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는 제재 대상과 연계된 암호화폐 주소들이 지난해 받은 자금이 1000억 달러(약 153조원)를 돌파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8배 늘어난 규모다.
가상자산은 거래 당사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고 서방 제재의 핵심 통로인 기존 은행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재 대상국들의 주요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체이널리시스의 케이틀린 마틴 선임 정보분석가는 "암호화폐는 제재 회피의 양상을 크게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도 가상자산 모금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하마스는 텔레그램 등에 암호화폐 기부 안내문을 올렸고,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정보원을 통해 이들이 기부금을 받는 구체적인 방식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금융망에서 배제되자 가상자산을 활용한 우회 결제를 고도화하고 있다. 제재 대상인 러시아 국영은행 프롬스뱌즈방크와 몰도바 출신 재벌 일란 쇼르 측은 지난해 루블화 연동 토큰인 'A7A5'를 발행해 해외 결제에 활용했다.
A7A5는 러시아 내 루블화 결제를 스테이블코인 등 다른 가상자산으로 전환해 해외 결제에 활용하는 구조다. 지난해 거래량은 900억 달러를 넘긴 것으로 추산되며, 일부 자금은 중국 소재 드론 판매업체 결제에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러시아는 제재 대상 원유를 운송하는 선원 급여 지급에도 가상자산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역시 해킹 등 사이버 범죄로 탈취한 암호화폐를 연료와 군사 장비 구매에 활용해 온 것으로 서방 당국은 보고 있다.
미국은 최근 수년간 제재 대상국과 테러단체가 이용한 암호화폐 지갑을 압류하고 관련 거래소를 제재하는 등 단속을 강화해 왔다. 지난달에는 이란 최대 거래소 노비텍스를 포함한 이란 거래소 4곳을 제재했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미국이 이란으로부터 10억 달러 규모의 가상자산을 압류했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생태계가 빠르게 진화하고 국가별 규제 수준도 달라 제재 당국이 이를 완전히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란 암호화폐 거래소를 추적하는 TRM랩스의 아리 레드보드 정책책임자는 "최근 미국의 제재를 받은 이란 가상자산 플랫폼들은 가장 눈에 띄는 거점에 불과하다"며 "이들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그 아래 구조까지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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