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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잘가, 미안해, 사랑해”…박지원의 순애보

서민지 기자입력 : 2018-10-16 18:42수정 : 2018-10-16 18:42
온라인상 잔잔한 감동 물결 빈소에 정치권 조문 줄이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15일 오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인 이선자 여사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보 잘 가. 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76)의 아내를 향한 순애보가 온라인 상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박 의원은 15일 오후 지난해 뇌종양 수술 후 줄곧 투병을 이어온 아내 고(故) 이선자 여사를 떠나보냈다. 박 의원이 이 여사와 작별한 뒤 절절한 심정을 토로한 페이스북 사부곡(思婦曲)은 이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박 의원은 아내의 죽음 앞에 “(12일) 오늘 과천 법무부에서 밤늦게까지 국감하고 마지막 KTX나 고속버스로 금귀월래(金歸月來·금요일에 지역구에 내려갔다가 월요일에 상경한다는 뜻)할게라고 하니, ‘네’ 하고 제 손을 꼭 잡아주며 가벼운 미소, 아내와 나눈 대화가 마지막이 됐다”고 애끓는 마음을 표했다.

또 “7년간 제가 쫓아다니다 처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저를 선택했다. 사실상 57년을 살았다”며 애틋했던 부부 간의 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아내는 저를 무척 사랑했다. 두 딸, 두사위, 손자, 곧 태어날 손주와 함께 아내를 그리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박 의원은 고인이 위중한 와중에서도 이발관으로 향했다고 한다. 짧은 머리 스타일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서였다. 그는 “이발 후에는 (아내가) 품평을 한다”며 “아마 재수학원, 대학, 군대에 있을 때 헤어스타일의 그때가 제가 자신을 제일 사랑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지난 1971년 이 여사와 결혼했다. 박 의원은 전남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에서 재수를 하던 시절 이 여사와 만났으며, 7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이 여사는 미스 전남 출신으로, 박 의원이 김대중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 등 실세 정치인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조용한 내조’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했으며 1992년 국회에 입성했다. 1998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 1999년 문화관광부 장관, 2002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 사건 의혹이 제기되며 2003년 구속됐을 때도, 2006년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을 때도, 2007년 특별사면조치로 형집행이 면제됐을 때도 박 의원은 늘 이 여사와 함께였다.

국회의원 신분으로 사시사철 ‘금귀월래’를 할 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했지만, 지난 1년여간 지방 일정이 없는 날엔 아내가 입원한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들러 아내의 병간호를 해왔다.

DJ 정부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사였던 한 전직 언론사 간부는 박 의원과 박 의원 아내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이 여사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박 의원의 사모는 정말 현모양처였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가 옥고를 치를 때 사모님과 함께 면회를 가곤 했는데 사치를 모르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처음 쓰러질 때도 시내버스에서 내리다 그러셨다고 한다. 누가 사모님이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생각하겠느냐”면서 “조문을 간다. 슬프다”라고 애통함을 표했다.

한편, 16일 고인의 빈소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정치인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간병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인을 대단히 사랑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위로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빈소를 찾아 박 의원에게 "얼마나 상심이 많으시냐"며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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