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회장 별세] 그는 누구인가? 끈기·도전의 23년, '초우량 LG'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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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기자
입력 2018-05-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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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월 22일 구본무 LG 회장이 이취임식에서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LG전자 제공]


“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하겠습니다.”

20일 별세한 고(故) 구본무 회장이 1995년 LG 회장으로 취임하며 던진 일성이다. 구 회장은 23년간 LG그룹을 이끌면서 이같은 목표를 뚝심있게 지켜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 과장부터 회장까지 'LG웨이' 23년
구 회장은 1945년 구자경 LG 회장(2세)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구 회장은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각각 경영학을 전공한 뒤 귀국, 1975년 ㈜럭키에 '과장'으로 입사해 기업 활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부장·이사·상무·부사장 등의 직위를 차례로 거치면서 럭키와 금성사의 기획조정실 등 그룹 내 주요 회사의 영업·심사·수출·기획업무 등을 두루 섭렵하며 다양한 실무경력을 쌓았다.

특히 1985년 이후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전무와 부사장의 직책을 맡아 그룹경영 전반의 흐름을 익히는 기회를 가졌고,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수업을 본격화했다.

구 회장은 럭키금성을 LG로 탈바꿈시키며 새 시대를 열었다. 당시 주변에서는 국민들에게 익숙한 CI(corporate identity)를 바꾸는 것에 대한 반대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구 회장은 강력하게 CI 변경 작업을 추진했다. 후일 LG가 국내 시장에 국한된 기업이 아닌, 글로벌 무대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구 회장의 취임 당시만 해도 매출 30조원대(1994년 말)에 불과했던 LG는 지난해 그 규모를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각각 불리는 등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국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약 10만명에서 약 21만명으로 늘어났다. 이중 약 8만명이 200여개의 해외 현지 법인과 70여개의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 '3대 핵심 사업군' 구축··· 미래먹거리 발굴에도 앞장
구 회장은 평소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 선제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미래 성장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쳐왔다.
실제 구 회장은 가전, 기초소재 등 '전자·화학·통신서비스'라는 3대 핵심 사업군을 세계 최고로 키운다는 목표로 선제적인 투자와 역량을 집중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으로 이끌었다.

현재 LG의 가전사업은 명실상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으며, 석유화학의 기초소재 사업도 고부가 제품 개발을 통해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사업으로 안착했다.

2차전지 사업은 구 회장이 뚝심 있게 끌고 온 대표적인 사례다. 구 회장은 90년대 초반 국내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던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들어 20년 넘게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지속했다. 2005년에는 2차 전지 사업이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지만 구 회장은 '포기하지 말라'며 오히려 임직원들을 다독였다.

그 결과, LG화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를 개발한 데 이어 중대형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LG화학은 2020년까지 전기차배터리 등 전지 부문에서만 매출 5조원을 추가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구 회장은 1996년 미래 정보화시대의 통신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개인이동통신사업(PCS) 진출을 선언했다. LG는 축적된 통신 기술과 장비개발 경험, 우수한 경영능력 등을 인정받아 그해 사업권 획득에 성공하고 LG텔레콤을 출범시켰다.

이어 2000년 유선통신사업체인 데이콤을 인수하며 통신사업을 강화했고, 2010년에는 LG텔레콤·LG데이콤·LG파워콤 등 통신 3개사의 합병을 통해 유무선 통합 LG유플러스를 출범시키며 통신사업을 LG의 주력사업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상용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998년 매출 약 1조원을 기록한 LG텔레콤은 통신 3사 합병 등을 거치며 종합통신사로 위상을 갖추고 2017년 매출 12조원대로 성장했다.

핵심 3대 사업 외에도 구 회장의 미래먹거리 발굴 의지는 멈추지 않았다. 자동차부품·디스플레이·에너지·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거듭하며 최고의 LG를 만들어왔다.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며 LG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첨단 연구개발(R&D)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총수
평소의 소탈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인해 그를 대해본 사람들은 인간미와 친근감을 느꼈다고 했다. 또한 시간관념이 철저해 정해진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얘기를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주말에는 동료들과 낚시와 골프를 즐기고, LG트윈스 구단주로 활동하며 야구단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LG트윈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팬들 사이에서는 '구느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슬하에 아들과 딸 둘을 뒀으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B2B(기업 간 거래) 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상무)을 2004년 양자로 입적해 경영 수업을 받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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