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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는 중국 창업생태계

김중근 기자입력 : 2017-11-24 09:00수정 : 2017-11-29 17:12
​자본 유입ㆍ인력 수급ㆍ규제 완화 등 ‘성숙단계’…유니콘 속속 탄생 하루 1만5000개씩 ‘창업 열풍’ 공룡 기업들, 유망 스타트업 발굴…자금 지원하며 유니콘 기업 견인

[그래픽=임이슬 기자]


중국의 창업 생태계가 성숙 단계로 진입하며 창업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아성을 넘보고 있다. 중국은 하루에 1만5000개가 넘는 기업이 생겨날 정도로 창업 열풍이 거세다. 중국의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성숙해진 창업 생태계에 힘입어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으로의 성장을 꿈꾸고 있다.

창업 생태계의 성숙을 위해서는 용이한 자본 접근성과 원활한 인력수급, 일정 규모 이상의 내수시장, 잘 갖춰진 인프라, 규제 완화와 정책지원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중국이 창업 생태계의 성숙 단계로 진입했다는 말은 이런 요소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으로 무장해 거대 공룡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싹수’ 있는 신생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하며 유니콘으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중국 최고의 창업 생태계를 갖춘 곳은 중국 남부 광둥성에 위치한 선전(深圳)이다. 이곳은 한때 중국산 모조품의 본산으로 통하던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막강한 부품조달 능력과 제조업을 기반으로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릴 정도로 발전했다.

선전에는 전세계 정보기술산업을 이끌고 있는 텐센트, 화웨이, DJI와 같은 거대 IT기업들의 본사가 있다. 텐센트는 중국 최대 SNS 기업, 화웨이는 세계 최대 통신 장비 제조업체, DJI 상업용 드론 분야의 세계적인 리더다. 이 기업들도 모두 선전에서 스타트업으로 출발했다.

선전의 전자상가 밀집지역인 화창베이(華强北)에는 미국을 비롯해 인도와 스페인, 영국, 이집트 등 세계 각국에서 창업을 위해 찾아온 젊은이들로 언제나 북적댄다. 미국과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이 중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현상도 창업 분위기 활성화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화창베이에서는 원하는 부품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 아이디어를 내면 3~4일 만에 시제품이 제작될 정도로 다이내믹하다. “하드웨어 제작에서 모든 길은 선전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가격도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전자부품용 회로기판(PCB) 제작에 미국에서는 100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선전에서는 30달러에 불과하다.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사나흘 만에 시제품이 제작될 수 있는 비결은 이처럼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선전시 외곽 지역에 시제품을 제작해주는 소형 공장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과 부품사·제조사를 연결해주는 ‘잉단(硬蛋·딱딱한 알)’이라는 지원기관도 있다. 이곳을 통하면 부품공급사와 제조사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잉단을 만든 전자부품 상거래 사이트 코코바이에는 1만4000개의 부품 공급사가 들어와 있다. 스타트업들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그것도 저렴한 가격으로 시제품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생태계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창업 인큐베이팅 역량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헥셀러레이터(Haxlr8r)는 지난 2013년 중국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보고 미국 실리콘벨리에 있던 본사를 중국 선전으로 옮기기도 했다. 이 회사는 중국으로 이전한 이후 지금까지 13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등 현지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중국의 창업 생태계 성숙에는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이미 성공한 선배 기업들의 후배 스타트업을 향한 ‘자금줄 역할’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로 자금줄은 생명줄이 되기도 한다.

중국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130개가 넘는 유니콘이 있다. 이중 알리바바가 투자했거나 설립한 기업이 7개다. 텐센트 투자에 힘입어 유니콘으로 성장한 기업도 4개다. 이들 11개 기업의 가치가 중국 전체 유니콘 가치의 35%를 넘는다.

현재 거대 공룡으로 성장한 기업들도 스타트업 시절에 외부의 도움을 받았다. 알리바바는 설립한 지 1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투자를 받아 닷컴 버블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텐센트는 창업 3년 차에 자금이 고갈돼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디어기업 내스퍼스로부터 자금을 수혈했다.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 엔진 바이두도 창업 9개월 무렵 미국 벤처캐피털 DFJ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이들 기업들은 자금 수혈이 없었다면 아마 생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이처럼 도움을 받아 성장한 기업들이 신생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다. 이런 선순환 구조는 중국 창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성장 동력으로 작용한다.

중국 유니콘 뒤에는 대체로 외부 대주주가 있다. 중국 최대 온·오프라인 결합 서비스(O2O·Online to Offline) 기업인 메이퇀뎬핑(美團點評)의 최대 주주는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세쿼이아다. 세쿼이아는 지난 2005년 세쿼이아중국을 설립해 현재 200개가 넘는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 기업들의 가치는 세쿼이아 지분을 포함해 2조6000억 위안(약 440조원)에 달한다.

빈촌이었던 선전이 중국의 대표적인 제조 기지로, 또 지금의 혁신 클러스터이자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스타트업들의 성지(聖地)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친기업적인 산업정책, 파격적인 규제혁신(선허용 후보완), 실물경제를 돕는 금융생태계 육성, 실력으로만 경쟁하는 공정한 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선전에서 가장 먼저 시행한 규제개혁 조치만 1000건이 넘는다. 중국 정부가 기업 상장을 돕기 위해 ‘중소기업판’과 ‘창업판(중국판 코스닥)’을 모두 선전에 개설한 것도 창업 생태계 형성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중국 벤처캐피털의 3분의 1도 선전에 몰려 있다. 이를 두고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실리콘밸리의 혁신이 선전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에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가 수백 개에 달한다. 전국이 그만큼 일정 규모 이상의 도시들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공유경제 기반 창업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보고를 통해 ‘웨강아오(粤港澳, 광둥·홍콩·마카오) 빅 베이’ 건설을 주문했다. 웨강아오 빅 베이 건설은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마카오 등 11개 지역을 뉴욕, LA, 도쿄에 버금가는 세계 4대 빅 베이 경제권으로 조성하겠다는 거대 프로젝트다.

중국의 간판 혁신 클러스터인 선전의 혁신 DNA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중국의 창업 생태계는 ‘성숙’을 넘어 ‘완전체’가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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