를 상대로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결과의 근거와 관련해 식약처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보도자료 등 공개된 정보 외에는 제공하지 않았다”면서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식약처도 가만있지 않았다. 법무법인을 선임하고 필립모리스의 정보공개 소송에 맞불을 놨다. 양측 간 팽팽한 대결구도가 과열양상을 빚자 이번엔 보건복지부가 식약처의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지난달 23일 담배규제 정책포럼을 개최하며 전자담배 업체를 간접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알리며 식약처의 논리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이 포럼이 식약처엔 ‘독’이 되어 돌아왔다.

포럼 당일 강연자로 나선 일본 국립보건의료과학원 나오키 구누키타 박사의 의견 때문이다.
나오키 박사는 "담배 배출물에 대한 분석결과, 일반 담배와 전자담배의 타르 성분은 매우 다르다"면서 “특히 전자담배의 배출물 중 한국 식약처가 타르로 통칭한 물질의 대부분이 의약품으로 쓰이는 등 인체에 무해한 습윤제 글리세롤이었다"고 말했다.

타르는 담배연기를 구성하는 물질 중 니코틴과 수분을 제외한 나머지 물질을 말하는데, 나오키 박사의 논리대로라면 앞서 식약처가 “전자담배에서 일반 담배와 다름없는 양의 타르가 검출됐다”고 주장한 것이 뒤집히게 된다.

나오키 박사는 식약처가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내세운 스위스 베른대학교 연구팀의 연구에 대해서도 오류와 한계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전자담배와 일반 담배의 구조, 성분이 다른 만큼 ‘2단계’에 걸친 새로운 배출물 수집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포럼을 주최하고도 오히려 수습해야 할 처지에 몰린 복지부는 “2단계 방법으로 배출물을 수집하는 분석방법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시험방법이 아닌, 해당 연구에서 자체적으로 고안한 방식”이라며 나오키 박사의 논리를 반박했다.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치러진 포럼에서 초청된 발제자가 식약처의 연구결과를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복지부가 또 이에 대해 해명한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사실 식약처가 전자담배 업계를 상대로 ‘유해성’을 입증하기 위해 취한 그간의 연구와 발표 내용에 대해 일각에선 ‘포럼 해프닝’을 차치하고라도, 애초부터 무리수가 뒤따랐다는 평이 적지 않았다.

전자담배의 유해성과 관련해 해외 곳곳에서의 연구결과가 식약처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타르는 규제의 올바른 기준이 아니어서 측정할 필요가 없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고, 독일연방위해평가원 역시 “전자담배의 타르 수치를 형식적으로 계산할 수 있지만 일반 담배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며 유해성 판단의 기준을 타르에 두지 말 것을 권고했다.

미 FDA 또한 “일반 담배의 연기와 비교했을 때 증기에서 선택된 유해물질의 수치가 낮아졌다”고 발표했고, 일본 후생노동성 보건의료과학원도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와 비교해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이 5분의1, 일산화탄소는 100분의1 정도만 발생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외에 러시아 담배제품과학연구소(전자담배 증기에 포함된 독성물질은 일반 담배제품보다 90% 이상 적음)와 중국 국립담배품질감독시험센터(전자담배는 일반 담배 대비 유해물질 발생이 적어도 80% 이상 감소)의 의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인 전자담배 권장 정책과 연결해서도 식약처의 정책은 흡연자와 담배업계로부터 명분을 잃고 있다. 최근 영국에 이어 뉴질랜드는 세계 두 번째로 전자담배를 금연 보조제로 권장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자담배 등 연기 없는 제품이 일반 담배보다 유해성이 현저히 적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전자담배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당분간 업계와 정부 간 유해성 논란은 계속될 것이 뻔하다. 다만 식약처나 복지부가 ‘전자담배는 유해하다’는 틀을 만들어놓고 정책을 펴기보다는, 우리보다 앞선 해외 연구사례나 정책시행 내용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현실에 맞는 ‘한국형 담배정책’을 펼쳐 주길 바란다. 그래야 일을 벌이고도 스스로 수습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다시는 연출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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