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슬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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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전통문화연구회 회원
입력 2017-10-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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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때 이조판서 박태상(朴泰尙)은 “악덕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조급증이며, 여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人之惡德莫甚於躁·인지악덕막심어조, 千罪萬過皆從此出·천죄만과개종차출)”며 승진에 급급해 조급하게 서두르는 공직사회 풍조를 비판했다. 남이 서두르면 자신도 추해진 것처럼 꺼렸다. 그가 죽은 뒤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이 묘비명에서 이 점을 칭송했다.

예로부터 '욕속부달'(欲速不達, 급히 서두르면 도리어 이르지 못한다. '논어'), '서진자소환'(徐進者少患, 차분히 하면 근심이 적다. '신당서') 등 조급증을 경계하는 말이 많았다. 박태상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 최선을 다했다.

삶의 속도조절은 특정인이나 특정 분야에 한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하다. 지금 세상은 모든 것이 질주한다. 예전 세상은 그래도 자연 속도에 가까웠고, 사람 욕심만 급했다. 그러나 요즘은 모든 물상이 거의 광속도로 내닫고, 사람 마음은 그보다 더 조급하다.

이를 완화하자는 뜻에서 슬로 푸드, 슬로 시티 운동이 198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근년에 미국 저널리스트 피터 로퍼가 자신의 저서 ‘슬로 뉴스'(생각과 사람들 출판사)에서 주창한 슬로 뉴스 운동도 같은 개념이다.

그는 TV 시청자, 신문 독자 등 뉴스 소비자들에게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기사를 소화하라고 강조한다. 눈길을 끌기 위한 흥행성과 무차별 속도경쟁에 휩쓸리지 말고 천천히 ‘어제 뉴스를 내일 읽는’ 자세로 뉴스를 소비하라는 것이다. 그 지침을 따르자면 상당한 언론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부분도 더러 있는데, 전반적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각자 수준에 맞춰 뉴스를 소비할 여러 방도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토머스 매카시 감독)는 그런 점에서 뉴스 소비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보스턴글로브가 수년에 걸쳐 가톨릭 보스턴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취재하고 보도한 실화를 영화화한 것인데, 왜 뉴스를 천천히 소화해야 하는지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언론 지식도 상당히 갖출 수 있다.

국내외 정치상황은 물론 각종 사건사고 뒷면은 언론의 노력만큼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보도를 막으려는 관련자들의 저항과 왜곡이 늘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짜뉴스까지 계획적으로 제작·유포되는 세상이다.

이런 판국에 성급하게 언론기사를 확신하고, 마치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처럼 장담하며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거기에 희망사항까지 덧붙여 사실인 것처럼 주장한다. 이는 실속 없는 에너지 낭비로, 자신의 무지와 경솔만 드러내는 꼴이다. 그 손해는 고스란히 뉴스 소비자인 우리들에게 돌아온다.

한 발짝 물러서서 찬찬히 보는 여유가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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