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범·조갑경 부부를 향한 전 며느리의 폭로는 선명한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법적 분쟁의 실체를 알리고, 양육비와 책임 이행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 적어도 시작은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분노의 방향은 넓어지고, 감정의 반복 재생이 이어지고 있다. 안타깝다. 어렵게 꺼낸 목소리가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목표를 흐리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가정법원에서는 홍서범·조갑경 부부의 아들에게 위자료 3000만원과 자녀 양육비 월 80만원 지급 판단을 내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홍서범·조갑경 부부도 지난달 28일 "1심 판결에 따른 아들의 의무가 조속히 이행되도록 지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전 며느리의 저격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1일 조갑경의 MBC '라디오스타' 출연을 계기로 그는 다시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여기에서 묻게 된다. 이미 판결과 사과문, 그리고 양육비 이행 약속이 나왔는데도 왜 분노를 멈추지 못할까.
"이제 와서 양육비만 주면 끝나냐."
"진작에 말 한마디라도 하지 그랬나."
그가 원한 게 돈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 며느리가 반복해 요구한 건 본인과 아이, 가족에게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고통이 충분히 인정되지 않았다는 감각, 무너진 삶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이런 분노는 예민하거나 성격이 이상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분노를 좌절, 실제 혹은 상상된 상처, 그리고 지각된 불공정에서 비롯되는 감정으로 설명한다. 또한 관계 배신 연구에서는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진 배신이 피해자에게 충격적이고 불안정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 못지않게 "도움을 요청할 때 방관했다", "아무 일 없는 듯 방송에 나온다"는 전 며느리의 말은 이를 보여준다. 남편의 잘못만이 아니라, 그 일을 둘러싼 주변의 태도까지 함께 상처로 각인된 셈이다.
분노가 정의감의 언어를 입고 시작됐더라도, 반복되는 순간부터는 다른 얼굴을 띠기 쉽다. 분노 반추(anger rumination)에 관한 연구들은 부정적 사건을 계속 되씹을수록 분노와 공격성이 유지·강화될 수 있다고 본다. 한 번의 폭로가 문제 제기라면, 같은 감정의 반복적 발화는 점점 자신을 붙잡는 루프가 되기 쉽다. 그래서 처음에는 '책임을 묻는 행위'였던 것이 나중에는 '상대가 망가지는 장면을 계속 확인하고 싶은 심리'처럼 보일 위험도 생긴다.
SNS라는 공간의 특성도 이를 부추긴다. 공개 발언은 순간적인 해방감을 준다. 지지 댓글과 공감은 억울함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더 큰 반응, 더 강한 표현을 유도하며, 한 사람을 계속 사건 속에 붙들어두는 행위이기도 하다. 상처를 말하던 공간이 어느 순간 상처를 계속 공연하는 무대로 변하는 것이다. 전 며느리의 글들이 점점 '문제 해결'보다 '감정 확인'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이 사안은 책임의 초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도, 양육비 지급 의무를 직접 지는 당사자도 전 남편이다. 홍서범·조갑경 부부를 향한 불편함은 있을 수 있지만, 법적 책임의 본체와 도덕적 분노의 대상이 한데 섞이기 시작하면 메시지는 약해진다. 전 며느리의 분노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분노가 향하는 방향이 넓어질수록, 정작 책임을 져야 할 핵심 당사자의 문제는 흐려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 시점, 피해자인 전 며느리의 입장에서 따져봐야 할 건 따로 있다. 내가 원하는 게 양육비의 안정적 이행인지, 직접적 사과인지, 아이를 위한 최소한의 정리인지, 시부모를 향한 도덕적 책임 추궁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공개 저격의 총량이 많아질수록 여론은 가해의 책임보다 피해자의 감정 표현 방식을 평가하기 시작하고, 아이가 있는 관계에선 그 평가가 훗날 또 다른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결국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화가 나는가"를 묻는 데서 멈추면 안 된다. "내 분노를 회복으로 연결하려면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를 물어야 한다. 사과를 받아내고 책임을 묻는 것과, 분노를 계속 전시하는 건 같은 행동이 아니다. 전자는 회복으로 갈 수 있지만, 후자는 자신을 사건에 계속 묶어 둔다. 상처를 말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상처를 반복 재생하는 일은,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오래 소모시킨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