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복(伏)과 복(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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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기자
입력 2017-07-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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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酒食雜記
복(伏)과 복(福)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당구풍월(堂狗風月)이다. 그러고 보니 개 짖는 소리가 묘하다. 컹컹, 멍멍, 왈왈 한다. 공자(孔子)의 중국 발음이 ‘컹쯔’, 맹자(孟子)는 ‘멍쯔’다. 그렇다면 ‘컹컹’은 공자 말씀을, ‘멍멍’은 맹자 말씀을 강조하려는 것일까. 왈왈 짖는 것은 공자왈, 맹자왈의 ‘왈왈(曰曰)’이다.
따라서 인간들의 허튼소리보다 개소리가 품격이 있다. 잡소리도 없다. 그저 본능에 따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온 몸으로 짖는다. 순수하고 진실되고 메시지도 분명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어디다 대고 “개소리 마라”고 허튼소리인가.
물론 개라고 다 같지는 않다. 한자로 견(犬)과 구(狗)는 쓰임새가 다르다. 견(犬)은 충견, 명견, 반려견처럼 먹지 않는 개이다. 구(狗)는 백구, 황구와 같이 식용 개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 토사구팽(兎死狗烹)인 것이다. 서당개가 당견(堂犬)이 아니라 당구(堂狗)인 연유도 짐작할 만하다.
유배지 서당의 훈장이었던 다산 정약용도 엄청난 애구가(愛狗家)였다. 흑산도에 유배된 형 정약전이 “짐승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하자 답장을 보낸다. “육식을 기피하는 것은 생명을 연장하는 도(道)가 아니다. 섬에 산개(山狗)가 천 마리, 백 마리 수준이 아니다. 나라면 5일에 한 마리는 먹겠다”며 짐짓 형의 육식 기피를 나무란다.
그러면서 개 잡는 기술을 전한다. 중국의 원숭이 잡는 방법과 비슷하다. “먹이통을 만드는데, 둘레는 개의 입이 들어갈 만하게, 깊이는 개의 머리가 빠질 만하게 한다. 먹이통 안 사방 가장자리에는 두루 쇠 낫을 낚싯바늘처럼 굽은 것이 아니라 송곳처럼 곧게 꽂는다. 통의 바닥에는 뼈다귀를 묶어 놓아도 되고, 밥이나 죽 모두 미끼로 쓸 수 있다. 낫은 박힌 부분을 위로 가게 하고, 날의 끝은 통의 아래에 둔다. 이렇게 되면 개가 주둥이를 넣기는 쉬워도 다시 꺼내기는 거북하다. 또 개가 미끼를 물면 주둥이가 불룩하게 커져서 사면으로 찔리기 때문에 공손히 엎드려 꼬리만 흔들 수밖에 없다.”
원숭이 잡는 덫도 비슷한 이치다. 손(발)을 간신히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을 내고 안에는 고소한 깨를 넣어둔다. 그러면 손을 넣어 깨를 움켜쥐는데, 주먹을 쥔 상태로는 빠져 나오지 못한다. 미련한 원숭이는 절대 주먹을 펴지 않고 버둥거리다 덫을 놓은 사람에게 곱게(?) 붙잡히는 것이다. 흑산도의 개도 먹이를 뱉으면 머리를 빼낼 수 있겠지만, ‘버림의 생존술’을 어찌 실천할 수 있겠는가. 사람도 못하는데 말이다.
다산은 레시피도 전한다. “들깨 한 말을 부치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삶는 법은 티끌이 묻지 않도록 달아매어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씻어도 나머지는 절대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 속에 넣어서 맑은 물로 삶습니다. 그런 연후 꺼내놓고 식초, 장, 기름, 파로 양념을 하여 더러는 다시 볶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삶는데 이렇게 해야 훌륭한 맛이 납니다.”
사실 이러한 향구지법(享狗之法)은 다산의 레시피가 아니다. 실학의 거목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의 비법으로 알려져 있다.
개고기는 본디 성질이 덥다. 양기를 돕고 허한 곳을 보하는데. 염천지절(炎天之節)에 먹는 것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이다. 개의 발목(狗足)을 먹으면 부인의 젖이 잘 나오고, 쓸개를 먹으면 눈이 밝고 못된 창병(瘡病)이 낫는다고 전해온다.
금기(禁忌)도 있다. 백구의 젖을 먹으면 애주가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며, 개고기와 마늘은 상극이라 함께 먹으면 크게 해(害)가 된다. 아마도 화학적 작용 때문일 것이다. 구탕을 먹은 뒤 얼음을 먹으면 촌백충이 생긴다고도 했다.
하지만 견(犬)자가 든 복(伏)날이라고 꼭 구탕을 챙겨 먹었던 것은 아니다. 예부터 복날에 팥죽을 먹으면 집안이 일년 내 평안하다고 했다. 민어에 호박을 넣고 끓여 먹고, 미역국에 수제비를 넣어 먹기도 했다. 중국에선 ‘세시복랍(歲時伏臘) 팽양포고(烹羊炮羔)’라 하여 양과 염소고기를 먹었다.
초복(初伏)에 들었다. 그런데 복날 분위기가 많아 달라졌다고 한다. 이른바 사철탕집에도 예약 손님이 없단다. 대신 삼계탕집이 호황이란다. 혹자는 장마철이라 우중구탕(雨中狗湯)을 삼가기 때문이라고 우기지만, 반려견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명에 이르면서 달라진 세태의 단면일 터이다. 애견인(愛犬人)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애구가(愛狗家)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한때 일부 애구가(愛狗家)는 삼복(三伏)에 더해 오복(五伏)을 꼽았다. 8월 15일 ‘광복’과 9월 28일 서울 ‘수복’까지다. 오복(五福)에 맞춘 조어이다. 분명한 것은 복지부동(伏地不動)의 복(伏)이 아니라 다섯 번 스스로 낮추는 겸손의 오복(五伏)이 진정한 오복(五福)의 바탕이다. 개도 미끼를 물고 있으면 미망(迷妄)의 덫에 사로잡히고, 뱉으면 헛된 미망에서 풀려난다. 사방이 덫인 세상, 초복에 상기하는 일복(一福)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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