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오일허브 주도권 잡아라] 여수‧울산 등 동북아 해상환적시장 최적 요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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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군득(여수) 기자
입력 2018-06-1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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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자리‧지역경제 선순환…동북아 물류HUB 도약 기회

  • 미국‧유럽‧싱가포르 세계 3대 오일허브 구축

  • 정부 이달 중 용역 착수…사업 확대에 주목

지난 4월 여수항 해상 정박지 D2에서 작업 중인 해상유류환적 작업 모습. 러시아 유조선(왼쪽)이 다른 국가로 보내기 위한 정유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배군득 기자]


세계 해운물류 시장이 수년간의 구조조정을 끝내고,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도 ‘해운정책 5개년 계획’을 수립, 해운산업 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내놨다.

특히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 항만을 활용한 ‘동북아 물류허브’를 구축한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해양산업 전반의 사업 육성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구상과 달리, 해운물류 시장의 빡빡한 규제는 우리나라가 물류허브로 도약하는데 발목을 붙잡고 있다.

대표적인 규제 사례가 해상유류환적 사업이다.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여수‧울산 등에서 시작한 해상유류환적 사업은 유류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로, 강한 규제를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러시아, 중국 등의 유류 수송이 활발해진 점을 볼 때 우리나라 해상환적 시장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동아시아 해상환적 최적지로 떠오른 여수광양항

해상환적작업(STS)는 부두나 해상에서 선박 2척이 접안, 화물을 환적하는 시스템이다. 주로 △유류(정유) △가스 △케미칼 등 액체화물의 환적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STS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가 여수 등 일부 지역만 허가를 내준 탓에, 수요가 급증하는데도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여수광양항은 환적화물 처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원유환적 시장의 중심축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사할린·중국·싱가폴·호주·미국을 연결하는 해상환적 교통 허브항으로 육성할 수 있는 최적의 지리적‧지정학적 요건과 해상을 갖췄다.

세계 에너지 자원 확보의 대안으로 부상 중인 러시아 사할린은 우리나라 STS의 최대 고객주로 꼽힌다. 사할린은 원유수송 여건이 연중 주변해역의 결빙 상태와 저장시설 한계 등 문제점이 많다.

이에 따라 지리적으로 가장 유리한 여수해역을 최적의 대안지로 보고 있다. 러시아 원유 업체들은 아시아권에서 STS가 가장 많은 싱가포르 권역까지 평균 12일이 걸리는 수송기간을 여수에서 3.5일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지난 4월 여수해역에서 STS 작업을 한 러시아 유조선 관계자는 “중국이나 일본해역은 수심·조류·조석 등 부적합 해상여건이 잦아, STS 작업이 쉽지 않다”며 “반면 여수해역은 기상까지 STS에 최적화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싱가포르 권역이 아시아에서 가장 큰 STS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원유의 주요 수입처가 한중일이기 때문에 원거리로 인한 지정학적으로 한계를 보이는 상황”이라며 “여수광양항이 STS를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면 동북아 오일허브로 급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신중한 태도에 주도권 빼앗길라 노심초사

하지만 정부는 STS에 신중한 태도다. 해상유류사고가 얼마나 큰 피해를 양산하는지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류환적 작업 역시 국내 수요보다 해외 오일메이저사들의 요구가 더 많다는 점도 규제완화를 주저하는 이유다. 굳이 우리 해역을 내주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런 우려에 대해 해상환적시장이 해운물류 시장의 새로운 블루칩으로 성장 하고 있는데,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성현 목포해양대 교수(현 목포대 총장)는 “선박은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다. 기존 액체화물 운송방식으로는 부두시설 수용능력 저하 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해상환적작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부족한 항만 부두시설 수용능력을 보완하면서 시간절약, 비용절감 등으로 해운물류 시장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세계 STS 물동량 처리는 지난 2001년 159건을 기록한 이후, 2006년부터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 STS 물동량 처리건수는 2876건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후로도 STS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14년까지 평균 해상환적 물동량이 2729.8건이라는 통계치가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여수광양항은 2007년부터 STS 작업구간일 일부 제한에 들어간 상태에도, 처리 실적이 상승곡선을 그리는 지역이다. 여수광양항 해역에서 STS를 수행한 선박은 2010년 63척에서 2011년 285척으로 1년 새 4.5배가량 증가했다.

또 2013년의 경우 STS 선박은 87척이었지만, 2014년 232척으로 2.7배가량 늘었다. 이는 2014년 기준으로 볼 때 세계 STS를 수행한 선박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특히 그간 STS 작업지로 꼽히던 일본항만의 지리적 여건이 악화되자, 대안항만으로 여수광양항을 선호하는 오일메이저사들이 증가하는 분위기다.

2014년 해상환적 화물 처리량이 6752t(2013년 STS 처리량 4773t)을 기록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박 교수는 “세계 수많은 항만에서 해상환적이 이뤄짐을 감안할 때 여수광양항만이 세계 물동량의 10%를 차지한다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라며 “이는 여수광양항만이 해상환적 항만의 중심지임을 의미하고 있다”고 밝혔다.

◆뒤늦세 용역 나선 정부…업계 불만 잠재울까

STS는 환적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 여건상 집중 육성할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환적은 화물을 동일한 세관관할구역안에서 물품을 옮겨 싣는 작업을 통칭한다. 예를 들어 부산항에 물건을 싣고 들어온 선박이 출항하는 다른 선박에 가져온 화물을 옮기는 것이다.

주로 미주·유럽 등에서 온 선박이 유류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우리나라로 입항해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화물을 환적하고 있다. 환적화물이 발생하면 하역 수입과 야간 및 휴일 할증, 냉동‧냉장보관, 위험물 할증 등 직접효과가 발생한다.

또 △선박입항료 △접안료 △예‧도선료 △급유 △선용품비 △선박수리비 △선사 대리점료 등 간접효과도 거둘 수 있다. 우리나라가 환적시장을 키우려는 이유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런 환적시장으로 인해 항만이 발전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 최첨단 자동화 항만시설을 앞세워 동남아시아 환적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중국은 해운물류의 80% 정도가 자국 물류여서 환적시장에 관심이 없었는데, 해운업 확대를 위한 전략으로 환적시장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국내 해운 전문가는 “중국이 해외 선사에게 환적시 발생하는 비용을 무료로 해주겠다며 유치에 나서고 있다”며 “우리 정부와 항만에서 이에 대응하는 경쟁력과 대응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에도,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 2008년에는 여수광양항의 STS 작업지인 D1 사용에 제한을 뒀다. 공교롭게도 2007년 12월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건 직후다.

당시 허베이 사고는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선과 충돌하며, 1만2000㎘로 추정되는 기름이 유출됐다. 이로 인해 전남과 제주도까지 유류가 흘러들어, 생태계와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2014년 1월에 전남 여수항 인근에서 발생한 우이산호 충돌 사고 역시 유류 환적에 주저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당시 GS칼텍스가 수입하는 원유 32만3157㎘를 적재한 싱가포르 선적의 우이산호가 송유관과 충돌한 사건이다. 실제 유출량이 800~900㎘ 정도의 큰 유류사고였다.

반면 업계에서는 허베이와 우이산호 충돌 사고는 STS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지금은 모든 유조선이 이중선체(DOUBLE HULL)이기 때문에 허베이와 상황이 전혀 다르고, 이 때문에 우이산 사고 시 부두에서만 기름이 유출됐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약 30년간 STS 작업을 하고 있지만 사고는 명백히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허베이와 우이산호는 작업 중에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STS 작업은 기상요건 등 다양한 해상요건이 맞아야 가능하다. 비상대기 예선‧방제선, 오일펜스 등 안전장치도 육상 작업과 비교해 더 안전할 수 있다”며 “현재 여수 앞바다의 D1 지역이 묶여 있어 해상환적 작업이 포화 상태다. D1 지역은 허베이 사고 전에 작업 했던 곳이다. 없던 곳을 새로 만들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STS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자,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조달청에 긴급용역을 신청해 STS 타당성을 검토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현재 두 개 업체가 올라와 있으며, 조만간 최종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업계 반발은 여전하다. 이미 3년 전에 관련 용역이 나왔는데, 이를 무시하고 새로 용역을 하겠다는 것은 시간 끌기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15년 목포해양대 산학협력단은 여수‧광양권해양협회 의뢰로 ‘여수광양 해상환적 허브항 구축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우리나라 해상환적 여건, 세계 해상환적 현황, 대안 등이 담겼다.

목포해양대는 보고서에서 국내외 타 항만과 비교해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규제를 개선,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해상환적 화물을 여수광양항으로 유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대형선박이 주로 운송하는 중동산 원유 유치를 위해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해상환적이 가능한 D1 정박지의 해상환적을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D1 정박지는 여수광양항뿐 아니라, 다른 국가 항만의 부득이한 사고로 인해 터미널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해상환적 대체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장기적으로 세계 최고의 해상환적 허브 항만기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해수부는 이 보고서에 대한 존재를 뒤늦게 파악했다. 그럼에도 민간협회에서 의뢰한 용역보고서는 공신력이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여전히 ‘위험하다’는 이유도 고수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여수광양항 해상환적에 대한 타당성 보고서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민간협회에서 나온 자료를 신뢰하기가 어렵다”며 “새 용역을 정부가 의뢰했으니 그것을 토대로 타당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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